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연합뉴스) 이슬람 단식 성월(聖月)인 라마단이 초기부터 이라크와 시리아 등 중동 곳곳에서 잇단 유혈 사태로 핏빛으로 물들고 있다. 금욕적 단식은 무슬림이 지켜야 할 이슬람 5대 의무 중 하나로 무슬림은 라마단을 이슬람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굶주림의 고통을 느끼며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다.
라마단이 시작되면 이슬람권의 전쟁이나 전투도 잠시 중단되는 것이 관례다. 실제 2008년에는 라마단 시작과 함께 파키스탄과 이라크, 필리핀 등 내전이나 분쟁 중이던 일부 중동과 아시아의 이슬람국에서 잇따라 총성이 멎기도 했다.
올해의 라마단은 국가별로 초승달 관측 시기에 따라 지난 20∼21일 시작됐다. 그러나 라마단이 시작된 이후에도 이라크와 시리아 등에서는 유혈 사태가 오히려 격렬해지는 양상이다.
이라크에서는 23일 하루 19개 지역에서 29차례의 연쇄 테러나 총격 등으로 최소 113명이 숨지고 300명 가까이 부상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말 미군 철수 이후는 물론 127명이 희생된 2009년 12월8일 연쇄테러 이후 하루 사망자 수로는 최대 규모다.
미국 국무부의 빅토리아 눌런드 대변인은 "신성한 라마단 기간에 무고한 시민을 겨냥한 잔혹한 테러"라며 이번 테러를 강력히 비난했다.
이라크 당국은 24일 군경과 무장 차량을 바그다드를 비롯해 전날 테러 발생지 인근에 배치하는 등 추가 테러를 막기 위한 치안 정비 작업에 나섰다. 아직 이번 테러의 배후를 자처하는 단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라크 내 알카에다 연계 단체인 이라크이슬람국가(ISI)가 지난 22일 정부와 미군을 겨냥한 새로운 공격에 착수하겠다고 밝혀 연관성이 제기될 뿐이다.
16개월 넘게 유혈 사태가 지속하는 시리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라마단 직전인 지난 19일 시리아 전역에서는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으로 최소 310명이 숨졌다. 지난해 3월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이래 하루 기간 발생한 최다 사망자 수다.
지난 주말에도 수도 다마스쿠스와 제2도시 알레포, 국경 지역 등에서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은 이어져 사상자가 속출했다.
정부군은 심지어 지난 23일 밤 다마스쿠스의 모스크에서 `라마단 밤 기도'(타라위)를 마치고 나오는 군중을 겨냥해 발포하기도 했다. 타라위는 라마단 기간 밤에 하는 특별기도로 매일 밤 코란의 30분의 1을 암송, 라마단이 끝나면 코란 전체를 암송하게 되는 신성한 의식이다.
정부군은 타라위를 마친 군중이 시위를 하지 못하도록 발포했으나 정작 공격을 당한 군중들은 시위를 하지 않았다고 현지 활동가가 전했다.
지난 주말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반군 세력의 공격으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 3명과 민간인 5명이 숨졌고 예멘에서도 알카에다 세력의 테러는 이어지고 있다.
중동 현지의 한 교민은 "`아랍의 봄'이 휩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일부 국가에서 `라마단 유혈 사태'가 이어져 그 고유의 의미가 퇴색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