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습노트 시리즈'의 일환으로 팀 켈러 목사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본 글은 교회다움과 서동준의 콜라보로 진행되었습니다. 굵은 글씨는 저자가 표시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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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 채 안되었던 뉴욕의 복음화율이 팀 켈러가 뉴욕에 온 이후 5%를 상회하게 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도시 사역에 큰 족적을 남긴 팀 켈러는 어떠한 경로로 세속 도시 뉴욕에 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일까요?
1. 팀 켈러의 '리디머 장로교회' 개척 스토리
리디머 장로교회 개척 스토리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시점은, 팀 켈러가 한 시골 지역 교회의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던 시점입니다.
우리는 종종 영향력 있는 이들의 현재 모습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러한 영향력을 발휘하기까지의 여정에 대해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팀 켈러도 여기서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팀 켈러 역시 종종, 탁월한 재능으로 별다른 준비 없이 사역적으로 큰 성공을 일구어낸 대형교회 목회자 정도로 여겨지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언급한 것처럼, 켈러는 사실 리디머 장로교회를 개척하기 전 노동자 계층들이 많은 시골 지역 교회인 웨스트 호프웰 장로교회(West Hopewell Presbyterian Church)에서 9년간 목회를 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켈러는 이 곳에서의 시간들을 회고하는데요. 그는 이 때의 목회의 경험이 자신 인생에 준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제게) 좋은 경험이었어요. 젊은 목회자들은 대형교회의 부교역자로 섬기는 것이 목회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
하지만 문제는 한 분야만 잘하는 사역자가 된다는 거예요. 그 교회가 얼마나 성장하고 있든 상관없이 부교역자로 있으면 그런 사람이 돼요. 결혼식과 장례식을 진행하거나 8세부터 80세까지의 성도들을 상담해 줄 기회가 없어요. 또 생각만큼 설교를 할 기회도 많지 않구요.
저는 24세부터 매 주일과 수요일 저녁마다 설교를 했어요. 휴가는 1년에 2주였죠. 매달 결혼식과 장례식을 진행했고요. 양로원에서도 말씀을 전했어요. 9년간의 호프웰에서의 사역을 마쳤을 때, 제 나이가 33세였는데 1,300-1,400편의 설교 원고가 나왔어요.
돌아보면 그때 성도들이 저 같은 젊은 목회자를 사랑과 긍휼과 이해심으로 잘 받아줬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준비된 것이 참 감사해요. 사람들은 젊은 목회자로서 평범한 교회를 맡아서 몇 년 간 사역하는 것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요.
(CGN TV, '팀 켈러의 정의란 무엇인가 - 1강', 굵은 글씨는 필자의 것이며, 일부는 명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번역을 '보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인터뷰에서 팀 켈러는 아주 평범한 교회에서 사역했던 이 시간이 목회에 대한 자신의 비전들 가운데 대부분을 형성했던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즉 그가 신학교에서 교수사역을 감당하면서 '도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립하는 것 외에, 대부분의 목회적 비전과 가치관을 버지니아 주의 이 작은 동네 교회(West Hopewell Presbyterian Church)에서의 목회하며 정립했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웨스트 호프웰 장로교회에서 목회의 다양한 비전과 방향성을 정립한 팀 켈러는 이후 필라델피아로 이주하여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조교수로 실천신학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켈러는 자신이 섬기고 있던 PCA 교단 국내선교위원회(Home mission board)로부터 '뉴욕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해 보라'는 제안을 받게 되는데요. 여기서 켈러는 이 제안을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 부임한지 3-4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자신 역시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켈러는 제의를 거절하는 대신, 개척에 나설 다른 사람을 찾는 일을 도와주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그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뉴욕에 개척할 목회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죠.
더욱이 뉴욕 인근 지역을 조사하며 켈러는 뉴욕의 영적인 필요를 목도하면서 자신이 뉴욕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기도한 끝에, '뉴욕 지역 개척'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생각하고 1989년 4월 9일 첫 예배를 드림으로 뉴욕 맨해튼 리디머 장로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를 개척하게 됩니다.
2. 리디머 장로교회의 성장, 그리고 교회 분립
1989년 개척 이후, 리디머 교회는 뉴욕 내 지식인을 향한 켈러의 호소력 있는 설교와 역동적인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갑니다. 그 결과 기존 예배 처소로 사용하고 있던 공간으로는 교인들의 수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죠.
그리하여 리디머 교회는 다양한 방법을 궁리해 보다, 결국 한 공간에 교인들 전부가 다함께 모이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곤 근방 지역에 다른 예배 처소들(campus)을 마련하게 되지요.
그 결과 리디머 교회의 성도들은 각기 다른 처소(campus)에 나뉘어서 예배를 드리게 되고, 팀 켈러는 이 예배 처소들을 오고가며 설교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켈러는 리디머 교회가 단순히 하나의 거대한 교회(Mega church)로 머물길 원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켈러는 도시를 더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해, 리디머 교회의 각 예배처소(campus)들이 각기 독립된 형태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이를 위해 켈러와 리디머 장로교회는 리디머라는 이름으로 모인 '한 교회의 회중들'이 '세 지역'에 나눠 예배를 드리는 것을 넘어(Multi-site campus), 리디머의 '정신은 공유'하나 '각기 독립적인 교회'로 서 나가게 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게 됩니다.
