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3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5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8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회개하고 거듭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활하는 과정 속에서 아무에게도 거리끼는 표정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실수하거나 죄를 짓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님 제일주의 신앙으로 예수님과 뜻을 같이하고 동행하는 생활을 힘쓰게 되면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그 사람의 것으로 허락되어 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할지라도 낙심할 이유가 없는 것은 자기중심에 모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그분으로 인하여 늘 승리를 보장받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여러분들의 생활은 육신이 세상 쪽으로 원하는 것 때문에 걱정을 하고 여러모양으로 어려움을 치루기도 하는데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드리기를 중심으로 소원을 삼고 힘쓴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은혜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자기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려는 노력이 없고 예수님으로부터 뛰쳐나가서 세상을 바라보고 허욕을 따라 혈기와 정욕으로 잘못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은 자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했습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의 신앙고백과도 같은 것입니다,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으면서 성령을 받아 모시게 될 때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구속의 은혜를 받은 것이며, 성령의 인치신 은혜와 하나님 자녀가 된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마귀와 더불어 살면서 하나님 앞에 온갖 죄악을 일삼고 지옥 길을 재촉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나날의 생활 속에서도 죄 값은 지체없이 찾아와서 괴롭히게 됩니다. 엄청난 고통과 절망, 후회와 부끄러움으로, 또 죽음이란 불안과 두려움이 계속 괴롭히며 죽어도 죄 값이 남아서 유황불 꺼지지 않는 지옥에 들어가서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불꽃 가운데 시달리게 될 그 고통을 면하기 위하여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바꾸고, 사는 목적과 방법도 바꾸기 위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육체가 원하는 본능의 욕구를 따라 개, 돼지처럼 온갖 죄악에 찌들려 상하며 지옥 길을 재촉하며 잘못 살았던 내게 진리를 깨닫게 하심으로 성령이 도우시는 회개가 있었다는 것은, 이제 예수님을 새로운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또한 전날의 인간 죄인괴수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그것을 물속에 장례 치루기 위해 세례를 받았습니다.
로마서 6:2-6에 아주 정확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새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인생의 새로운 주인으로 맞이해서 심령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내 인생 가운데 예수님이 오시어서 나를 하나님 뜻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고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그릇으로, 지체로 사용해 주시라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했습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부임해 오셔서 첫 설교를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해야할지를 묻는 기도를 드렸더니 요한복음 3:1-8까지 하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나야 함'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아주 애타게 설교를 하고는 그날 저녁예배 때도 거듭나야하는 이유에 대해 설교를 하셨답니다. 수요일 저녁예배도 '거듭나지 못하면'이란 제목으로 또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이 되어서도 또다시 지난번 했던 설교내용으로 또 설교를 하셨답니다. 그리고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거듭나야한다는 설교 밖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교인들이 수군덕거리기를 "저 목사님이 신학교 다니면서 거듭나는 것 밖에 안배우셨나 보다"합니다.
그 교회 장로님이 한 분 있었는데 집사들은 그 장로님께 목사님이 거듭남에 대한 설교밖에 모르셔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젠 그 설교는 되었으니 다른 설교로 해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식사대접을 하면서 "목사님, 계속 거듭나야 한다는 설교만 하시니까 교인들이 지겨워합니다. 목사님이 그 설교밖에 못하는 줄 아니 다음 주에는 좀 다른 설교를 해 줄 수 없겠습니까?"했더니 목사님이 한참 있다가 하시는 말씀이 "글쎄요, 하나님께 여쭤봐야죠"하시더랍니다. 그래도 장로님과 교인들은 이제는 거듭나야한다는 설교는 그만 하실거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그 주일에도 똑같은 설교를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교인들 눈 밖에 나서 다른 목사님을 모셔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째 같은 설교를 하던 중 제직회가 열렸습니다. 회의중에 여전도회장이 목사님께 "우리교회 수준이 아직 유치하게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로 밖에 안보이십니까? 아니면 목사님이 설교를 그것 밖에 할 줄 모르시는 건가요? 이제 거듭나야 한다는 설교는 지겨워서 더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이곳에 아무도 없으니까 오는 주일 또 그 설교를 하시면 목사님이 그만두시던가 우리가 다른 대책을 세워야겠습니다"고 당돌하게 말을 합니다. 목사님은 그렇게 하라고 대꾸했습니다.
