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강의와 세미나 등 바쁜 일정 가운데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이블 벨트의 본고장 텍사스에서 건전한 기독 언론인 기독일보가 세워진 것을 축하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식을 통해서 지역 교회와 성도를 세워줄 수 있는 정론지가 되길 소원합니다.

우선, 목회를 시작하시기 전에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신 것에 대해서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연세대학을 졸업하고 86년 파푸아 뉴기니에 선교사로 파송받고 그곳에 성경번역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교회를 세우고 현지인들을 목회자로 세우는 놀라운 역사도 경험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번역했던 성경이 카톨릭 교회에서도 요청해서 그 성경을 함께 사용하며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가까이 볼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선교지와 현재 목회지의 차이가 있다면?

공통된 부분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선교지에서는 현지인들이 변화를 받으면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주도적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화와 이민사회의 상황적 현실속에서의 교회 생활은 많은 부분 수동적이고 피공급자의 위치에서 안주하는 모습이 더 자주 눈에 띕니다. 이 부분은 우리 목회자들의 책임도 있지만 이민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 또한 공동체 의식이 더욱 강해질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한 선교지나 목회지나 공통적인 것은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달라스 나눔교회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은 세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다른 교회서는 쉽게 따라 없는 사역적 모델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역을 시도한 계기가 있는지요?

일단, 우리교회가 모델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다른 교회도 쉽게 시도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교회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웃음).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자가 세대통합적인 예배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있나 하는 것이며, 리더십을 가진 성도들이 목회자와 함께 다소 불편함을 감수하고 3대, 4대가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의지가 있나 하는 것입니다.

  첫째, 세대통합의 필요성은 교회마다 다른 상황이라 일괄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우선적으로 공동체가 서로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로 가려면 목회자들은 성장지향주의를 포기해야 합니다. (소위 부흥) 왜냐하면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 당시에도 말씀 현장에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세대통합 예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역은 아닙니다. 특히, 부자든 가난한자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나 적게 받은 사람이든지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특성 있는 사람들이나 특정 관심 분야가 있는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셋째, 우리교회는 1부, 2부 예배를 나누고 있지 않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함께 말씀을 나누는 일들은 공동체적 소통입니다. 세대별로 소통이 안되는 교회, 1부와 2부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단절 등 교회는 다양한 계층간의 단절을 초래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단절은 교회의 본질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이러한 우리 교회의 특징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넷째, 예배에 대한 오해에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설교를 예배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설교는 예배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기는 하지만, 예배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 일부입니다. 예배가 이루어지는 현장, 예배를 인도하는 인도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예배가 초기 기독교의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예배는 주일의 공동체 예배에서 출발해서 가정과 삶의 현장으로 이어지는 삶의 예배이어야 합니다.

예배는 그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전인격적인 행위 일뿐만 아니라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 공동체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사회 연계적 통합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와 교회 공동체가 함께 의지를 가지고 실행해야 가능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전세대 통합 예배를 구축하려면 설교자는 반드시 아이들과 EM 문화권과도 상호 작용 (interaction) 이 있어야 합니다.

목사님 교회의 부교역자들은 어떤 역할이 필요할까요?

일단, 우리 교회의 부교역자들 가운데는 풀타임 사역자는 없습니다. 유스를 맡은 부교역자의 경우 설교본문과 함께 GBS를 인도합니다. 부교역자들은 유스 아이들과 함께 재미를 붙이기 위해서 사역을 합니다. 이것은 영어권 비영어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의지적으로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대화하려고 충분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시대에는 다음세대들은 온라인에 능숙합니다.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미리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예배나 기도 모임에 참석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풍성한 사역의 현장이 됩니다.

