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갑자기 통증을 느끼는 증상을 일반적으로 성장통이라고 한다.
이러한 신체적 성장통과 더불어 청소년기에 들어서 시작하는 사춘기(思春期)에는 정신적 성장통을 겪기도 한다.
나는 큰 아들이 사춘기를 보내면서 겪었던 정신적 성장통을 보면서 참 못마땅했었다.
"나는 그런 일 없었는데...... " 하고 이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없었던 것이 아니고 너무 일찍 겪었기에 잊고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교시절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중 나오신 늙으신 어머님을 뵈면 친구들이 볼까 부끄러워 피해 도망쳤고 가난한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는 현실이 불만스러워 집안에서는 말 조차 하기 싫었던 기억이 아스라히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중증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성장통을 한번에 날려버리는 계기가 있었다.
하루는 깊이 잠든 심야에 얼굴에 떨어지는 뜨거운 액체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살며시 눈을 떠 보았을 때 잠든 나의 머리맡에서 내가 그렇게 부끄러워했던 어머니께서 깊게 그리고 쪼끄라진 주름살 사이로 흐르는 눈물로 막내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던 것이다.
혹 어머니의 기도에 방해가 될까 나는 잠이 든 척 눈을 감고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 어머니를 부끄러워 했던 잘못을 뉘우치며 울고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 나는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분으로 마음 깊이 자리잡게 되었고 또한 장래에 훌륭한 목회자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품게 된 동기가 되었으며 정신적 성장통을 극복하는 역사적인 밤이 되었던 것이다.
잊고 있었던 오랜 세월 지난 과거를 떠올리니 자식의 성장통을 돕지 못한 부모로서 미안한 마음을 넘어 죄책감마저 들게 된다.
그러나 성장통은 개인뿐 아니라 가정 그리고 어떤 기관과 단체, 특히 교회도 예외 일 수 없는 반드시 성장과정에서 수반되는 현상 중에 하나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다만 이를 추락의 위기가 아닌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어떻게 슬기롭게 잘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라 하겠다.
요즘 들어 교회 안에 여기저기서 끙끙 앓는 소리들이 들린다.
한 편으로는 “어째 그렇게들 허약하고 나약하냐”고 야단도 치고 싶지만 아무래도 성장통을 겪는 것 같아 오히려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성장통엔 수술을 필요로 하거나 치료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약이란다.
그러나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주위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한편 영적 성장통을 앓는 교인들을 보면서 오히려 소망을 발견한다.
성장통이란 경험을 통해 이젠 더 이상 철 없는 어린아이가 아닌 것처럼 성숙하게 거듭나는 영적인 성인이 된다는 틀림없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린아이 같은 교인들은 그렇다 치고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성숙할 만큼 성숙했다고 자부하는 나는 왜 여기 저기가 쑤시고 아픈 걸까?
그렇다면 혹 아직 나는 미숙아......
속으론 부끄러워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고 있지만 굳이 뭘 그럴 필요가 있으랴
육체의 성장을 더 이상 바라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아닌데.....
영적 성장통엔 나이도 경력도 신분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성장통이란 증상은 앞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증거이므로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성장이라는 큰 기쁨을 보장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신체적 성장통과 더불어 청소년기에 들어서 시작하는 사춘기(思春期)에는 정신적 성장통을 겪기도 한다.
나는 큰 아들이 사춘기를 보내면서 겪었던 정신적 성장통을 보면서 참 못마땅했었다.
"나는 그런 일 없었는데...... " 하고 이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없었던 것이 아니고 너무 일찍 겪었기에 잊고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교시절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중 나오신 늙으신 어머님을 뵈면 친구들이 볼까 부끄러워 피해 도망쳤고 가난한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는 현실이 불만스러워 집안에서는 말 조차 하기 싫었던 기억이 아스라히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중증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성장통을 한번에 날려버리는 계기가 있었다.
하루는 깊이 잠든 심야에 얼굴에 떨어지는 뜨거운 액체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살며시 눈을 떠 보았을 때 잠든 나의 머리맡에서 내가 그렇게 부끄러워했던 어머니께서 깊게 그리고 쪼끄라진 주름살 사이로 흐르는 눈물로 막내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던 것이다.
혹 어머니의 기도에 방해가 될까 나는 잠이 든 척 눈을 감고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 어머니를 부끄러워 했던 잘못을 뉘우치며 울고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 나는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분으로 마음 깊이 자리잡게 되었고 또한 장래에 훌륭한 목회자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품게 된 동기가 되었으며 정신적 성장통을 극복하는 역사적인 밤이 되었던 것이다.
잊고 있었던 오랜 세월 지난 과거를 떠올리니 자식의 성장통을 돕지 못한 부모로서 미안한 마음을 넘어 죄책감마저 들게 된다.
그러나 성장통은 개인뿐 아니라 가정 그리고 어떤 기관과 단체, 특히 교회도 예외 일 수 없는 반드시 성장과정에서 수반되는 현상 중에 하나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다만 이를 추락의 위기가 아닌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어떻게 슬기롭게 잘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라 하겠다.
요즘 들어 교회 안에 여기저기서 끙끙 앓는 소리들이 들린다.
한 편으로는 “어째 그렇게들 허약하고 나약하냐”고 야단도 치고 싶지만 아무래도 성장통을 겪는 것 같아 오히려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성장통엔 수술을 필요로 하거나 치료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약이란다.
그러나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주위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한편 영적 성장통을 앓는 교인들을 보면서 오히려 소망을 발견한다.
성장통이란 경험을 통해 이젠 더 이상 철 없는 어린아이가 아닌 것처럼 성숙하게 거듭나는 영적인 성인이 된다는 틀림없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린아이 같은 교인들은 그렇다 치고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성숙할 만큼 성숙했다고 자부하는 나는 왜 여기 저기가 쑤시고 아픈 걸까?
그렇다면 혹 아직 나는 미숙아......
속으론 부끄러워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고 있지만 굳이 뭘 그럴 필요가 있으랴
육체의 성장을 더 이상 바라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아닌데.....
영적 성장통엔 나이도 경력도 신분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성장통이란 증상은 앞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증거이므로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성장이라는 큰 기쁨을 보장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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