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후 2세기 경에 영지주의(靈知主義)가 일어났던 동기와 그 특성과 마찬가지 형태로 신영지주의(Neo—Gnosticism) 유형의 급진 세력들이 현대에도 나타나고 있다. 다음은 이같은 급진 노선이 나타나고 있는 몇가지 동기를 든 것으로서, 신영지주의 유형의 분파집단을 분별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집단에서는 기독교의 신앙에 타종교의 영성(靈性)과 신념들을 혼합시켜, 강력한 하나의 영적 집단을 만들어 내고자 시도를 한다. 이같은 운동은 종교적 상대주의 또는 종교다원주의의 사상을 힘입고 있으며, 종종 범신론적 신비주의(汎神論的 神秘主義)의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집단에서는 기독교의 교리에 너무 불합리한 요소가 많다고 불만한다. 그래서 이들은 기독교의 전통적인 신앙보다도 철학과 과학의 원리에 더욱 치중한 합리적인 신념을 나름대로 구사한다. 신지학파(Theosophy) 그리고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어떤 집단에서는 기독교의 의식(儀式)을 너무 무미건조한 것으로 보아, 예배나 기도 등에 무속적(巫俗的), 마술적, 동방종교적 요소를 재등장시키기도 한다. 성령운동이나 치유사역에 있어서 뉴에이지(New Age) 영성이 가세(加勢)하는 일, 단(丹)이나 선(禪)이나 요가(Yoga)의 행공법을 기도에 적용하려는 시도 등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세계일가공회
세계일가공회(世界一家公會)의 교주 양도천은 192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기독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평양신학교와 서울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53년 특수한 신앙체험을 한 후 전도에 나선 그는 그후 부흥사로써 그 이름이 교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1964년 3월 1일 산에서 기도하던 중, 우주가 하나님의 집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후 그는 계룡산에 입산하여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세계의 모든 종교가 다 자기 앞으로 나아온다고 주장했다. 1965년에는 서울에서 ‘하나님의 집 공회’를 창설하였고, 1968년 계룡산 신도안 하나님의 집 공회 본부 안에 평화의 종각을 세우고 세계평화건설운동을 전개하였다. 1969년에는 하나님의 집 공회를 ‘세계일가공회’라고 명칭을 변경했다.
여호와 새일교단
‘말세의 비밀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이유성은 1915년 황해도에서 태어났고, 그는 부산, 강원도, 충남 등지에서 침례교회 소속으로 10여년 간 목사 활동을 하였다. 1960년 「말세의 비밀」이라는 책을 내놓고 부흥회를 인도하자 따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결국 그는 1965년 계룡산의 신도안에 ‘새일수도원’을 세우게 되었다. 1968년 어느날 아침 설교 도중에 ‘여호와 새일교단’이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 집단의 강령(綱領)은 종말의 사명을 봉사를 통하여 감당하며, 선택한 백성을 살 길로 인도하여 여호와의 새일을 이루자는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말세의 재난을 모면하기 위하여 40일 동안 금식하며 공부하는 제도가 있다. 그러나 이 집단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른바 ‘생수가름’인데, 이것은 신흥유사종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혼음행사(混淫行事)를 하나의 비밀교리로서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통일교
신영지주의 유형의 극단으로서 종교혼합주의 성향을 띤 대표적 예로는 통일교를 들 수 있다. 1920년에 출생한 문용명(文龍明)은 1954년 5월 1일 서울시 성동구 북학동에 통일교(統一敎)를 창설했다. 문용명은 1964년에 문선명(文鮮明)으로 개명하였다. 문선명은 1954년 10월 이화여대(梨花女大) 사건으로 세상의 지탄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 여파로 인해 1955년에 교수 5명이 파면되고 14명의 학생이 퇴학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미국과 일본에서 갖가지 물의를 일으켰고, 1973년에는 전 가족이 미국의 영주권을 획득하여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1982년에 있었던 16만2천불 탈세(脫稅) 혐의로 1984년 7월 20일 유죄판결을 받고 1년 6개월 간 실형을 받은 적도 있다.
