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미성대 명예총장)
이정근 목사(미성대 명예총장)

미주한인들에게 2015년은 인류문명에 대지진이 일어난 해로 기억될 만하다. 모국에서는 대법원 판결로 간통죄가 폐지되었고, 미국에서는 동성결혼제도가 합법화되었다. 전통적 가치 위에서 정숙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마이동풍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혼제도는 물론 인류 문명의 근본적 틀을 바꾸는 사건이다. 결혼제도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이혼율의 증가는 이제 화제도 아니다. 독신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간다. 법적 책임이 없는 동거생활이 유행병처럼 번진다. 도시마다 독신 거주자가 가정 거주자보다 더 많아진다. 게다가 동성결혼의 합법화로 또 하나의 ‘빅 원’ 지진을 겪고 있다. 앞으로 복수결혼조차도 막을 길이 없다.

이처럼 결혼제도의 근본 틀이 바뀌어 가는 배경에는 인권 보장과 자유의 확대라는 사상이 버티고 있다. 색성(sex)은 타고난 것이지만 이것을 사용하는 방식은 개인의 자기 결정권 곧 자유에 속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색성행위의 대상이 자신이건 남이건, 하나뿐이건 여럿이건, 같은 색성이건 다른 색성이건 그것은 개인의 선택사항이고 법은 그런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항변이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인하여 모든 ‘절대적 진리’의 무효화, 금기사항들의 폐기처분 결과였다.

동성애나 동성결혼은 기독교문명권에서 가장 엄격한 금기가 되어 왔다. 반면에 고대 희랍이나 남태평양 문명권에서는 동성애가 장려되어 왔다. 이슬람과 유교문화권에서는 부드러운 금기 수준이고 선비의 나라 한국에도 남색, 여색, 비역질, 밴대질 등의 말이 국어사전에 있다. 이런 까닭으로 범 기독교 문명권이 동성애자들의 집중적 포화를 맞고 있다. 그들은, 성경에는 동성애를 정죄한 근거가 없다, 다윗과 요나단, 그리고 예수와 제자들도 동성애자였다는 억지논리를 편다.

분명히 선언하지만 동성결혼이나 간통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무거운 범죄행위이다. 그래서 동성결혼 증명서를 발급할 수 없다며 감옥을 선택한 켄터키 주 킴 데이비스 서기관에게 박수를 보낸다. 교회 재산을 몰수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교단을 탈퇴한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에게도 응원 기도를 보낸다. 이런 글을 쓰면 투옥될 것이라는 협박을 받아도 개의할 것 없다.

“모든 미주한인교회들이 ‘동성결혼 반대주일’을 정합시다. 그리고 ‘동성결혼은 하나님 앞에 죄악이다’라는 제목으로 일제히 설교합시다. 그래서 감옥에 가게 된다면 미국의 감옥이 목사들로 가득 찰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사뭇 후련하실 것입니다.” 글쓴이는 그런 제안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결혼제도의 혁명을 ‘생명의 절대 가치’라는 시각에서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지지자들도 반대자들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히틀러가 동성애자들을 유태인처럼 죽음의 수용소에 가두고 처형했던 것에 기독교가 묵시적으로 동조했던 것도 생명의 절대가치를 외면한 범죄였다. 성경적 범죄는 심판받아 마땅하지만 동시에 범죄자들은 구원의 대상이요 사랑의 대상이어야 한다. 우주보다도 더 귀중한 생명들이고 주 예수께서 그들을 위하여서도 십자가에 생명을 바치셨기 때문이다. 만약 ‘마음에 간음한 자’까지 모두 죽인다면 이 지구 위에 살아남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따라서 교회는 동성결혼이나 간통이 영적 범죄라는 걸 선언하면서도 동시에 그 가담자들을 어떻게 구원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기독교 신자들도 실상은 ‘용서받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한편 동성결혼자들과 간통 범죄자들에게도 권한다. 자신들의 인권을 확보하고 자유의 폭을 넓히려는 투쟁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데 만약 온 인류가 동성결혼자가 되고 온 세계가 간통을 즐기는 사회가 된다면 인류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니, 인류의 장래가 있기는 있을까? 150년 못 가서 지구 위에서 사람의 씨가 마를 것을 염려 안 해도 될까. 당신들의 자녀가 동성결혼자가 되고, 간통의 악습을 즐기는 자가 된다면 기뻐 춤을 출 수 있을까.

동성결혼자들에게 특히 권고한다. 아기를 낳지 않거나 잘못 기르는 것도 ‘간접살인’이라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