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에 물들지 말라! 세상에 빠지지 말라!”는 말을 기독교인이라면 익숙한 말일 것이다. 바보상자인 TV를 보지 않기 위해 어느 선교사님은 그 TV를 땅 바닥에 던져 부서뜨렸다고 한다. 순수한 어린 마음에 그러한 영웅적 행동이 감동을 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설교단에서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구습을 끊고 행하려고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신학시절에 어느 교수님은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했는데 여학생을 업을 수밖에 없었는데 살을 대지 않기 위해 신문지를 등에 덮고 그 위에 업어 벌칙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한 행동이 당시 나에게는 매우 경건하게 보였고, 주님을 잘 섬기는 모습으로 여겨졌다. 정말 주님을 잘 섬기고 싶다. 바로 살고 싶다. 기독교인답게 살고 싶다는 희망과 바람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것이다.

가끔 각종 세상의 풍습을 끊는 것이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재미있는 TV 드라마, 유행가, 장식구, 또는 사치 등을 행하지 않는 것이 경건한 것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세속’에 대한 정의가 무엇이냐는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달리 나타나기 때문에 세속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면 늘 신앙의 괴리현상을 직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을 단시일에 끊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오랜 습관이었기에 그만큼 고질적이다. 그래서 ‘세속’이란 단어에 대한 정의보다는 차라리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기독교인의 바람에 새로운 빛이 비췰 것으로 믿는다.

로마서 12장의 말씀은 ‘기독교인의 헌장’이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이 말씀을 늘 묵상하면서 생활의 지침을 삼았다. 그래서 오늘날에 와서 교회들마다 암송대회를 할 때에 늘 언급되는 말씀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 말씀은 신앙인들이 외워서 늘 묵상해야만 하는 귀한 말씀이다.

1-2절의 말씀은 이와 같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하는 것에 관심을 쏟아 보자. 기독교인으로 살려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이다.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이라 이 세대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성경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단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명한다.

기독교인들의 삶에 있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행할 것인지에 관심을 가지면서 세상의 일에서 물러서는 것은 올바른 신앙의 삶이 아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구원하셔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에 어긋나는 행위가 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늘 실수하고 시간이 지나면 후회한다.

하지만 성경이 우리들에게 명하고 권하는 것은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것이다.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결혼한 에녹은 자녀를 낳으면서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 했다고 한다. 수도원적으로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이고, 세속적 습관을 포기하는 것이 경건하다고 본다면 교회사적으로 흔한 실수를 자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행동지침을 만들어 복종하면서 율법주의자처럼 행하려고 하면 신앙적 실수를 행하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마음의 중심이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새롭게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을 행하든지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을 새롭게 하면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 어떠한 것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경건하게 행하게 된다.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기도에 힘쓴다. 인위적인 방법이 아니라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서 최종적 판단의 권위를 성경에 둔다. 인습이나 지위의 권위에 두지 말고 오로지 말씀에 둔다면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 즉 판단을 새롭게 하는 것을 이해할 것이고 새롭게 할 수 있다.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