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바이어스 목사 가족 사진
게리 바이어스 목사 가족. 입양한 한국인 자녀 둘과 친자녀 둘에서 지금은 대가족이 되었다. 바이어스 목사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한국 사랑은 교회에서까지 전해졌다.

미국 일리노이주(Illinois) 벨빌(Belleville)에는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시온루터교회(Zion Lutheran Church) 가 있다. 교인 수 약 1천여명에 이르는 대형교회로, 유치원부터 중학교에 이르는 학교도 운영하고 있는 이 교회의 교인들은 모두 백인이다. 이곳에서 20년째 담임목회자로 섬기고 있는 바이어스(Gary Byers) 목사의 한국 사랑 이야기는 참 유별나다.

바이어스 목사는 결혼 후 1974년 목사 안수를 받고, 미시간주(Michigan) 플린트(Flint)에 있는 루터란 선교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임신을 했고, 첫 아이를 갖게 된다는 기쁨에 행복한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Kathy)가 두 번의 큰 수술을 받게 되었고, 그 수술에서 바이어스 목사는 첫 아이를 잃었다. 그리고 담당의사는 바이어스 목사 부부에게 앞으로 아이를 갖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갓 결혼한 바이어스 목사 부부에게 이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바이어스 목사 부부는 입양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이를 입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입양을 알선하는 기관도 거의 없었고, 복잡한 서류 절차로 인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사회복지센터에서 7살 된 한국 여자아이를 소개받았다. 그 여자아이는 원래 미네소타 사회복지센터를 통해 4살 때 백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가정에 입양된 아이였다. 그러나 3년 후 아이는 그들 부부에 의해 다른 집에 버려졌다. 그래서 다들 그 아이 입양을 꺼리고 있을 때, 바이어스 목사는 기꺼이 입양을 결심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을 에리카(Erika)라고 지었다.

바이어스 목사는 “결혼한 지도 얼마 안 된 우리에게 7살 된 아이는 여러 면에서 도전과 어려움이었다.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아이의 학교 학부모 모임에 가도 우리 부부가 가장 젊은 부부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바이어스 목사 부부는 자신의 친딸처럼 사랑과 은혜로 아이를 양육했다. 한국식 밥과 문어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직접 한국 음식을 배우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에리카도 아픈 과거를 잊고 바이어스 목사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바이어스 목사 부부의 이런 희생적 사랑과 헌신에 하나님께서 응답이라도 하듯 큰 선물을 주셨다. 에리카가 집에 온 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바이어스 목사의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임신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나님께서는 한국 아이 에리카를 통해 도저히 믿기지 않은 기적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첫 아이를 출산한 뒤로 의사는 기적과 같은 이 일에 놀라면서도, 또 다시 임신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더 갖기 원했던 아내의 소원으로 또 아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1978년 10월 미시간주 지역 사회복지센터를 통해 바이어스 목사 부부는 한국에서 온 남자아이를 소개받게 되었고, 그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를 처음 공항에서 만나기 전날, 바이어스 목사 부부는 매우 흥분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 날 같이 긴 밤을 경험하지 못했다. 1978년 12월 14일에 바이어스 목사 부부는 시카고 국제공항에서 한국 남자아이를 품에 안게 되었고, 그를 나단(Nathan)이라 이름 지었다.

한국 남자아이 나단을 입양한 후, 바이어스 목사 부부는 일리노이주로 목회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입양한 한국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주위에 입양 가족이 거의 없는 데다가 백인들이 주를 이루는 지역에서, 바이어스 목사 부부가 입양한 한국 아이들은 사람들에게 남다른 사람으로 비쳤다. 그럼에도 그들은 두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자라도록 정성으로 보살폈다.

그 사랑에 하나님도 감동하신 것일까? 그곳에서 바이어스 목사는 또 기적을 체험했다. 아내가 두 번의 임신을 통해 두 명의 여자아이를 낳게 된 것이다. 에리카와 나단을 입양한 뒤로,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던 이들 부부에게, 하나님은 그 의사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두 명의 아이를 선물로 주셨던 것이다.

한 번도 한국에 가 본 적은 없지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두 한국 아이를 통해 바이어스 목사 부부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고, 이를 계기로 그들 부부는 유독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 부부의 한국 사랑은 가정 뿐 아니라 그의 목회 사역에서도 나타났다. 1992년 지금의 시온 루터교회 담임목사로 섬기면서, 약 20여년 전, 지금은 작고한 고 지원용 박사를 통해 시작된 한인교회가 마땅히 예배할 곳을 찾지 못해 고민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꺼이 미국교회 안에 한국인 예배실과 사무실을 무료로 내어주었다.

백인 중심인 교회에서 한인교회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바이어스 목사는 미국교회 교인들에게 사랑으로 함께 해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했고, 교우들도 한국 아이까지 입양하여 키운 목회자의 한국 사랑에 감동하여, 기꺼이 미국교회 안에서 한인들이 예배드리는 것을 허락하게 되었다.

은퇴를 1년 앞둔 2013년 11월, 바이어스 목사는 한인교회를 위해 또 하나의 중대한 결정을 한다. 시온루터교회가 한인교회를 미국교회의 정식 멤버로 인정하고, 한인 담당 목회자를 미국 시온교회 부목사로 청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한인 목회자에게 미국 목회자와 똑같은 혜택을 부여하며, 이에 대한 재정적 지원도 결정한 것이다. 마침내 미국교회와 한국교회가 하나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정진오 목사를 한인교회를 담당할 미국교회 부목사로 청빙하게 되었다.

이는 미 전역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뿐더러, 꽤 보수적으로 알려진 미국 루터교회(LCMS)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된 이면에는 한국 아이들을 입양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한국 사랑에 남다른 바이어스 목사 부부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다.

게리 바이어스 목사와 정진오 목사.
게리 바이어스 목사와 정진오 목사.

시온루터교회의 첫 부목사로 부임하게 된 정진오 목사는 “한국인으로서 미국교회 부목사로 사역한다는 것이 여러 면에서 도전일 수 있지만, 성령께서 다른 언어와 다른 피부를 가진 우리를 서로 하나로 만들어 가시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내년 1월 말로 은퇴하는 바이어스 목사는 “지나간 시간의 삶을 돌아 볼 때, 내 삶에 도전과 알 수 없는 어려움들이 많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제게 즐거움이었고 기적이었다. 그 기적 중에 하나는 제 가정이 한국인 자녀와 더불어 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고, 제가 섬긴 시온교회가 한인교회와 미국교회가 한 교회를 이루게 되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게리 바이어스(Gary Byers) 목사는

미국 컨콜디아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루터교회(LCMS)에서 안수를 받았다. 20년 동안 군목으로 재직하다 1992년부터 지금의 시온루터교회 담임 목회자로 섬기고 있다.

정진오 목사는

루터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히브리대학교와 예일대학교 Research Fellow로 수학했으며, 현재 시온루터교회 부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