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집 희(姬), 예쁠 아(娥). '예쁜 여자'라는 뜻의 '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아이는, 행운의 숫자 7이 두 번이나 들어가는 7월 7일에 태어났다.
그러나 모반증으로 얼굴의 반이 붉은 점으로 덮인 채 태어났고, 보육원 앞에 버려진 고아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오후 느지막이 우리는 반장네 집을 나왔습니다. 정말 신나는 하루였죠. 우리 뒤로 대문이 닫혔어요. 골목을 빠져 나오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저는 반장 집에 있는 강아지가 부러웠어요. ... 사관님이 다시 물으신다면 전 천국을 반장네 집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엄마, 아빠와 형제자매가 함께 사는 곳. 혜천원 아이들이 '가정집'이라고 부르는 곳. 천국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죠. 어쩌면 바로 제 이웃이 모두 천국이었는지도요."(116~117쪽)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는 나머지 얼굴의 반에 상악동 암이 발병해 얼굴뼈를 들어내는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방송 인터뷰 차 찾아간 대구역에서 그녀를 처음 본, KBS '강연 100℃' 안진 PD는 이렇게 전했다.
"그녀를 생각하면 강하게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방송 인터뷰 차 찾아간 대구역, 수많은 사람들 속에 정지한 듯 서있던 그녀. (중략) 그녀에게 전해들은 사십여 년 인생은 찰진 고통의 시간이었다. 고독과 소외, 절망과 결핍, 삶과 죽음의 갈림길까지. 그녀에게는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하며 움켜쥐고 태어나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부모 형제, 이름, 정확한 출생의 기록도 없었다. 대신 그녀는 얼굴에 커다란 붉은 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는 '원망' 대신 '감사'를 선택했다.
"좌절과 고통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기에 찾은 '감사'가 무거운 삶을 가볍고 평탄하게 했으며, 꿈을 키우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6쪽)
"'저 얼굴로 어떻게 살겠노, 나 같으면 못 산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을 때도, 식당 제 테이블 옆에서 밥 먹는 것조차 꺼리는 사람을 볼 때도 웃을 수 있었던 것도, 눈물을 닦을 수 있었던 것도 '감사의 힘'이었습니다. 저만이 어울리는 얼굴이고, 이 아픔 또한 저이기에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제 자신을 위로하였습니다."(6쪽)
아픔과 상처를 '감사와 희망'으로 딛고 일어서 자신의 삶을 바꾼, '예쁜 아이' 김희아.
이제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편과 예쁜 두 딸과 함께, 예전 살던 고아원 아이들이 '가정집'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엄마'가 되면서 자신을 버린 엄마에게 '낳아줘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그녀는, 방송에 출연해 "엄마, 그리운 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고 사랑과 용서의 마음도 전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안진 PD가 말한 것처럼 '무조건의 행복'인 듯하다.
그는 "만일 우리 인생에 고통의 총량이 있다면,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행복이다. 무조건의 행복일 것"이라고 했다.
말할 수 없이 쓰리고 아팠을 '상처'와 그 '고통'에 '감사'한 그녀는, 이제 '진정한 행복'을 움켜쥔 듯하다.
그 '행복'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얻었다 잃었다 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누구도 무엇도 빼앗을 수 없는 '진정한 행복'. 이 행복을 움켜쥔 그녀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