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기독교 교회사에 있어 AD 325년은 대단히 중요한 해였습니다. 로마에 의해 기독교가 약250여 년(AD64-313)동안 심한 폭정에 시달리다가 313년 밀란 칙령에 의해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이후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최초의 종교회의(First Council of Nicaea) 를 갖게 되었던 뜻 깊은 해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 교회적으로 큰 위기요, 혼돈의 뿌리가 되었던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삼위일체 교리를 재 확립, 정돈시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아리우스(Arius 250 or 256-336)가 "성자 예수는 영원한 존재가 아닌 단지 인간일 뿐이고 성부에게 종속적인 개념" 이라고 주장하며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이론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동방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점점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것을 추종하는 세력이 점점 늘어나게 되어 소위 "아리우스파"가 형성이 되어 기독교계에 일대 큰 혼란을 야기시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아타나시우스(St. Athanasius 300 373)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교 정통신앙을 앞장서서 변호하며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명확한 신앙고백으로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에 대한 정당성을 굳건히 세워 아리우스파가 주장하는 이론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이 종교회의에서 삼위일체론을 바로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뿌리가 된 니케아 신조(Nicaea Creed) 가 된 것입니다.

우리 찬송가에 "거룩, 거룩, 거룩" 이라는 송영 찬송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Nicaea" 라는 부제목이 부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삼위 하나님을 송축하는 찬양에 목적을 담아 영국
성공회 주교이자, 문필가, 찬송작가였던 레지날드 히버 Reginald Heber (1783-1826)가 이 곡의 텍스트를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리지날드는 당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시인으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가  인도 켈커타 주교로 사역을 하다  42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는데 이 곡은 그의 초기 목회사역지였던 영국의 시골 마을 슈롭셔 호드넷 에서(Hodnet, Shropshire,

England) 에서1807- 1823 사이에 쓴 것입니다. 이사야 6장3절의 내용과 요한계시록 4장 8-11절을 중심으로, 그리고 미사통상문 "거룩 Sanctus" 를 참고로 해서 그가 찬송가의 가사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이 가사를 가지고 영국의 찬송 작곡가 인 존 바커스 다이크스 (John Bacchus Dykes 1823-1876) 가 1861년 Hymns Ancient and Modern의 초판을 만들면서 이 곡을 포함시키기 위해 작곡을 했고 그것을 통해 회중들에게 널리 불려지기 시작 했습니다.


이 찬송의 소재가 된 이사야의 환상 가운데서 본 하나님을 모셔 선 스랍천사들이 드리는 찬양 (이사야6:3).  사도 요한이 환상가운데 하늘의 예배를 보며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네 생물들이 드리는 찬양 (요한계시록 4:8-11) 이 담겨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공통점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거룩함'이 가장 본질적이란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예배하며 찬양할 때 거룩(Holy)을 예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스랍들이, 또 네 생물들이 하늘과 땅에서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영광의 찬송을 드리는 일이 그들의 고유한 사명이요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을 통해 끈임 없이 선포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삼위일체에 대한 확고한 교리 입니다. 죤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그가 쓴 "기독교 강요"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관계되는 한 분 하나님의 본질은 단일적이며 분리되지 않는다." 라고 저술하고 있습니다. 세 번에 걸쳐 "거룩"을 외치는 모습 속에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각각의 경배, 그리고 삼위일체에 대한 확고한 교리를 기억하고 매 순간 예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초기 기독교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배의 중심 내용이 되어 찬송하면서 결국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삼위하나님을 송축하는 찬송으로 종결하는 것을 복음서를 통해, 그리고 그들의 예전을 통해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는 코비드 바이스러스 인한 혼란스러움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예배와 찬송관이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가 진정으로 저항해야 할 일은 예배와 찬양에 대한 현실과의 타협입니다.  그 저항할 수 있는 힘은 역사를 통해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발견할 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바른 예배와 찬양을 위해 본질을 고수했던 역사 속에 나타난 믿음의 선진들의 현명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삼위일체 교리의 흔들림 속에 목숨을 걸고 진리를 사수했던 성자 아타나시우스, 그것을 기초로 해서 삼위일체 찬송을 끊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송축했던 초기 기독교 교인들,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으로 표현하여 가사와 곡을 썼던 레지날드 목사님과 죤 바커스 목사님. 이들의 신앙을 본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