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연합뉴스) 바티칸 교황청이 슬로바키아 대주교를 면직한 데 대한 관할 교구 신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교황청의 명령에 '순명'할 의무가 있는 가톨릭 신도가 반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발단은 슬로바키아 트라나바 교구의 로베르트 베자크 대주교가 지난 1일 미사에서 교황청으로부터 교구장 면직 결정을 통보받았으나 이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교황청은 다음날인 2일 해임을 발표하면서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트라나바 교구의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정년(75세)에 도달하기 전인 주교급 성직자에게 도덕적 문제나 교구 관리상의 허점이 발견돼 해임 사유가 발생하면 교황청은 자진해서 물러나도록 설득했다.


베자크 대주교가 면직 결정에 납득할만한 이유를 통보받지 못하는 한 물러나지 않겠다고 밝히자 미사 참례자들은 기립박수로 베자크 대주교의 결정을 지지했다.


베자크 대주교는 또 해임 통보를 언론에 알리지 않도록 미리 통보를 받았고 그가 속한 슬로바키아 주교 평의회도 해임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가 커질 조짐을 보이자 슬로바키아 주교 평의회는 평신도가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없고, 교황의 결정은 최종적이자 의문의 대상이 안 된다고만 강조했다.


이런 발표가 나왔지만 반발이 수그러들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교구 신자 상당수가 합동 공개 질의서를 냈는가 하면 일요일인 지난 8일에는 성당 밖에 함께 모여 미사 참례를 거부하는 등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반발이 커지자 교황청은 합의한 날짜나 교황청이 정한 날에 주교의 임면을 발표하는 것인데도 베자크 대주교가 일방적으로 공표한 데 유감을 표시하는 내용의 성명을 이례적으로 발표했다.


이어 교황청은 베자크 대주교의 비위 사실에 대한 청원이 들어와 지난 1월 체코의 얀 바산트 몬시뇰(고위 성직자의 경칭)이 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를 여러 교회 조직이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교황청의 설명에도 트라나바 교구 신자들은 10일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항의 음악회를 개최했다. 이 음악회에는 교황청 결정을 옹호하는 지지자들이 참석해 성가를 부르고 음악회 불발을 기원하는 기도회를 열었으나 양측 간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고 슬로바키아의 일간지 '슬로바키아 데일리'의 존 보이드 편집국장이 11일(현지시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