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현지시간) 비무장지대(DMZ)를 걸어서 넘어오는 행사를 추진 중인 세계 여성 평화운동가들이 조직한 위민크로스DMZ(WomenCrossDMZ, 이하 WCD, 비무장지대를 걷는 여성들)가 한국 정부와 유엔사령부의 허가를 받지 못해 판문점 대신 경의선 육로를 이용해 내려오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현재 북한을 방문 중인 '위민크로스DMZ' 대표단 단원들이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이는 등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DMZ를 도보로 횡단한다는 이번 행사의 의미를 이미 잃어버렸다는 지적이다.
탈북자단체들도 WCD 행사를 비난하며 행사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행사 개최 소식이 전해진 후부터 북한의 최근 계속된 핵 위협과 무력 도발을 비롯해 최근 들어 끊어지 않고 일어나는 충격적일 정도의 잔인한 숙청, 납북과 강제노동수용소 운영 등 북한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처참한 인권 탄압 현실을 외면한 채 세계 여성운동가들이 외치는 평화의 구호는 모순될 수밖에 없으며 북한의 위장평화 공세에 이용당할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었다.
WCD 한국위원회는 22일 "현재 북한을 방문 중인 국제여성걷기 참가자 30인은 판문점을 경유해 DMZ를 종단하기로 한 계획을 변경했다"며 "24일 정오에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WCD는 "남한 방문을 이틀 남긴 현재까지 남한 정부와 유엔사령부는 판문점으로 통과하는 것은 휴전협정 조약 위반임을 강조하며 이를 허가하지 않고 있다"며 "이에 긴급회의를 열어 경의선 육로로 경로를 바꿨다"고 설명했다.
WCD는 "아쉽고 안타깝지만 이번 평화 걷기의 취지가 계속 이어져 조만간 판문점이 평화와 화해를 위한 횡단의 길로 열릴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WCD는 당초 판문점이 '한반도의 분단과 해결되지 않은 전쟁의 가장 상징적인 잔재'라는 점에서 DMZ를 도보로 건너 판문점으로 들어올 계획이었으나, 정부는 안전 문제와 출입국 절차 등을 고려해 경의선 육로 이용을 권고해왔다.
북한에서도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판문점 경로보다는 경의선 육로가 나을 것이라는 입장을 WCD 측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북한을 방문 중인 '위민크로스DMZ' 대표단 단원들이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1일 '위민크로스DMZ' 대표단의 20일 만경대고향집 방문 소식을 보도하면서 메어리드 매과이어가 김일성 주석의 혁명적 생애에 대해 알게 됐으며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매과이어는 197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북아일랜드의 대표적인 평화운동가이며, 이번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어서 노동신문도 매과이어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재미동포 안은희 씨의 경우 여러 번에 걸쳐 만경대를 방문했다고 소개하고 김일성 주석이 한평생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셨다고 말하며 자신의 심경을 피력했다고 노동신문이 전했다.
안은희 씨는 또 김일성 주석이 겨레와 인류를 위해 쌓은 수많은 업적 중의 특기할 업적은 일제를 때려부수고 조국을 해방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노동신문은 소개했다.
이러한 소식까지 전해지자 처음부터 이 행사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탈북자단체들은 WCD 행사를 비난하며 행사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엔케이워치, 북한민주화위원회, 북한전략센터 등 5개 탈북자단체는 이날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WCD 행사에 대해 "평화주의자라는 가면을 쓰고 북한 독재자들의 시녀가 되어 남북한 주민들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쇼"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자신들에 대해 북한 독재자들에 의해 인간 이하의 비참한 삶을 살다가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탈북자들이라고 말하면서 북한 통치자들을 비판도 하지 못하는 WCD는 평화주의자도 아니며 그냥 북한 체제 선전의 하수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당신들이 진정한 평화주의자들이라면 24일 판문점을 거쳐 DMZ 횡단 쇼를 하지 말고 김정은을 만나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미국의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주도하는 이번 행사는 197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의 평화운동가 메어리드 매과이어를 포함해 미국, 영국, 일본 등 전 세계 15개국에서 온 30여 명의 여성이 참가한다.
메어리드 매과이어를 포함해 라이베리아 평화운동가 리마 보위, 여성 인권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 인터내셔널) 에리카 구에바라 로사스, 월트 디즈니의 손녀이자 영화제작자인 아브가일 디즈니 등의 저명 여성 인사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았었다.
이들은 지난 19일 평양에 도착해 북측이 주관하는 환영연회와 관광일정 등을 소화하고 있으며, 24일에는 DMZ를 걸어서 넘어와 남한에 도착한 뒤 경기도 파주 출입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