통일교의 활동 중에서 사회의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부분은 ‘합동결혼식’(合同結婚式)이다. 1960년 4월 11일 ‘어린양 혼인잔치’를 시작으로 해서 같은 해 4월 16일에 3 쌍, 1961년 5월 11일에는 33 쌍, 1982년 3월에는 6,000 쌍, 1992년 8월 25일에는 131개국에서 온 2만여 쌍, 1995년 8월 25일에는 160개국에서 모인 36만 쌍의 남녀들에게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을 실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통일교에서는 1997년 11월 25일 160개국 이상에서 온 360만 쌍의 남녀들의 합동결혼식을 치루려 하였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문선명 산하 국제승공연합(國際勝共聯合)은 현재 우리나라에 수백만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전국의 읍, 면, 동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조직을 갖추고 있다.
전도관
전도관(傳道館)은 1955년 박태선에 의해 창립된 신영지주의 유형의 급진종파이다. 초기의 공식명칭은 ‘한국예수교부흥협회’였다가, 그후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로 불렀고, 1980년 1월부터는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로 변경하였다. 이는 박태선 자신이 천부(天父), 즉 하나님 아버지라는 허구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박태선의 전도관에서는 ‘오묘원리’(奧妙原理)라는 것을 가르치는데, 그 내용은 성적(性的)으로 타락하여 더러운 피가 섞여 있는 자들이 동방의 의인(義人), 이긴 자, 또는 감람나무인 자기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1970년대 말 까지는 전도관의 교세가 수만 명에 이르고 있었으나, 1980년 박태선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경의 신적영감성(神的靈感性)을 부인하고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선포한 이래, 많은 교인과 교역자들이 탈퇴하게 되었다. 1980년대 말에 박태선이 죽은 후, 그의 후계자 격인 박윤명이 전도관을 이끌게 되었다. 그는 박태선이 3년 만에 부활한다고 신도들을 속였으며, 5년이 지난 후부터는 박태선이 영적으로 부활하여 현재 신도들과 함께 하니 이를 따르라고 속였다. 그러나 신앙촌을 둘러싼 재산권 문제로 법적 소송과 분규가 끊이지 않았으며, 마침내 신앙촌 주민들은 박 윤명 측의 탄압에 견디지 못하여 당시 대통령에게 생존과 도움을 위한 호소문을 올리기까지 하였다. 이와 같이 한때 한국 교계를 혼란시키던 박태선의 전도관은 그 세력이 현재는 매우 미미한 교세로 전락하였다.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장)
* 필자의 영성상담 홈페이지 http://bay.pe.kr
▷어떤 집단에서는 기독교의 신앙에 타종교의 영성(靈性)과 신념들을 혼합시켜, 강력한 하나의 영적 집단을 만들어 내고자 시도를 한다. 이같은 운동은 종교적 상대주의 또는 종교다원주의의 사상을 힘입고 있으며, 종종 범신론적 신비주의(汎神論的 神秘主義)의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집단에서는 기독교의 교리에 너무 불합리한 요소가 많다고 불만한다. 그래서 이들은 기독교의 전통적인 신앙보다도 철학과 과학의 원리에 더욱 치중한 합리적인 신념을 나름대로 구사한다. 신지학파(Theosophy) 그리고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어떤 집단에서는 기독교의 의식(儀式)을 너무 무미건조한 것으로 보아, 예배나 기도 등에 무속적(巫俗的), 마술적, 동방종교적 요소를 재등장시키기도 한다. 성령운동이나 치유사역에 있어서 뉴에이지(New Age) 영성이 가세(加勢)하는 일, 단(丹)이나 선(禪)이나 요가(Yoga)의 행공법을 기도에 적용하려는 시도 등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세계일가공회
세계일가공회(世界一家公會)의 교주 양도천은 192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기독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평양신학교와 서울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53년 특수한 신앙체험을 한 후 전도에 나선 그는 그후 부흥사로써 그 이름이 교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1964년 3월 1일 산에서 기도하던 중, 우주가 하나님의 집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후 그는 계룡산에 입산하여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세계의 모든 종교가 다 자기 앞으로 나아온다고 주장했다. 1965년에는 서울에서 ‘하나님의 집 공회’를 창설하였고, 1968년 계룡산 신도안 하나님의 집 공회 본부 안에 평화의 종각을 세우고 세계평화건설운동을 전개하였다. 1969년에는 하나님의 집 공회를 ‘세계일가공회’라고 명칭을 변경했다.
