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를 받다 숨진 채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31일 이틀 동안의 장례절차를 마쳤다.
장례식은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본거지로 알려진 금수원에서 유가족과 신도 수천명의 애도 속에 열렸다.
이날 오전 10시 발인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금수원으로 집결한 신도들만 2000여 명에 달했다.
전날 조문을 마치고 이곳에 남은 신도들까지 합해 4000여 명이 장례에 참석했다. 누적 조문객은 8000여 명에 이른다고 경찰은 밝혔다.
금수원 앞 38번 국도 왕복 4차로는 발인예배 2시간 전부터 몰린 조문 차량으로 한 때 혼잡을 빚기도 했다. 금수원으로 진입하는 차로에 조문 차량이 50~60m씩 줄지어 서서 대기했다.
금수원 정문 앞에는 흰 와이셔츠와 검은 양복 차림의 신도 7명이 나와 출입 차량을 확인한 뒤 내부로 안내했다. 조문객들은 이들에게 비표를 확인받은 뒤 유 전 회장이 안치된 금수원 대강당으로 향했다.
걸어서 이곳을 찾는 조문객도 잇따랐다. 어린 자녀를 안고 3~5명씩 이곳을 찾는 가족단위 조문객도 눈에 띄었다. 전날 이곳을 찾았던 조문객들은 이날 오전 8시 아침 식사를 한 뒤 발인예배에 참석했다.
발인예배는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곳곳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을 애도하며 흐느꼈다.
대강당에 설치된 대형화면에는 고인의 설교 등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구원파 측은 양측 벽면에도 대형화면을 추가로 설치해 고인이 남긴 시와 사진 등의 작품을 볼수 있게 했다.
고인은 대강당에서 800여 m 떨어진 금수원 뒷산에 묻혔다. 장지는 금수원이 있는 청량산의 한 줄기에 위치, 금수원 내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이라고 구원파 측은 설명했다.
조계웅 구원파 대변인은 "고인의 장인이자 구원파를 함께 창시한 권신찬 목사도 뒷산에 안장됐지만, 고인의 묘와는 거리가 먼 전혀 다른 곳"이라고 했다.
구원파 측은 장지까지 2m 간격으로 신도들을 배치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게 할 예정이었지만, 지나는 길이 좁아 유가족과 각 지역대표 등만 참여하게 했다.
다만 대강당 대형화면에 매장 장면을 상영했다.
카메라를 들고 환하게 웃는 모습의 고인 영정을 앞세워 장지에 도착한 유가족 등은 생석회를 섞은 흙을 뿌리며 고인의 마지막을 추모했다. 이들은 한 차례 더 추모예배를 한 뒤 대강당으로 내려왔다.
전날 구속집행정지로 52시간 동안 풀려난 유 전 회장의 아내 권윤자씨와 장남 대균씨, 동생 병호씨, 처남 권오균씨 등 4명과 보석석방된 형 병일씨, 구원파 원로 등은 대강당에서 장례 결산 회의를 했다.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던 장남 대균씨 등 4명은 결산 회의를 마치고 이날 오후 5시께 인천구치소로 복귀하기 위해 흰색과 은색의 스타렉스와 카니발 등 호송차량에 나눠타고 금수원을 나왔다.
이곳에 모였던 신도들은 이날 오후 2~3시 제공된 점심식사를 마친 뒤 고인이 남긴 작품을 둘러보고 이날 오후 4~6시 돌아갔다. 신도들이 한꺼번에 금수원을 빠져나가는 바람에 앞 도로는 한때 혼잡이 빚어졌다.
일부 신도들은 대강당에 남아 빈소를 정리한뒤 뒤늦게 귀가했다.
'뛰어난 예술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파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고인을 기리는 추모글에 조문객들은 마치 순교자를 기리는듯 장례 내내 아쉬움과 슬픔, 억울함을 호소하며 흐느꼈다고 한 조문객은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자신을 구원파라고 밝힌 한 신도는 장례식을 마친뒤 취재진에게 '세월호 참사의 시작과 끝은 인천지검의 잘못된 법집행'이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돌렸지만, 구원파측은 일부 신도의 주장일 뿐 구원파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밝혔다.
경찰은 100명을 동원해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유가족을 24시간 밀착감시하고 했으며, 금수원 주변에 5개 중대 450여 명의 경력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