팀 켈러는 '교회 분립'의 시점을 자신의 은퇴로 삼고 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리디머의 캠퍼스들이 각각 독립적인 교회로 자생해 나갈 수 있도록 지도자들을 양성하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은퇴가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그는 교인들 앞에서 자신의 은퇴을 알리며, 앞으로 리디머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때가 찼습니다. 세 회중으로 구성된 하나의 리디머 교회는 이제 각각 독립적인 세 개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완전한 각각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Eastside, Westside, Downtown의 교회들이 그들 각각의 장로회, 직원들, 사역자들, 평신도 리더들, 그리고 담임목사들과 함께 말입니다.
세 개의 리디머는 이전의 하나의 리디머보다 훨씬 더 나을 것입니다. 최소한 세 가지 이상의 영역에 있어서 말입니다. 첫째, 이웃들에게 다가가는 것에 있어, 둘째, 새로운 리더들을 양육하는데 있어, 셋째, 뉴욕의 핵심 도시 안에 더 많은 교회들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인데, 이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각각의 교회들은 교회 개척에 있어서 별개의 동력이 될 것입니다. ...
(리디머 교회) 리더들은 리디머 교회가 단지 하나의 메가 처치로 끝나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족 교회가 되고 싶었습니다. 도시 안에 있는 모든 이웃들과 접점을 형성할 수 있게끔 말이죠. ...
부요해지려면 나눠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여기, 이 도시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십니다. 그 분은 여러분이 꼭 잡고 놓지 않을 때,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라, 조건 없이 나누고, 안전한 곳을 떠나 밖으로 나아갈 때에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팀 켈러가 담임목회를 그만두는 이유(리디머 교회 특별 광고)', 2:30-5:00, 교회다움 번역, 굵은 글씨는 필자의 것.)
팀 켈러는 이러한 교회 분립 과정을 '자녀가 결혼하여 독립하는 과정'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즉 자녀가 결혼을 통해 떠나는 과정이 상실의 아픔을 주지만 서로의 성숙과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게 해 주듯, 교회의 분립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팀 켈러는 교회의 분립이 가져다 주는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이 아픔은 곧 서로의 성숙과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분립을 진행했습니다.
실제로 2017년 5월, 리디머장로교회라는 대형교회는 공식적으로 각기 독립적인 세 교회로 분립되어, 이전에 Lincoln Square에 개척됐던 교회를 포함해 총 4개의 분립 교회가 탄생합니다. 그리고 각 교회는 하나의 정신을 공유한, 독립된 교회들(가족 교회)로서 뉴욕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해 나가고 있습니다.
"리디머 가족 공동체는 복음 운동을 통해 모든 사람을 위한 위대한 도시를 세워나가는 것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뉴욕에 개인적 회심과 공동체 형성, 사회 정의와 문화 변혁을 가져다 주고 이를 통해 전 세계를 변화시킨다."
3. 팀 켈러의 은퇴 그 이후, 그리고 시티 투 시티 무브먼트
2017년 7월, 팀 켈러는 교회 분립과 함께 리디머 장로교회의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납니다. 그리고 리디머 교회를 분립된 그리고 팀 켈러가 은퇴한 가장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인 '복음 안에서 도시를 섬겨나갈 지도자 양성'을 위해 자신의 온 힘을 쏟게 되죠. 특별히 켈러는 은퇴 이후 자신이 설립한 시티 투 시티(City to City, 약칭 CTC)를 통해 그러한 사역을 감당해 나가게 됩니다.
오늘날 세계는 지역과 문화와 상관없이 도시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로 인해 도시의 중요성이 점차 커져가고 있는데요. CTC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복음으로 도시를 섬길 지도자들을 돕기 위해 시작된 일종의 무브먼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도시에 교회를 개척할 지도자 그룹을 모집하고 양성하며, 그들이 교회를 개척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전 세계 도시에서 복음 운동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CTC는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그 중에 네 가지 훈련 과정만 간략히 소개 드리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City to City 홈페이지(www.redeemercitytocity.com/)를 참고하시거나, City to City의 일원이신 오종향 목사님께서 쓰신 글(http://moksin.duranno.com/moksin/view/article.asp?articleNO=31600)을 참고하세요!)
▲CTC의 훈련 프로그램. |
감사하게도, 이러한 CTC의 훈련 프로그램 중 일부를 한국에 있는 목회자들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CTC의 지원으로 한국에 City to City Korea(약칭 CTCK, www.ctck.or.kr/)가 생겼기 때문인데요.
한국의 범교단적 복음중심 교회개척운동 단체인 CTCK는 CTC가 추구하는 비전과 전략에 동의하면서, 이를 한국의 상황에 적용하여 복음으로 무장한 도시 지도자들 양육하기 위해 다양한 사역들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CTC 운동은 전세계 56개 도시에서 421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13,000명 이상의 도시 교회개척 지도자들을 양성하여 50개의 네트워킹 그룹을 형성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팀 켈러는 은퇴 이후 CTC 운동에 더 깊숙히 합류하여 지도자 훈련 및 양성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계속>
▲서동준 강도사. |
공동 저자 1. 서동준 강도사
총신대학교 신학과(B.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다. '세계기독교학'을 깊이 공부하기 위해 영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으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post.naver.com/seodj59)
공동 저자 2. 김재완 전도사
총신대학교 신학과(B.A)를 졸업하고,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재학 중에 있다. 건강한 고민을 모으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https://www.facebook.com/Churchtobe/)
※ 각주는 편의상 생략하였습니다.
각주 보기: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2979469&memberNo=15983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