여호와 새일교단
‘말세의 비밀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이유성은 1915년 황해도에서 태어났고, 그는 부산, 강원도, 충남 등지에서 침례교회 소속으로 10여년 간 목사 활동을 하였다. 1960년 「말세의 비밀」이라는 책을 내놓고 부흥회를 인도하자 따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결국 그는 1965년 계룡산의 신도안에 ‘새일수도원’을 세우게 되었다. 1968년 어느날 아침 설교 도중에 ‘여호와 새일교단’이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 집단의 강령(綱領)은 종말의 사명을 봉사를 통하여 감당하며, 선택한 백성을 살 길로 인도하여 여호와의 새일을 이루자는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말세의 재난을 모면하기 위하여 40일 동안 금식하며 공부하는 제도가 있다. 그러나 이 집단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른바 ‘생수가름’인데, 이것은 신흥유사종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혼음행사(混淫行事)를 하나의 비밀교리로서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통일교
신영지주의 유형의 극단으로서 종교혼합주의 성향을 띤 대표적 예로는 통일교를 들 수 있다. 1920년에 출생한 문용명(文龍明)은 1954년 5월 1일 서울시 성동구 북학동에 통일교(統一敎)를 창설했다. 문용명은 1964년에 문선명(文鮮明)으로 개명하였다. 문선명은 1954년 10월 이화여대(梨花女大) 사건으로 세상의 지탄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 여파로 인해 1955년에 교수 5명이 파면되고 14명의 학생이 퇴학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미국과 일본에서 갖가지 물의를 일으켰고, 1973년에는 전 가족이 미국의 영주권을 획득하여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1982년에 있었던 16만2천불 탈세(脫稅) 혐의로 1984년 7월 20일 유죄판결을 받고 1년 6개월 간 실형을 받은 적도 있다.
통일교의 활동 중에서 사회의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부분은 ‘합동결혼식’(合同結婚式)이다. 1960년 4월 11일 ‘어린양 혼인잔치’를 시작으로 해서 같은 해 4월 16일에 3 쌍, 1961년 5월 11일에는 33 쌍, 1982년 3월에는 6,000 쌍, 1992년 8월 25일에는 131개국에서 온 2만여 쌍, 1995년 8월 25일에는 160개국에서 모인 36만 쌍의 남녀들에게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을 실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통일교에서는 1997년 11월 25일 160개국 이상에서 온 360만 쌍의 남녀들의 합동결혼식을 치루려 하였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문선명 산하 국제승공연합(國際勝共聯合)은 현재 우리나라에 수백만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전국의 읍, 면, 동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조직을 갖추고 있다.
전도관
전도관(傳道館)은 1955년 박태선에 의해 창립된 신영지주의 유형의 급진종파이다. 초기의 공식명칭은 ‘한국예수교부흥협회’였다가, 그후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로 불렀고, 1980년 1월부터는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로 변경하였다. 이는 박태선 자신이 천부(天父), 즉 하나님 아버지라는 허구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박태선의 전도관에서는 ‘오묘원리’(奧妙原理)라는 것을 가르치는데, 그 내용은 성적(性的)으로 타락하여 더러운 피가 섞여 있는 자들이 동방의 의인(義人), 이긴 자, 또는 감람나무인 자기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1970년대 말 까지는 전도관의 교세가 수만 명에 이르고 있었으나, 1980년 박태선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경의 신적영감성(神的靈感性)을 부인하고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선포한 이래, 많은 교인과 교역자들이 탈퇴하게 되었다. 1980년대 말에 박태선이 죽은 후, 그의 후계자 격인 박윤명이 전도관을 이끌게 되었다. 그는 박태선이 3년 만에 부활한다고 신도들을 속였으며, 5년이 지난 후부터는 박태선이 영적으로 부활하여 현재 신도들과 함께 하니 이를 따르라고 속였다. 그러나 신앙촌을 둘러싼 재산권 문제로 법적 소송과 분규가 끊이지 않았으며, 마침내 신앙촌 주민들은 박 윤명 측의 탄압에 견디지 못하여 당시 대통령에게 생존과 도움을 위한 호소문을 올리기까지 하였다. 이와 같이 한때 한국 교계를 혼란시키던 박태선의 전도관은 그 세력이 현재는 매우 미미한 교세로 전락하였다.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장)
* 필자의 영성상담 홈페이지 http://bay.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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