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와 이번 주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안젤리나 졸리(말레피센트), 엘르 패닝(오로라), 미셸 파이퍼(잉그리스 왕비), 치웨텔 에지오포(코널), 샘 라일리(디아발) 등이 출연한 영화 <말레피센트 2> 속 사상에 대해 분석합니다. 요아킴 뢰닝 감독의 이 영화에서는 강력한 어둠의 지배자이자 무어스 숲의 수호자 '말레피센트'가 딸처럼 돌봐온 '오로라'와 '필립 왕자'의 결혼 약속으로 인간 세계의 '잉그리스 왕비'와 대립하게 되고, 이에 요정과 인간의 오랜 연합이 깨지며 숨겨진 요정 종족 다크페이의 리더 '코널'까지 등장하면서 두 세계가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전쟁에 휘말리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편집자 주
문화와 권력: 문화계, 독립된 문화권력 투쟁의 장(場)
한국 문학비평계의 거장 이어령 박사는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56년 <우상의 파괴>라는 제목의 비평문을 한국일보에 투고하였다.
당시 창간 불과 3년 밖에 되지 않았던 신생 언론 한국일보는 이 논평의 파급력을 예상하고, 1면 전면에 그의 글을 게재하였다.
논평문에서 그는 당시 문단의 대표자로 추앙되던 소설가 김동리, 이무영, 시인 조향의 문학 사상과 필체를 구시대의 우상으로 지목하고, 문인들이 이러한 우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창조적 파괴'를 단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분명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망치로 철학하기(die Philosophie mit dem Hammer)"라는 테제를 연상시킨다. 이어령 식의 '망치로 문학하기'를 선포한 이 글은,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며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이어령 박사의 이름은 한국 문학계에 깊게 각인되기 시작한다.
이어령 박사의 작은 반란은 문화계 내부에 형성되어 있던 권력의 조류와 그에 대한 투쟁이라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문화는 자체적으로 하나의 독립된 권력 투쟁의 장(場)을 형성한다. 문화계 내부에는 분명 정치계 못지 않은 권력의 투쟁과 이양 과정이 상존한다.
문화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그 수단으로서 문화 콘텐츠의 제작과 유포를 통제하는 힘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도 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치열한 투쟁의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오늘날 한국 대중문화의 헤게모니, 특히 영화계의 패권이 친북, 친중, 진보 성향의 민중주의 혹은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세력에게 집중되어 있는 사이, 세계 문화 권력의 헤게모니는 문화, 종교, 인종의 다원적 공존과 평화를 추구하는 집단들, 즉 정치적 올바름을 표방하는 거대 자본들에 의해 점유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빠른 속도로 기업의 몸집을 불리고 있는 디즈니가 존재한다.
디즈니의 공격적 인수합병 행보는 1984년 마이클 아이스너가 CEO로 취임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침몰해가던 디즈니를 살리기 위해 아이스너는 콘텐츠 다각화를 위한 인수합병에 착수하는데, 2005년에 그가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영화사 미라맥스, 지상파 방송망 ABC, 스포츠 채널 ESPN이 디즈니에 편입된다.
2006년 밥 아이거가 후임 CEO로 취임하는데, 그는 선임이었던 아이스너보다 더 공격적으로 콘텐츠 다각화를 추진했다.
2006년에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소유하고 있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인수하고, 2009년에는 '아이언맨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던 마블 코믹스를 인수한다.
2012년에는 루카스필름과 루카스아츠를 인수해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프랜차이즈 판권을 소유한다. 그리고 2017년에는 영화사 20세기 폭스를 인수함으로써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대 미디어 제국을 건립한다.
뿐만 아니라 올해(2019년) 11월에는 온라인-모바일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가 론칭한다. 이로써 디즈니는 넷플릭스가 주도하고 있는 OTT(Over The Top Service)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서 디즈니가 명실상부 세계 대중문화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기독교 문화의 보존, 계승, 발전을 이룩하려는 많은 문화계 종사자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문화 권력의 정점에 오른 디즈니가 기독교적 문화 요소와 가치를 도태되어야 할 구시대적 전통으로 규정하고 문화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와 심판: 디즈니의 기독교 문화 박해
디즈니가 탈중심주의와 다원주를 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젠더 혁신을 요구하는 페미니즘을 표방하며 정치적 올바름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전의 논평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이번에 개봉한 <말레피센트> 시리즈 역시 이런 문화적 노선을 대변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중세와 근대 초 기독교 정치권력이 자행한 마녀사냥 역사를 비꼬듯, 마녀 이미지를 가진 주인공 말레피센트를 선역으로, 정치권력을 지닌 스테판 왕(샬토 코플리 분)이나 잉그리스 왕비(미셸 파이퍼 분)를 악역으로 지정한다.
일면 이 작품은 1996년 개봉된 디즈니의 34번째 클래식 장편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꼽추>의 주제의식을 직접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
<노틀담의 꼽추>는 마녀로 몰린 억울한 집시 여인과 그를 도우려는 추악한 외모의 꼽추를 통해 기독교와 결탁한 정치권력의 추악함을 폭로하는 데 주력한다.
디즈니의 행보는 미국 주류 문화계의 헤게모니가 기독교 문화를 옹호하던 측에서 배척하는 측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과거 오컬티즘과 반기독교 문화조류에 가해지던 박해 행태가 이제는 기독교 문화에 대한 박해에 이전되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서구 기독교 지도자들이 문화적 가치충돌을 이유로 들어 행했던 잔학한 고문과 살인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범죄 행위이다. 그렇지만 다음의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가는 곳마다 이교 신비주의자들이나 무당, 박수, 신접한 자, 흑마술사 등을 만났고 때로 그들과 큰 갈등을 겪었지만, 그들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다.
오컬티즘과 마녀, 마술사 등에 대한 잔혹한 박해는 사실 순전한 기독교 신앙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는 본질적으로 정적 숙청이나 재산 갈취, 공포정치를 통한 권력 안정 등을 목표로 삼은 위정자들의 범죄 행각이었지, 기독교 신앙에 속한 행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문화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는 디즈니의 작품들은, 이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고 기독교 신앙과 가치관 전체를 폭력적인 것, 적대적인 것으로 일반화하여 문화적 심판을 가하고 있다.
마치 로마 제국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던 것처럼, 이제 거대 문화 제국이 된 디즈니가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자신들의 사상에 상충되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 문화를 박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21세기 대중문화계 내부에서, 기독교 신앙인들은 새로운 형태의 '아테오이(atheoi, 신을 공경하지 않는 이들)', '말레피쿠스(maleficus, 해로운 이들)' 취급을 받고 있다.
디즈니가 신봉하는 오컬티즘과 이상주의적 문화 다원주의를 존중하지 않기에 '아테오이'로 지목되고, 이로써 현대 문화계에 해로운 영향을 주는 자들, 즉 '말레피쿠스' 판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말레피센트>라는 영화 제목은 중의적으로 풀이된다. 한편으로 중세에 '말레피쿠스'로 규정되어 고난받은 마녀들과 오컬티즘을 복권시키는 의미를 담아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디즈니의 문화 권력에 복속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말레피쿠스'로 규정하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정당한 역사적-현실적 이해에 기반을 둔 문화적 비판은 수용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디즈니가 현재 누리고 있는 기독교 문화에 대한 심판자적 위상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몰이해와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교조적 성격에서 유래된 문화적 폭력의 권좌이다.
가치의 자유와 다원적 공존이라는 평화주의적 이상을 명분으로 내건 디즈니 문화권력에 배태된 이런 폭력적 본질은 분명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것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