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의 종교와 사람의 종교
기독교는 신의 종교이고 불교의 사람의 종교다
성경은 신의 언어(계시)고 불경은 깨달은 사람의 언어다
믿음 | 기독교 | 불교 |
신 | ○ | × |
천국 | ○ | △ |
지옥 | ○ | △ |
시작과 끝(만물의 기초) | ○ | × |
예언과 성취 (계시) | ○ | × |
삶의 방식 | ○ | ○ |
불교는 무신론 종교다
신이 존재하지 않으며 신이 없으니 믿을 대상이 없다
석가모니는 사람이다
반면 예수는 신으로 있다가 사람의 몸으로 왔다 다시 신으로 돌아갔다(신→사람→신) 그는 원래부터 신이다
석가모니는 죽어서 무덤에 묻혔고 그의 뼈로 추정되는 사리가 아직도 있다고 말한다
석가모니는 공자나 맹자, 소크라테스처럼 제자들을 좀 더 두었던 일종의 선생이다
우리가 공자나 맹자, 소크라테스를 신으로 경배하거나 그에게 복을 빌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생전에 자신이 구원자라고 주장하거나 신이라고 언급한 적이 없다
불교가 공자,맹자,소크라테스와 다른 것은 좀 더 종교로 진화되었다는 사실 뿐이다
그러므로 불상에게 절을 하거나 복을 빌거나 석가모니를 신처럼 경배하는 것은 본질에서 변질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2. 죄와 속죄의 개념
속죄의 방식에서 기독교는 중재자를 통해, 불교는 자아의 깨달음을 통해 이룬다
사람이 공덕을 통해 신에게 이를 길이 없다
사람과 신의 간격은 하늘과 땅보다 크고 우주와 땅의 차이를 뛰어넘는다
사람은 이 차이를 쉽게 간과해 버린다
신의 은혜가 아니면 신의 나라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다
| 기독교 | 불교 | 이슬람 |
속죄 | 예수 그리스도 | 공덕, 번뇌와 욕심을 버림 | 행위 |
의미 | 외적, 중재자 | 내적, 자아 | 외적+내적 |
속성 | 사랑 | 자아 | 증오 |
기원 | 유일신의 종교 | 인간의 종교 | 사단의 종교 |
불교에는 죄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으나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다
죄의식에 대한 개념이 약할 수 밖에 없다
죄에 대한 개념이 약하기 때문에 죄에 대한 속죄의 방법도 확실하지 않다
어떤 면에서 불교는 신자에게 크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내가 아는한 주위에서 불교신자가 죄의식을 느끼고 고민하는 것을 보기 힘들었다
뉴스에서조차 기독교인이 범죄를 하면 꼭 종교를 인용하고 회자시키지만
불교인이 범죄를 하면 종교를 부각시키지 않는다
석가모니는 스스로 깨달아 구원하라 말한다
3. 극락과 지옥의 문제
원시불교에 극락과 지옥의 개념이 없었다
석가모니가 설파하지 않은 개념이 나중에 유입되었는데 아마도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극락이니 지옥의 개념은 신이 존재해서 누구를 극락에 보낼 것인지, 지옥에 보낼 것인지 관장해야 하지만 불교에는 신이 존재하지 않으니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
무신론적 불교에서 극락과 지옥의 개념은 그 자체가 모순일 수 밖에 없다
전생이나 환생도 마찬가지다
부활은 있어도 삶을 다시 사는 윤회나 전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 존재하지 않으니 이런 것을 결정할 근거가 부족해 보이는 것이다
불교인들은 극락을 원할까? 환생을 원할까? 현생의 복을 원할까?