All generation 예배에는 부모님들이 자녀들과 함께 예배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불만등이 지속적으로 노출이 경우 극복할 있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물로 그럴수 있습니다. 저의 사역 초창기에도 역시 그러했고 심지어 이렇게 사역하면 교회를 떠나겠다고 협박(?) 아닌 협뱍을 당하기도 했습니다(웃음). 그러나 앞서 말한바와 같이 성경적 관점과 목회자의 뚜렷한 의지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목회자가 분명한 비젼과 목표를 가지고 실행하게 되면 성도들도 조금씩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경우 어린이들을 가진 부모님들은 보통 뒤에 앉게 됩니다. 아이들이 울면 나가기 수월해서 그렇게 하지만 우리교회는 그런 부모님들이 가장 대우를 받습니다. 가장 앞자리로 자리하도록 합니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것을 오히려 기쁨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요즘 팬데믹 시대에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가정을 보면 아이들은 자기들 방에서, 부모님들은 그들의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합예배의 출발점은 가정의 통합니다. 가정의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저희 교회와 같은 통합예배는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 역시 제대로 된 예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뿔뿔이 흩어지는 공동체가 가정이든 교회든 진실된 공동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리고 있는 최종적인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리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일터, 직장, 학교에서 하나님의 성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의 일터와 삶터에서 그들만의 간증을 가지고 교회의 예배의 형태 안으로 녹아지는 것입니다. 예배 자체가 찬양과 말씀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어우러지고 녹아지는 현장이 예배의 다이나믹 한 현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자꾸 모이게 해 놓고 오히려 교회의 모임 때문에 가정이 함께 할 시간도 없다면 교회는 가정을 파괴하는 주범이 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교회를 사용해서 자신의 일을 하고야 마는 야망을 내려 놔야 합니다.

달라스의 경우는 교회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휴스턴이나 많은 지역에서 보이는 교회 성장의 정체성 현상이 자주 목격이 됩니다. 목사님께서는 교회가 세워져야 할까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교회는 세워져야 하지만 교회의 내용이 문제입니다. 크기가 작다할지라도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달라스 왔을 때 보는 사람마다 "교회를 다닙니다"의 말을 들었을 때 과연 이런 상황에서도 교회를 또 세워야 하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10%채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교회도 자유로울 수 없는 '제대로 된 교회'의 모토를 가지고 있다면 교회는 계속 세워져야 하는 것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교회의 성장을 내려놓는다면, 목회자의 재정적 현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없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지요?

목회자들도 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bivocation). 우선 목회자가 재정적인 부분에서 자유롭지 않으면, 목회를 하기 어렵습니다. 진실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목회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올바른 진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타협을 하게 되고 세상적인 논리를 수용하고 목회자가 소위 비진리에 휘둘린다면 교회가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른 진리를 사수하고 실행한다면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을 보내 주십니다.

목사님의 사역 기간 중에 목회적 위기가 있었는지요?

위기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문제라고 한다면, 우리교회 안에서 당을 짓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개척초기, 개척멤버라고 하는 특권층을 만들려고 하는 문제가 있었을 때, 강력하게 개입하여 파당을 짓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여년이 흐른 후에 다른 교회에서 들어 온 성도들을 중심으로 자녀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간 부모들 모임을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이 때는 목회자로서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이때에는 이미 기존 성도들 스스로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앙적으로 성숙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대로 스스로들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목사님의 강해설교 방식 중에서 '행간을 파악하라' 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설교는 단순하게 기술된 문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꼭 필요한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더 풍성하게 하려면 말씀을 건조한 문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시대적, 문화적 상황부터 성경의 문장 구조 안에 녹아져 있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주석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놓을 없는 질문이 요즘 팬데믹 기간에 교회가 추구해야 방향은 무엇이 있을까요?

팬데믹 기간에 성도들이 눈치 챈 것이 있습니다.

첫째, 성경공부 참석 안해도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지 않는다.

둘째, 십일조 안해서 하나님 진노하지 않는다.

셋째, 예배 안와도 아무런 일이 없다.

물론 이런 일들이 우스갯 소리로만 넘길 일이 아니라 그동안 교회가 교회의 기능적인 체제만 유지하려는 일들로 전락했던 일들이 이제 더 이상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기간에 성도들의 삶 속에 교회가 들어 가야 합니다. 설교는 단순 말씀 선포가 아니라 설교자가 삶과 함께 묵상하며 깨달은 은혜를 나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정성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교회의 바른 정체성을 가지고 복음의 의미가 무엇인가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팬데믹을 넘어 부흥으로' 가자고 합니다만 부흥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Re-start up 입니다. 근본적으로 점검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왜 '예배'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현대 교회가 짊어져야 하는 우리 시대의 화두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명확한 답변을 세상에 내어 놔야 합니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