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76)이 2일 전격 퇴위한다고 BBC 등 주요 외신이 이날 일제히 보도했다. 

39년간 재위하며 스페인 민주화에 지대한 역할을 한 카를로스 국왕은 지난 2007년 스페인 한 방송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스페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1위'로 선정되는 등 국민들의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이날 "카를로스 국왕이 퇴위 의사와 함께 왕위 계승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뜻을 알려왔다"면서 "후계자는 카를로스 국왕의 아들인 펠리페(45) 왕세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를로스 국왕은 이날 텔레비전 연설에서 "새 시대에 맞는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한 더 젊은 세대가 앞장을 서야 한다"며 자신의 퇴위를 공식화했다.

펠리페 왕세자는 지난해 말 여론조사에서 66%의 지지도를 얻어 무난히 왕위를 승계할 것으로 보이지만, 라호이 총리는 즉위식이 언제 열릴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1975년 11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약 36년간의 철권 통치 후 사망한 뒤 즉위한 카를로스 국왕은 프랑코 총통이 직접 선정한 후계자인데도 불구하고 스페인 민주화에 기틀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 

1931년 스페인에 공화제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리스로 망명한 알폰소 13세 국왕의 손자로 태어난 카를로스 국왕은 왕정 체제가 스페인의 이상적인 정치 형태라 생각한 프랑코 총통에 의해 1969년 합법적 후계자로 공표받았고, 1975년 11월 프랑코 총통이 사망한 이틀 뒤에는 국가 권력을 넘겨받았다.

그런데 카를로스 국왕은 즉위식에서 프랑코 잔재를 청산하고 스페인을 민주주의 국가(입헌군주제)로 만들겠다고 발표, 전 세계인들에게 크고 신선한 충격을 줬다.

실제로 그는 비밀경찰을 해제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으며, 1976년 양원제 채택, 1977년 총선거 실시, 1978년 상징적 입헌군주제 도입 등 급진적 개혁조치를 잇따라 단행했으며, 정치범들을 석방하고 정당 활동도 보장했다.

이같은 카를로스 국왕의 급진적 자유 민주주의 개혁에 반발한 극우 보수세력(프랑코 잔당)이 1981년 2월 의회를 습격해 내각 각료와 의원 350여 명을 인질로 잡고 군부 독재로의 복귀를 요구하는 등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을 때도 군 지휘관을 소집해 군부의 동요를 막고 쿠데타를 저지했다.

이때 그는 쿠테타를 일으킨 세력을 향해 "나를 먼저 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뒤 전투복 차림으로 TV 앞에 나가 국왕이 헌법상 군통수권자임을 강조하며 "무력으로 민주화 과정을 방해하는 자들의 어떤 형태의 행동도 용납할 수 없다"며 대국민 연설을 통해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고, 결국 쿠데타는 18시간 만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처럼 국가가 어려울 때마다 중심을 잡아준 카를로스 국왕은 스페인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국왕이었으며, 지난 2007년 여론조사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을 디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소설 '돈키호테'를 쓴 미겔 세르반테스를 제치고 가장 위대한 스페인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을 강타한 재정위기와 함께 그의 인기도 추락했다.

스페인이 재정위기로 인해 국가적 위기에 빠져 있던 2012년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코끼리 사냥 여행을 갔던 사실이 드러나 공개 사과문을 발표했으며, 지난해에는 카를로스 가문이 스위스에 비밀 계좌를 보유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올 1월에는 막내딸 크리스티나 공주 부부가 600만 유로(약 90억 원)의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그의 청렴 이미지에 큰 타격이 왔다.

또 2012년 11월 왼쪽 엉덩이에 이식한 인공관절 부위에 감염이 생긴 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건강 이상설에도 시달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