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총기규제법안이 표결에 부쳐저 보지도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다. 한해에 무려 만명이상이 총기와 관련된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고, 학교와 극장에서까지 총기의 무차별한 사용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는 이번 법안이 상원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만 것이다. 전통적으로 총기소유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공화당 의원중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이 있는 반면에 민주당에서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도 있었다. 신문들은 한결같이 워싱턴에 막대한 로비를 펼치고 있는 미국총기협회의 승리로 보도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450만명 이상의 회원을 가진 미국총기협회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비단체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금액으로 따지면 로비액은 불과 연간 수백만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상공회의소는 무려 1억 3천만달러의 돈을 퍼 붓고 있고, 2위인 부동산협회는 4천만 달러 이상의 로비를 펼치고 있다. 로비가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주요 정책결정에 영향을 주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구조에서 거의 모든 결정에 경제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더우기 총기와 관련되어서 총기협회 뒤에는 거대한 군수산업체들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정치적 영향력이 겉으로 들어 나는 로비자금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도 크다. 하지만 마치 미국의 의회가 로비자금에 휘둘려서 대통령과 국민의 뜻을 져버렸다는 식의 해석은 다소 억지라고 볼 수 있다.
로비자금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국민들의 정서와 선거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어리석은 판단이다. 미국에서는 공식적으로 1억정 이상의 총기가 팔려 나갔고, 미국 가정의 45%가 총기를 소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마구잡이로 총질을 해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학교처럼 좋은 곳이 없다. 총기반입이 원천적으로 금지된 곳이기 때문이다. 범인말고는 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고, 대부분 연약한 학생들이다. 교실은 출입문이 하나이고, 그 안에 수십명의 범행대상이 밀집해 있다.
대부분의 총기소유자들은 자기방어를 위해서 총기를 소유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총기사고가 늘어난다고 해서 모든 총기소유자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이제 자기방어를 해야 할 곳이 집말고 더 늘어난 것이다. 학교가 그렇다. 내 아이를 내 집에선 내가 지키지만 학교에 보내 놓으면 지켜줄 수가 없다. 그래서 무장경찰을 늘리고, 교직원들 중에 총기를 소유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고 있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법이나 질서가 아니라 총이 되어 버렸다. 어떤 여론조사에 따르면 잠자리 옆에 두어서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물건은 다름아닌 총이다.
생각의 커다란 전환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애써서 쌓아 온 문명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육체적으로 힘쎄고 날렵한 총잡이가 칭송을 받고 지배하는 서부활극 시대로 복귀하는 전주곡이 될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가장 빠른 총잡이가 악인을 징벌하곤 하지만, 현실에서는 반대일 수 있다. 권선징악은 희망사항이지 현실과는 거리가 멀때가 많다. 문명의 발달과정을 보면 힘보다는 법과 도덕을 통해서 모두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고, 그 대가로 많은 피를 흘렸다. 힘보다는 정의를 더욱 높은 가치로 인정하면서 따른 한편으로는 그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 물리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근거한다. 이런 생각은 국가차원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현재 미국의 군사비 지출은 전세계에서 단연코 1위이고, 2위부터 10개국을 합한 것보다 더 많다. 세금을 1달러라도 덜 내기 위해서 수년간 지리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세금으로 살상무기를 만들어 내는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한 국민들이 바로 우리들이다.
연이은 참사로 감정이 격해진 국민들을 대상으로한 여론조사의 결과는 실제 행동과는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다. 감정적이 될 수록 오히려 자기방어 본능은 더욱 강해져서 총기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그 동안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마저 총기소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반대급부가 강해졌다. 총기소유에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소유의 자격을 엄격히 하자는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는 의회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칼럼리스트 하인혁 교수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Western Carolina University에서 경제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Lifeway Church에서 안수집사로 섬기는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1년도에 미국에 건너와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인혁 교수는 기독일보에 연재하는 <신앙과경제> 칼럼을 통해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인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경제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해 나가야 하는지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의 주요연구 분야는 지역경제발전과 공간계량경제학이다. 칼럼에 문의나 신앙과 관련된 경제에 대한 궁금증은 iha@wcu.edu로 문의할 수 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