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자연의 문제인가 인간의 문제인가
자연으로부터의 전염병: 중국의 전염병 인식과 그 문제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극악한 치사율을 보이던 전염병들로 인해 많은 인명을 잃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와 이전에 인류를 괴롭히던 상당수의 전염병은 사라지고, 현재 남아있는 전염병 역시 이전에 비해 비교적 낮은 치사율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인류의 의료 문명 발전이 남긴 업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중 양의학이 기여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서양과 동양 의학의 수준은 왜 이렇게 커다란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존재하겠지만, 사상적 측면을 살피면 신앙과 종교 사상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부각된다.
서양 의학은 기독교적 세계관과 질병 이해를 토대로 발전되어 온 반면, 동양 의학은 동양의 전통 종교사상인 유교, 도교, 불교 사상을 따라 발전해 왔다. 그리고 이 사상적 차이가 오늘날 양측 의학의 수준 차이를 결정짓는 중대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됐다.
우선 동양 의학의 근본사상을 살펴보면, 자연 친화적인 세 종교, 즉 유교, 도교, 불교의 사상적 영향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도교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전염병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역사학자 조 헤이스(Jo N. Hays)는 그의 저서 <전염병과 범세계적 유행병(Epidemics and Pandemics)>에서 중국인들의 전통적 전염병 이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전염병을 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간주했다. 자연으로부터 나쁜 기운이 인체에 침투하면, 인체 내부의 음양 조화가 무너져 각종 병을 일으키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므로 전염병의 근본적인 치료법은 자연의 나쁜 기운을 없애고 몸 속 기운의 조화를 회복시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역시 자연으로부터 좋은 기운을 가진 약재를 채취해 복용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 여겼다. 이런 사상은 무위자연과 태극의 도(道)를 논하던 도교 사상에 깊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일부 병증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이 맞기도 했다. 그러나 도교적 질병 이해는 대다수 전염병 예방과 치료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전염병의 원인을 주로 자연으로부터 찾다 보니, 인간 대 인간 감염이라는 개념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도 민간 신앙에서는 역신(疫神, 전염병을 퍼뜨리는 악신) 개념이 있어 인격을 가진 악령이 전염병을 퍼뜨린다는 믿음이 존재했지만, 이런 생각은 상당한 수준의 교육을 받았던 의원들에게 미신으로 치부되어 수용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인간 대 인간 감염 개념이 희박했던 데는 동아시아 사람들을 지배하던 쌀농사 중심의 대가족 집단주의 문화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족 구성원은 모두가 한 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가족이나 촌락에서 누군가 심각한 전염병에 걸리더라도 그 사람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는 행태가 당연시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염병이 돌면 개개인을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촌락이나 마을 단위로 격리 혹은 폐쇄를 시키는 일이 빈번했다.
이처럼 중국과 동아시아 의학 전통에는 인간 대 인간 감염이라는 개념이 희박했고, 이에 따라 전염병 대응법 발전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헤이스의 분석은 이번 우한 폐렴 사태에서도 정확한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중국은 과거 조류독감 사태에서든, SARS 사태에서든, 아니면 이번 우한 폐렴 사태에서든, 자국에서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인간 대 인간 전염 가능성을 한사코 부인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다 병이 감출 수 없을 만큼 심각해졌을 때 비로소 행동에 나서곤 했다.
이는 중국의 생활 현실이 전염병 창궐을 막지 못할 정도로 행정, 의료, 보건 측면에서 열악하다는 사실을 감추려는 의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염병의 원인을 주로 자연에서 찾으려 하는 전통적 질병 이해도 이 어리석은 행태의 주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가족 중 한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경우 개별 격리를 꺼리는 점(이는 중국의 의료수준이 크게 낙후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높은 인구밀도에다가 공산주의로 강화된 집단주의 때문에 아예 도시 단위의 격리를 수행한다는 점 등으로 봤을 때, 헤이스가 분석한 중국의 도교적 질병 이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상당한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문제는 이런 전통적인 질병 이해와 그에 따른 전염병 대처가 현재 하루 일백명 이상씩 감염자가 사망하고(중국의 공식 발표를 믿는다는 가정 하에), 그러고서도 질병의 확산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는 처참한 사태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사람으로부터의 전염병: 서구의 전염병 인식과 그 공헌
서구인들 역시 20세기 초반까지는 전염병으로 많은 고통을 당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부터 동양과 서양의 전염병 대응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발견된다.
서구에서는 비록 치료약 발견이 늦어져 전염자를 많이 살리지는 못했지만, 전염 자체를 막는 데는 상당한 의학적 진전을 보였다. 이는 일찍부터 인간 대 인간 전염을 전염병의 주요 원인으로 간주했고, 이에 맞춰 개인 격리나 생활 환경 개선, 공중 보건 개념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런 발전이 가능했던 핵심 이유 가운데, 오랜 세월 서구인의 세계관과 생활을 지배해 온 기독교적 가르침이 자리잡고 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모든 병의 출처를 인격적인 존재나 사람 자체로부터 찾도록 가르쳤다.