4. 알파와 오메가
기독교는 전체를 설명하지만 불교는 부분만 설명한다
석가모니가 불교를 창시한 BC 600년부터 현재까지 2600년만 설명할 수 있다
불교는 시작과 끝을 모른다
| 시작 | 역사 | 현재 | 끝 |
기독교 | 창조, 인류의 기원 | 예언과 성취 | 예언과 성취 | 인류의 종말(계시록) |
불교 | × | 석가모니 (BC 600 년) | 불교 | × |
종교란 인류의 시초와 종말, 그리고 예언과 성취 같은 신적 존재를 증명할 만한 초자연적인 기적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초자연적인 상황에 익숙하지 않고 행할 능력도 없어 인간과 신을 구별하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에는 이런 만물의 시초와 종말 같은 개념에 한계가 있다
발생학적으로 석가모니의 존재가 역사의 중간에 나타나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불교에는 시작도 없고 끝이 없다
그들은 우연히 물질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진화론도 상관하지 않는다
후에 이런저런 교리가 추가되어 혼합되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좋은 의미에서도 포용성과 수용성이 증가하지만 참진리에서는 점점 멀어진다
반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자신이 시작과 끝이라고 선언한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계22:13)
알파는 창조주를 오메가는 심판자를 의미한다
5. 신의 형상의 문제
신은 신상을 만들지 말라 하고 사람은 신상을 만든다
신의 고귀한 형상을 표현할 수 없으니 신의 형상을 만들 수 없다
사람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신의 형상을 만들어도 그 신상은 오히려 신을 모독하는 것에 불과하다
신상은 생기가 그 안에 없기 때문에 그 자체가 죽은 신을 상징한다
| 기독교 | 불교 |
신상 | 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십계명) | 불상을 만들어 경배한다 |
의미 | 나의 형상을 무엇에 비기겠느냐 | 생기가 없으니 우상이다 |
우상은 사람이 돌이나 금속이나 나무를 이용해서 형상을 만들어 놓은 것을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신의 모습을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고대의 유물을 보면 돌이나 나무로 작은 사람의 조각상을 만들어 넣고 신이라 불렀다
지금 불교에서는 불상을 점점 크게 만들어 세우려고 한다
작은 신상이든 거대한 신상이든 그것을 만든 재료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신상이 말을 하거나 이성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마지막 시대 적그리스도의 신상은 말을 한다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계13:14~15)
지금부터 약 2700년전에 이사야라고 하는 예언자가 우상에 대해 기록한 것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1. 우상은 미래에 대해 알려 주지 못한다
예언과 성취 : 우상들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진술하라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우상들은 소송하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이 어떠한 것도 알게 하라 우리가 마음에 두고 그 결말을 알아보리라 혹 앞으로 올 일을 듣게 하며 뒤에 올 일을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신들인 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재난을 내리든지 하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보라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이사야 41장 21~24절) |
2. 우상에게 기도하는 자는 무지하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
조각한 우상을 의지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사42:17) 보라 그들은 다 헛되며 그들의 행사는 허무하며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은 바람이요 공허한 것 뿐이니라(사41:2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사45:16)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구원하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니라(사45:20)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22) |
3.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다
우상은 대장장이가 돌이나 금속, 나무로 만들것 |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철공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그것을 만들며 그의 힘쎈 팔로 그 일을 하나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피로하니라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 사람을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 그는 자기를 위하여 백향목을 베며 디르사 나무와 상수리 나무를 취하며 숲의 나무들 가운데에서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정하며 나무를 심고 비를 맞고 자라게도 하느니라 그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절반을 불 사르고 또한 그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 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사44:9~20) |
금강경에서 여래는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이라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과거,현재,미래의 마음은 허상이다
인생은 허공이며 마음은 허상이니 영원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은 소멸한다
삶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명상과 참선으로 알듯 모를 듯 법들을 생성해 냈지만 그것이 이루어내는 것은 허상이다
현란한 법들은 난무하지만 거기에는 만물의 기초도 시작과 끝이 없다
총명을 발휘하면 모든 것이 모래 위에 지어진 허상임을 눈치 챌 수 있다
그것은 현생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번뇌로부터의 도피하는 고도의 방법이긴 하다
그러나 근본이나 사후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한다
기독교는 신이 만들었고 불교는 사람이 만들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 된 신의 언어이고
불경은 사람이 최고로 득도한 그노시스와 사람의 언어다
인간은 인간의 수준을 넘어 설 수 없다
기독교는 신을 통해 신에게 이르지만
불교의 언어가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여도 사람의 언어를 통해 신의 영역에 이르는 길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깨달은 지식을 통해 신에게 도달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삶의 기초이시다
하나님은 만물의 중심이시지 가장자리에 계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것이 허상이다
사람이 만들어 쓰러지지 않게 단단히 고정시킨 불상에게 오늘도 사람들이 복을 빌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
그 안에는 어떤 생기도 이성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돌덩이요 막대기요 금속이기 때문이다
나무를 가져와서 절반은 땔감으로 쓰고 절반은 신상을 만든다
그리고 돌덩이와 막대기에 대고 복을 빌고 있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상에게 지나간 일들의 의미를 말하거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진술하면 그들을 신중의 하나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카이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