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
마르틴 하이데거 | 이기상 역 | 까치 | 592쪽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20세기 실존주의의 대표로 꼽히는 독창적인 사상가다. 그의 대표작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은 출간되자마자 철학 사상계의 판도를 순식간에 바꾸어 버렸다. 20세기 유럽 철학의 동향을 논하자면 <존재와 시간>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을 명쾌하게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상 '미완의 대작'인 이 책은 존재 의미에 대한 물음을 철학 역사상 처음으로 설정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책으로서의 <존재와 시간>은, 처음 저자의 은사인 '후설'의 현상학 연구 연보 제8권에 게재되는 형태로 공표됐다. 이 책의 내용을 구성하는 제1부의 두 편은 각각 '현존재 준비적 기초분석'과 '현존재와 시간성'이라는 표제를 내걸고 있다.
본서는 후설적 현상학을 독자로 발전시키고,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역사적 상황 속으로 던져진 인간 존재의 양상을 반영하면서, 인간 존재 그 자체의 본질을 훌륭하게 분석해 보인 명저이다.
하이데거는 데카르트가 보여줬던 '나는 생각한다'에서, '나는 존재한다'에로 이동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의 이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나는 존재한다'의 '나'는 '존재'로부터 이해돼야 한다. 이 '존재'는 언제나 인생의 현실에 서서 끊임없이 다른 것들과 만나고 있는 존재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철학자들은 '존재' 자체를 문제삼지 않고, 오직 그것이 무엇인가를 논의해 왔다. '존재'란 너무나 자명한 것이어서 논의할 이유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하이데거는 그때까지의 서양철학사를 '존재 망각의 역사'라 정의하며, 독단적 철학이라고 비판했다. 인간마저 사물로 여기게 돼 인간 소외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 삶의 원초적 세계는 욕망과 지성에 의해 물든 소유의 세계가 아니라, 존재의 무구한 세계라는 것을 현대인에게 조용히 일깨웠다. 그가 말했던 '존재의 세계'란, 하늘과 땅을 포함하여 지상에 존재하는 일체의 것이 우리에게 말없이 다가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면서, 상보적인 관계 속에 조화롭게 펼쳐지는 그런 진리의 세계를 가리킨다.
그는 인간이 지상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지배하여 무제한적으로 이용하는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세계 안에 거주하는 존재의 이웃으로서 만물을 아낌없이 보살펴야 할 삶의 과제를 떠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출판되자 대단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는데, 실존철학에 관해서뿐 아니라 아마도 철학사상 불후의 걸작으로 남을 것이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그가 40년 동안 걸어간 사색의 길의 출발점으로서, 기념비적인 책이다. 현대철학의 과제는 하이데거 철학의 재해석이라고 할 정도로, 지금도 우리는 하이데거의 영향 아래 숨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