구약성경에 밝혀진 치명적 전염병의 원인은 주로 인격적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그가 부리시는 천사(애굽의 재앙이 대표적)였다. 신약성서에서는 귀신, 악신, 악령 등으로 호명되던 인격적 존재자들이 각종 질병과 전염병의 원인으로 추가됐다.
여기에 더해 문둥병 같은 경우, 신구약 성경 모두에서 사람이 원인이 되어 퍼지는 질병으로 명시되고 있다(물론 오늘날에는 문둥병의 여러 종류 가운데 전염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있다).
그 덕분에 서구에서는 전염병이 인격적 존재자나 인간 간 접촉이 원인이 되어 확산되는 질병이라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서구에서는 전염병이 돌면 인간 대 인간 감염을 막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14세기 흑사병 창궐 당시에도 이런 성향이 발견된다. 당시 흑사병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감염된 가족 등을 포기한 채, 인적이 한적한 시골 등지로 피신하는 일이 많았다.
중세 르네상스 문학의 선구적 작품으로 알려진 지오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의 <데카메론(Decameron)>은 이처럼 흑사병의 인간 대 인간 감염을 피해 시골로 피신해 온 남녀 10명의 이야기를 모은 소설이다.
1340년대 흑사병이 한창 기승을 부릴 당시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6세는, 흑사병으로 죽은 이들의 시체 해부를 적극 허용한 바 있다. 죽은 육체가 주의 재림 시에 부활할 것이기에 유해를 온전히 보존해야 한다고 믿었던 당시 신앙 배경 속에서, 이는 혁명적인 조치나 다름이 없었다.
그 정도로 당시 교회는 전염병이라는 것이 사람을 통해, 사람을 매개 삼아 전달되는 것이라는 점을 확고하게 믿었던 것이다.
오늘날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되돌아본다면, 동양 의학이든 서양 의학이든 서로 장단점이 있고, 맞고 틀리는 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티푸스, 콜레라, 이질 같은 경우는 수인성 전염병으로서 사람 자체가 직접적인 전염의 매개체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쪽은 동양 의학의 생각이 맞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우선 전염의 주원인으로 보았던 서양 의학은 개인 위생과 공중 보건 개념을 이른 시기에 발전시켰고, 이는 사람을 직접 매개로 삼지 않는 다른 전염병마저 제법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약화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결국 오늘날 대다수 전염병의 극복은 기독교 문화와 신앙에 입각한 인간 이해를 바탕 삼은 서양 의학의 공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역사적으로 뿌리깊게 자리잡은 동양과 서양의 질병 인식의 수준 차이는 현재 우한 폐렴 사태를 통해서도 확실하게 입증되고 있다.
중국은 확진자와 사망자 급증으로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중국 문화에 종속돼 있던 한국 역시 인간 대 인간 감염의 위험성을 크게 인식 못하는 듯 중국 여행객의 입국을 계속해서 허용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질병 확산 상황이 심각해진다는 보고가 들어오자마자, 중국 여행객들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물론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외교적 권세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인간 대 인간 사이 전염병 감염의 위험성을 절박하게 인지하고 있는 기독교적 문화 배경 역시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 한몫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인들과 그 외 동아시아인들이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 역병의 매개체 취급을 받는 것을 보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인종 차별이라는 굴레를 덧씌우며 대처하고 있는데, 이는 질병 인식에 대한 종교문화적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라 볼 수 있다.
서구에서 전염병 매개체가 되는 확진자들은 더 이상 주변인에게 병을 확산시키지 말아야 할 사회적 책임을 갖는 '개인'으로 여겨진다.
확진자들 혹은 전염병 확산의 원인이 될 소지를 안고 있는 이들은 공공 장소에서의 인종 차별을 불평할 만한 '권리'를 가진 자들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선 스스로 병의 확산 방지를 위해 자신을 격리하고 치료 방안을 찾아나가야 하는 '의무'를 가진 자들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 전염병 인식은 중국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전염병의 원인을 어떻게든 자연에서 찾으려 한다는 점, 인간 대 인간 감염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 집단주의와 친중사대적 정권 성향 때문에 중국 여행객들의 격리나 자국 확진자들의 격리에 소극적이고 관리가 허술하다는 점 등이 중국과 유사하다.
이는 곧 중국과 비슷하게 우한 폐렴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뜻한다.
전염병의 창궐 위협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한국의 교회와 신앙인들은 기독교적 가르침보다 도교적 인간 이해를 여전히 신뢰하는 친중 성향의 전통문화 풍토 때문에, 여러 모로 공동체의 회합과 신앙의 교제 측면에서 제약을 받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