여전도회장은 그 회원들과 함께 밤마다 모여 목사님이 다른 설교를 하실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이번 주 설교도 똑같은 본문과 말씀으로 전했습니다. 이 설교를 마치고 교회를 떠날 준비를 다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껏 같은 설교를 그토록 들어왔지만 이번만은 달랐습니다. 설교를 듣고 있던 여전도회장부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 석 달이 지난 그때부터 성령의 역사가 그 교회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교인들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마지막 설교를 마치고 교회를 떠나려는 목사님을 막고 그간에 자신들이 너무나 교만했었다고 고백합니다. 진실로 거듭나지 못했음에도 잘 믿는척했고 혼자 잘 섬기는 척했고 교회에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큰소리치며 행세하려고 했던 것과 진정 거듭나지 못했었기 때문에 우리의 거듭남을 위해 목사님을 통하여 계속 같은 설교를 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이사야 49:8에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했습니다. 본문 2절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한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3절과 같이 피력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선포하는 직책을 얻어 영혼이 회개하게 하고 구원 얻게 하며 하늘나라 들어가게 하는 일에 전혀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아무에게도 무엇에든지 거리끼지 않게 하고 전혀 약점 잡히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능력으로 역사하시어서 많은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목사들은 맡겨진 양떼들의 영혼을 책임지는 목회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인생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모든 일들을 견디고 환란, 궁핍, 곤란, 매 맞고 망신당하며, 제대로 잠도 못자고 끼니를 찾아 먹지도 못하더라도 자신의 영을 항상 깨끗하게 지키며 오래참고 견디면서 욕하고 헐뜯고 해치는 사람에게까지 자비를 베풀어 그로 인하여 감동을 받고 회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님의 감동하시는 도우심과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해야 합니다. 맡겨진 영혼이 구원 얻게 하기 위하여 잘못되면 야단도 치고 벌도주고 또 연약한 심령은 호소하고 달래고 권면하면서 기어코 그 영혼이 하늘나라 가게 해주려고 책임목회의 사명에 자기 생애를 쏟아 진심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목회를 할 수 없습니다. 목사도 사람이라 때론 감정도 상하고 오기와 혈기가 솟아날 수도 있지만 이런 모든 것들을 다 죽인다는 말입니다.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아래 살면서 하나님이 의롭게 쓰실 도구가 되어 하나님 뜻대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역하는 동안에는 영광의 대접을 받을 때도 있고 욕을 들을 때도 있으며 아름다운 대접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만일 "십일조를 온전히 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 창고가 쌓아 둘 곳이 없도록 복을 쏟아부어주신다"며 하나님 말씀 그대로 전했을 때 믿어지는 사람들은 기대감이 넘치도록 아멘을 하고 그대로 실천을 하는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또 목사가 돈 내도록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목사가 속이는 자같이 생각되어 질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얘기하기가 쉽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세상적 욕심을 채우는 목사와 교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레미야 23:1-2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하셨습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확실히 깨달았으면 하늘소망의 확실한 믿음으로 성령에 이끌려서 말씀순종하고 사는 것이 거듭난 이유이며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내 인생 내 멋대로 살았더니 실패했고, 또 다시 실패할 것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믿고 회개해서 용서받아 이제 내 인생을 예수님께 의탁해서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드리려고 회개도 했고 거듭나기도 했다면 지금쯤 여러분들의 신앙은 말씀 안에 거하여야 하고 성령에 이끌리는 생활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에게는 걱정이 필요 없습니다. 모든 것 다 예수님 안에 있으니 예수님이 알아서 책임져 주실 것인데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보좌를 버리시고 육신을 입은 우리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지은 죄 값을 우리가 치러야 하는데 그분이 대신 몸소 치루시면서 죄인의 발을 씻어주시고 우리를 대속해 주셨으니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낮추어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랍고, 고맙고, 황송무지해서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고 영화롭게 그 은혜 보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9절에 보면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수마귀들이 밤낮 기회를 엿보며 올무를 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아래 있는 사람은 죽이고자 하나 죽일 수 없는 사람입니다.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많은 무리 속에서 하나님은 생명싸개로 싸서 그 모든 사망의 올무를 벗어나게 해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이 지키시며 붙들어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의 종들이 환란을 겪고 핍박을 당하면 하나님 앞에 죄가 많아서 환란과 핍박을 받는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은 그 목사를 통하여 은혜받기는 영 틀려버린 것이 됩니다. 디모데후서 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했습니다. 세상은 마귀소굴이라서 더 돋보이는 믿음으로 살고 더 잘 섬기는 삶을 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그 사람은 더 큰 환란과 행패와 고통과 훼방을 당하게 마련인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 목자가 잘못하여 당하는 것이라면 양떼들도 그를 본보기 삼아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기 위하여 더욱 애쓰며 살아야 할 것이며 잘못한 일도 없이 핍박을 당하는 것이라면 끝까지 깨끗한 믿음 지키는 본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연단시키신다는 것이며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자 되게 한다는 것은 목사 자신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나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23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여 의의 병기로 쓰임 받고 그분께 요긴한 존재들로 기대 거시고 크게 쓰실 계획이 남아있는 양떼 되어 질수만 있다면, 지금은 가진 것이 없어도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든 것에 동참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자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 위하여 거듭나지 못했으면서도 거듭난 척하여 스스로 속이지 말며, 진실로 거듭났으면 이제 인생을 예수님께 맡기고 의탁해서 그분이 하자는 대로 순종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거듭난 성도의 삶의 생리가 되어져야 됩니다. 이것이 꼭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고, 형통하며, 모든 것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부러울 것이 없어서 항상 그리스도 안에 만족한 삶을 영원토록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예수님 안에서 순종하며 예수님 뜻대로 동행하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