
20세기의 대작 명화로 손꼽히는 것 중 '벤허'가 있습니다.
로마의 통치에 저항한다 하여 벤허를 노예선에 보내고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를 나병환자로 만든 로마군단장 멧사라에게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온 벤허가 복수하고자 하는데,
벤허를 사랑하는 여인이 멧사라를 용서해 주라고 간청합니다.
회개하고 용서할 것을 가르치는 광야의 예수를 만나 보라고 애원합니다.
벤허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산을 오르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칩니다.
"다 이루었도다" 하시며 운명하시는 예수님과 다시 눈이 마주칩니다.
바로 그 순간을 생각하면서 벤허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눈을 감으시면서 피 묻은 손을 뻗으시어
내가 손을 쥐고 있는 복수의 칼을 빼앗아 가셨다."
그 후 벤허는 예수님 때문에 멧사라를 용서하고,
드디어 나환자 촌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치유된 어머니와 누이를 만납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며 벤허의 손에서 복수의 칼을 뽑으신 그 순간,
그리고 벤허가 멧사라를 용서한 그 순간,
저 나환자 집단촌 골짜기에서는
어머니와 누이의 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발생한 것입니다.
어머니와 누이를 문둥이로 만든 멧사라를
벤허가 용서하자 어머니와 누이가 치유된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제일 큰 은사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요, 권능은 그의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권능보다 더 위대한 것입니다.
신앙의 큰 위인들은 모두가 다 자신을 핍박하고
괴롭히는 자들을 사랑으로 용서하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노예로 판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비방한 아론과 미리암을 용서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용서했습니다.
스테반은 자신을 돌로 치는 유대인들을 용서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을 용서 했습니다.
내가 먼저 져 주고 내가 먼저 손해 보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여러분!
나를 괴롭히는 영혼이 있습니까?
나를 비방하고 미워하는 영혼 있습니까?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서 용서가 안 되는 영혼이 있습니까?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의 약속을 믿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용서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의 말씀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와 고통 받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먼저 용서하십시오!
내가 먼저 손 내미십시오!
내가 먼저 웃음 주십시오!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왜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하지 못합니까?
왜 화해를 말하면서 화해를 하지 못합니까?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나의 죄가 많음에도 이유 없이 날 사랑하신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화해할 수 있습니다.
져줄 수 있습니다. 손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용서합니다.
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친절로 가해자를 대하고
용서하는 사람의 승리보다 더 영광스런 승리는 없습니다.
“용서하는 힘”이 없는 자에게는 “사랑하는 힘”도 없는 것입니다.
용서는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고 마음의 빚을 없애주며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용서받기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교만한 나의 마음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 줄 수는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 수 없는가 ………………♬♫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용서가 필요하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으며,
남의 잘못과 허물을 용서하지 않아도 되는 이 또한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서로를 용서해 주고
또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골로새서 3장 13절의 ‘피차 용서하되’라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일평생 동안 수없이 용서를 받아야 하고 또한 용서를 해주어야 합니다.
한 심리학자의 통계에 따르면 용서하지 못하는 이의 정신적 고통은
용서받지 못하는 이의 그것에 비하여 훨씬 크다고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고통, 어쩌면 그것은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는 데 대한 당연한 형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 할 수 있고 또 용서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미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피차 용서하고 용서받으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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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통치에 저항한다 하여 벤허를 노예선에 보내고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를 나병환자로 만든 로마군단장 멧사라에게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온 벤허가 복수하고자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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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산을 오르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칩니다.
"다 이루었도다" 하시며 운명하시는 예수님과 다시 눈이 마주칩니다.
바로 그 순간을 생각하면서 벤허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눈을 감으시면서 피 묻은 손을 뻗으시어
내가 손을 쥐고 있는 복수의 칼을 빼앗아 가셨다."
그 후 벤허는 예수님 때문에 멧사라를 용서하고,
드디어 나환자 촌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치유된 어머니와 누이를 만납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며 벤허의 손에서 복수의 칼을 뽑으신 그 순간,
그리고 벤허가 멧사라를 용서한 그 순간,
저 나환자 집단촌 골짜기에서는
어머니와 누이의 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발생한 것입니다.
어머니와 누이를 문둥이로 만든 멧사라를
벤허가 용서하자 어머니와 누이가 치유된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제일 큰 은사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요, 권능은 그의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권능보다 더 위대한 것입니다.
신앙의 큰 위인들은 모두가 다 자신을 핍박하고
괴롭히는 자들을 사랑으로 용서하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노예로 판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비방한 아론과 미리암을 용서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용서했습니다.
스테반은 자신을 돌로 치는 유대인들을 용서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을 용서 했습니다.
내가 먼저 져 주고 내가 먼저 손해 보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여러분!
나를 괴롭히는 영혼이 있습니까?
나를 비방하고 미워하는 영혼 있습니까?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서 용서가 안 되는 영혼이 있습니까?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의 약속을 믿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용서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의 말씀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와 고통 받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먼저 용서하십시오!
내가 먼저 손 내미십시오!
내가 먼저 웃음 주십시오!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왜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하지 못합니까?
왜 화해를 말하면서 화해를 하지 못합니까?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나의 죄가 많음에도 이유 없이 날 사랑하신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화해할 수 있습니다.
져줄 수 있습니다. 손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용서합니다.
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친절로 가해자를 대하고
용서하는 사람의 승리보다 더 영광스런 승리는 없습니다.
“용서하는 힘”이 없는 자에게는 “사랑하는 힘”도 없는 것입니다.
용서는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고 마음의 빚을 없애주며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용서받기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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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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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주길 원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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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교만한 나의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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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용서가 필요하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으며,
남의 잘못과 허물을 용서하지 않아도 되는 이 또한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서로를 용서해 주고
또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골로새서 3장 13절의 ‘피차 용서하되’라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일평생 동안 수없이 용서를 받아야 하고 또한 용서를 해주어야 합니다.
한 심리학자의 통계에 따르면 용서하지 못하는 이의 정신적 고통은
용서받지 못하는 이의 그것에 비하여 훨씬 크다고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고통, 어쩌면 그것은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는 데 대한 당연한 형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 할 수 있고 또 용서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미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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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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