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박욱주 교수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25일 개봉하는 제프리 나크마노프 감독, 키아누 리브스(윌 포스터), 앨리스 이브(모나 포스터), 토머스 미들디치(에드 휘틀) 주연 영화 <레플리카>에 대해 분석합니다. 이 영화는 AI 기술 발달에 의한 인간복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기술과 인간 본질: 인공지능 시대, 영혼에 대한 믿음의 철폐
<레플리카>는 신경과학자이자 인공지능 개발자인 윌리엄 포스터 박사(키아누 리브스 분)와 그 가족들에 대한 서사를 전한다.
포스터 박사는 교통사고로 죽은 아내와 아이들의 뇌신경계를 스캔해 인공지능으로 재현한 후, 이를 각기 복제된 신체에 주입해 되살린다. 이로써 이 영화는 오늘날 제4차 산업혁명의 이념이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 복제인간, 휴머노이드, 그리고 정신전송이라는 소재를 모두 활용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인공지능 기술이 궁극적으로 정신전송을 통한 삶의 연장을 위해 사용될 것임을 예고한다. 그런데 이는 단지 대중문화에서만 예고되고 있는 사안은 아니다.
실제로 다수의 미래학자들과 인공지능 개발자들은 인공지능 개발의 궁극적 이념과 지향점을 죽음의 극복과 삶의 획기적인 연장에 두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신경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고, 이 메커니즘을 온전하게 재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출현한다면, 이 기술이 인류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내는 가장 현실적인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로서 동 대학 인류미래 연구소(Future of Humanity Institute) 책임자와 인공지능에 관한 공공경영 프로그램(Governance of AI program) 책임자를 겸임하고 있는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2005년 학술저널 에 기고한 자신의 논문에서 인공지능에 의해 개선될 인류의 운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현재의 인간 본성은 응용과학과 여타의 합리적 방법들을 활용하여 개량될 수 있다. 이런 방편들로 말미암아 인간의 수명 증대, 지적·신체적 능력 확장, 정신상태 및 기분에 대한 통제력 강화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보스트롬을 비롯해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나 사이먼 영(Simon Young)과 같이 인공지능 기술에 의해 새롭게 변화될 인류의 미래를 적극 옹호하는 이들은 유물론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본질적 변화, 즉 인간됨의 변화를 수긍한다. 인간의 실재란 물질작용일 뿐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이 물질작용의 성능과 내구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줄 수 있는 기술의 적용을 권장하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실험 및 개조 시도, 특히 인간복제나 정신전송 기술의 개발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기독교적 견해가 오히려 인류의 획기적 '진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여긴다.
만일 인간의 존재적 본질이 오직 전기적-화학적 물질작용일 뿐이라고 믿는다면, 인간의 개조에 찬동하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transhumanists)의 주장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 된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으로 보면, 복제된 몸이나 휴머노이드, 혹은 기타 저장장치에 인간의 정신을 '카피'해 전송하는 것이 과연 '영혼'의 보존과 전이로 이어지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인간의 정신을 물리적으로 지탱하는 질료적 구성체 전체가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따르는 것이 아닌 인공물로 대체되었을 때 과연 인간의 영혼이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을까?
기술과 영혼: 정신이 전송되면 영혼도 전송될까?
여기서 인공물로의 대체라고 할 때, 부분적 장기이식은 고려되지 않는다. 현재 언급하고 있는 인공물로의 대체는 본래의 육체가 완전히 폐기처분되는 인간 정신의 완전한 전송 사례만을 포함한다. 이 사안에 대해 성경은 여러 부분에서 간접적인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구약성경의 말라기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말 2:15)".
이 구절은 영혼창조설이나 영혼선재설을 반박하는 근거로 자주 활용된다. 온 인류의 영은 한 영, 즉 아담의 영으로부터 유전된 것이라는 영혼유전설이 정설이 된 데에는 이 구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이에 대한 현대 구약학자들의 해설은 다소 불분명하다. 조이스 볼드윈(Joyce G. Baldwin)이나 데이비드 베이커(David W. Backer)같은 이들은 "오직 하나를 지으셨다"는 구문이 아내와의 이혼을 금하는 문맥 가운데 위치해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하나를 지으셨다"는 진술이 '많은 영 중에 하나를 지으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결혼한 남녀의 영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렇지만 "오직 하나를 지으셨다"는 것이 어떠한 방향으로 해석되든 간에, 남녀의 연합을 통해 '거룩한 자손'을 얻게 된다는 가르침만은 확고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다수의 주석가들이 동의를 표한다.
즉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보존된 인간의 본질은 출생의 섭리대로 태어난 이들, 이 섭리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이들에게만 수여될 수 있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해석과 상보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의미를 가진 구절이 요한계시록에도 발견된다.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4-15)".
신약학자 그랜트 오스본(Grant R. Osborne)은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라는 진술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이교도들은 돌이나 청동으로 만든 신상 자체를 신과 동일시하지는 않았으나, 신들이 그 신상에 생기, 즉 신의 숨(πνεῦμα, pneuma)을 내려 영혼을 갖게 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신탁을 받는 예언자들(oracles)이 이렇게 신상에 내린 영혼에 감화를 받아 신의 말을 대언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오스본은 계시록이 예언하고 있는 장면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땅에 거하는 자들', 즉 사람들이 만든 인공물인 우상에게 영적 존재가 함께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것도 우상숭배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말을 대언하게 할만한 지능을 갖춘 영이 함께할 수 있다는 해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우상이라는 인공물에 지적 능력을 갖춘 영이 함께할 수 있다면, 같은 원리로 인간의 영혼도 인공물에 이식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생각은 말라기서의 진술로 인해 거부된다. 말라기의 예언대로라면 설사 인공물 속에 영이 이식된다 해도 그것을 '거룩한 자손', 즉 온전한 사람의 영혼으로 보기 어렵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요한계시록의 '생기를 줌'은 사람의 영을 이식하는 일과는 무관한 사태를 지목하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인공물이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이나 정신을 갖추게 되더라도, 그것이 결코 사람의 영혼을 온전하게 보존해 이식한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가르침으로 읽혀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생기나 영이라는 개념을 중시하는 성경적 해석이 자연주의, 과학주의, 유물론적 사고에 경도된 트랜스휴머니스트들에게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기독교인들이 기술의 진보 자체를 부정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진보는 역사적 현실이다.
다만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반성이 결여된 기술만능주의 사고가 인간의 본질 규정을 좌우하도록 방치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할 따름이다.
기술이란 결국 사람의 믿음과 신념에 의해 그 발전 방향이 결정된다. 기독교계는 영혼의 보존과 구원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정신전송 기술에 대한 과신과 장밋빛 낙관을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인공지능과 정신 전송에 관한 여러 고민들이 대중문화계의 단골 소재가 된 현재의 상황은, 기독교인들에게 더 많은 고민과 고찰의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