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언론회(대표 이억주 목사)가 '홍범도가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 그는 소련 공산주의 편에 서서 같은 독립군을 학살하였다'는 제목의 논평을 17일 발표했다.
이들은 홍범도 장군 유해 송환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어찌 공산주의자들만 특별 대접하는 것처럼 보이는가"라며 "간첩 신영복, 6·25 남침의 주역 김원봉, 그리고 동족 독립군을 궤멸시킨 홍범도 등 모두 공산주의자들이 아닌가? 참으로 괴이하기 짝이 없다"고 밝혔다.
또 "역사적 진실은 다수의 결의나, 한때 일시 권력자의 주장에 의해 정해지지 않는다"며 "절대 독재자 진시황의 분서갱유로도 역사적 진실은 영원히 숨기지 못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
홍범도가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
그는 소련 공산주의 편에 서서 같은 독립군을 학살하였다
정부가 8·15를 맞아 순국한 지 78년이 지난, 독립군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카자흐스탄으로부터 운구해 오면서 최고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서훈했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 강점기 독립군으로 1919년부터 시작하여 1920년까지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 참여하면서, 일본군과 싸웠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그가 참여한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중상 200여명의 전과를 올렸으며, 김좌진 장군과 함께 한 청산리 전투에서는 일본군 1,200여명을 섬멸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또 다른 저술에서는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100여명,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 400-500명을 살상했지만, 우리 독립군도 그에 못지않게 피해를 본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고 보면 '대승'이나 '대첩'이라고 보는 것이 문제라는 견해들도 있다.
그런데도 홍범도 장군이 참여한 전투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과장한 측면이 있다. 물론 일제에 의한 침략과 지배 하에서 이런 무장 독립 활동을 했다는 것은 독립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보여 준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그러나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서 공로가 있다고 하여, 홍범도가 우리 대한민국을 건국하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는가? 우리 독립군은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이후에 일본군 토벌대에 밀려서 소련 영토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으며, 만주와 간도 일대의 우리 동포들은 일본군에게 보복을 당하여 철저하게 파멸되는 경신참변을 당하였다.
이후 한인 사회당 대표였던 이동휘에 의하여 독립군은 소련의 자유시(스보보드니市)에 약 4,500명의 독립군이 모여들었다가 그 곳에서 참변을 당하고 독립군이 완전히 와해되었다.
이곳에 모인 독립군은 민족주의 성향, 공산주의 성향, 무정부주의 성향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소련의 적군(赤軍-공산군)에 가담하기를 거부하는 민족주의 성향(주로 청산리 전투에 참여한 의군부 사람들)의 독립군들이 몰살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1921년 6월 28일 새벽, 적군(소련군) 제29연대 기병대와 장갑차를 앞세운 기갑부대에 의하여,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군이 포위된 상태에서 무차별 공격을 받고 궤멸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후 만주 일대에는 독립군의 씨가 마르게 된다. 이들 독립군을 공격하는데 홍범도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후에 광복군 참모장을 지낸 김홍일의 증언에 의하면, 이 때 희생된 독립군은 700~800명이 그 자리에서 사살되고, 부상자가 수백 명, 그리고 벌목 노동장에 강제로 끌려간 사람이 1,000명이 넘는다고 하였다. 조국 독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난 독립투사들이 일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편에 선 동족에게 무참하게 살해된 것이다.
어떻게 독립을 위해 뜻을 같이한 독립군에게 사상이 다르다고 이처럼 무차별 학살을 할 수 있는가? 홍범도의 이런 흑역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참담하고 용서받지 못할 민족사적 범죄를 눈감아 버리라는 것인가?
그리고 소련은 홍범도를 비롯한 2,000여명의 독립군을 고려혁명군 여단으로 재편하고, 1921년 이르쿠츠크로 이동을 명령한다. 그곳에서 소련은 독립군 전원을 적군(赤軍-소련군) 산하에 편입시킨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서일까? 1922년 홍범도는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소련의 공산 지도자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났으며, 레닌은 공산당 혁명 정권에 협조한 감사의 표시로 홍범도에게 금화 100루블, 군복 한 벌, 홍범도 이름이 새겨진 권총을 선물로 주었다.
1937년에는 홍범도의 용도가 다 된 것으로 판단해서일까? 스탈린의 명령에 의하여 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로 추방되고, 그의 생애 말미에는 극장의 수위를 하다가 1943년 그 곳에서 운명한다.
결과적으로 홍범도는 일제 초기에 독립운동을 한 것도 맞지만, 끝내 공산주의 편에 서서 우리 독립군을 살상한 장본인이며, 다시 공산주의에 의하여 버림받은 불행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가 우리 대한민국 건국에 얼마나 공이 있다는 것인가?
그런데도 정부가 최고 건국훈장을 뒤늦게 수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홍범도 장군을 영웅시하고, 국민적 추모를 하고 있다고 본다. '공'보다 '과'가 훨씬 큰데도 이를 외면한다면 이것은 역사 왜곡이 된다.
독립군 흑역사의 주인공이며, 가해자인 홍범도 장군의 업적만을 부각시켜 대한민국의 건국에 큰 공이 있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반역사적 행위로, 합당하지 않다고 본다. 왜 지금, 편향되고 왜곡된 영웅 만들기가 필요하단 말인가?
우리 정부는 어찌 공산주의자들만 특별 대접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간첩 신영복, 6·25 남침의 주역 김원봉, 그리고 동족 독립군을 궤멸시킨 홍범도 등 모두 공산주의자들이 아닌가? 참으로 괴이하기 짝이 없다.
역사적 진실은 다수의 결의나, 한때 일시 권력자의 주장에 의해서 정해지지 않는다. 절대 독재자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도 역사적 진실은 영원히 숨기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