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교회사’ 저자 강석진목사
(Photo : 기독일보) ’북한교회사’ 저자 강석진목사

1919년 그 당시의 일제 압제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전국적으로 온 민족이 대동단결하다 시피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로 나와 만세운동을 하였다. 이때에 가장 거국적으로 또 가장 조직적으로 만세 운동을 벌인 조직이 교회였으며 이 운동의 지도자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길선주 목사와 이승훈,양전백 같은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이 세운 다수의 기독학교의 학생들이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유관순 여학생이었다. 전국의 교회 청년 조직들은 어느 단체보다 열정적이었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즉 그 당시에 전국의 교회가 3월1일 정오에 교회의 종소리에 맞추어서 태극기를 들고나와 교회와 거리와 시장으로 나와 3.1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는 교회가 전국적으로 체계적인 조직이 견고하였으며 기독교인들은 이미 자주 독립이라는 민족정신이 강하였었다. 이는 선교사들의 기독학교의 교육이 영향을 준 것이기도 하였다. 3.1만세운동 당시에 전국의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였으므로 약 2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3.1만세운동이 결과적으로는 실패하였으나 교회적으로는 독립의 좌절을 통해 기독교가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평양의 최대 교회였던 장대현 교회의 설립자인 사무엘 마펫은 3.1만세운동에 대해 "교회를 근절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교회가 새로운 성장기로 접어들도록 인도했다"라고 증언하였다. 사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일반 백성이 애국주의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애국운동에 참여할 똑같은 인간적 권리를 갖는 차원을 넘어 3.1만세운동의 시작과 진행에 있어서 구심점이 되었다. 그 결과 3.1만세운동 이후 기독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는 일반인들이 그 이전에는 기독교인들은 그들만의 신앙의 공동체이며 나라와 민족에 대하여는 무관심한 신앙인들로 인식되었었지만, 교회가 보여준 구국적 행동에 대해 교회와 기독교인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으며 독립을 위한 만세 운동의 좌절감을 신앙으로 승화시키거나 새로운 신앙의 세계로 입문하는 계기가 된 것이었다. 그로인해 기독교의 영향력은 전 분야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은 일반인들의 기독교 학교의 입학 참여율을 높였다. 이 당시에 남과 북의 기독교 학교 중에 많은 학교들이 명문 초.증고등 학교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학교뿐만 아니라 옥중에서도 나타났다. 3.1만세 운동으로 인해 수만 명이 옥중에 갖히었는데, 이 때 옥중에서도 기독교인들은 비 신앙인들에게 전도를 함으로 옥중에서 많은 인사들이 기독교인들로 개종되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나라의 국권을 빼앗긴 상태였으므로 민족의 구심점이 없었으나,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를 대신하였다. 3.1만세운동 선언문에 참여한 인사 33인중에 16명의 인사가 기독교의 목사와 장로 등으로 이루어졌었다. 이 당시 천도교는 전 인구 중 1백만 명 이상이었으나, 기독교인 수는 매우 미미한 상태였었다.

3.1만세 운동이 좌절된 후 교회는 이전처럼 크고 작은 사경회와 특별 집회를 열어서 교회의 영적 생활을 유지하며 낙심된 조선인들을 위로하며 새로운 소망을 내세 지향적인 신앙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교회를 통해 새로운 출구를 찾고자 했던 청년층들 가운데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내세 지향적인 신앙에 실망을 하고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로 돌변한 계층도 많았으며 서구의 새로운 사조를 쫓는 청년들과 지식인들도 있었다.

일제 강점기 중에 기독교인들은 성경 중에 구약의 출애굽 내용에 애굽의 압제를 당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통해 애굽을 물리치고 가나안이라는 그들의 조상의 땅으로 나아가는 역사와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진 후에도 주변의 앗수르와 바벨론과 로마의 통치 역사가 그 당시의 신앙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주었으며, 독립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영향을 주었으므로 기독교인들은 민족정신과 독립정신을 갖게 하였다.

그당시 선교사들은 정치적 성향을 배제하였으며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이는 미 선교부의 방침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선교사들 중에는 조선의 고종의 밀사 역할을 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한 헐버트(Homer B. Hulbert),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 의사 선교사였던 에비슨(Oliver R. Avision), 로버트 그리어슨(Rovert Grierson), 스텐리 마틴(Stanley H. Martin) 등의 애국 선교사들도 있었다. 사무엘 마펫선교사도 영국과 미국에서의 선교대회에서 일본의 조선에 대한 불법 강점과 조선인들의 고통을 알리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