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연합뉴스) 17일 전격 사퇴를 발표한 크리스티안 불프 대통령은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매너로 메르켈 총리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이다. 메르켈이 어려움을 정면 돌파하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끝내 관철하는 스타일이라면, 불프 대통령은 지인들을 대통령 관저로 자주 초청하는 등 유연한 스타일의 소유자다.


그의 지인들은 불프 대통령의 다정다감한 성품과 세련된 매너에 찬사를 보냈다고 독일 언론들은 전했다. 불프 대통령은 부유하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10대 때부터 어머니와 여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소년 가장' 출신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스나브뤼크의 에른스트 모리츠 아른트 김나지움을 졸업한 뒤 오스나브뤼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1987년과 1990년 1,2차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했다.


16세였던 1975년 기민당(CDU)에 입당해 1978년부터 1980년까지 당 학생연맹의 연방 의장을 지냈다. 1979년부터 1983년까지 당 청년동맹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94년부터 니더작센 주 당의장을 맡았다.


그러던 중 지난 2010년 5월 정치적 야망을 이룰 결정적인 기회가 왔다. 당시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이 독일군의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관한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결국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메르켈 총리로부터 차기 대통령으로 지명받은 것.


하지만 비극의 씨앗은 이때부터 잉태됐다. 당시 대통령은 당파를 넘어서 초당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는 명망가가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무성했다. 그러나 이를 무릅쓰고 메르켈 총리는 불프 카드를 고집했다.


어찌보면 메르켈이 짠 권력 구도하에서 결과적으로 희생양이 됐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불프가 대통령에 지명된 것은 그가 메르켈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위상 때문이었다. 메르켈이 그를 현실 정치에서 거리가 있는 자리에 머물게 함으로써 `황금 새장'에 가뒀다는 관측도 나왔다.


메르켈이 그를 대통령으로 지명하지 않았더라면 독일을 실질적으로 이끌 총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독일 정치 전문가들의 시각도 있다.


니더작센주 총리 시절인 2008년 주택 구입을 위해 한 사업가의 아내로부터 저리의 특혜성 사채를 쓴 사실이 지난해 12월 독일 일간지 빌트에 보도된 것이 이번 낙마의 전주곡이었다.


이후 여론조사에서 지지를 받으며 무사히 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 보도를 막기 위해 빌트 편집장에서 전화를 걸어 "전쟁을 치를 것"이라고 압력을 넣은 것이 알려지면서 야당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언론의 공적이 됐다.


이 때부터 그가 니더작센주 시절 기업으로부터 받은 승용차를 협찬, 공짜 휴가 여행 등 각종 특혜 의혹들이 언론을 통해 쏟아져나왔다. 결국 언론과 야당에 밉보인 불프는 어쩌면 무사히 넘어갈 수도 있었던 개인적인 잡음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급작스러운 종착점을 맞게 됐다.


검찰이 불프 대통령의 전 대변인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본격적인 수사의 칼을 들이대기 위해 연방의회에 대통령에 대한 수사 면제권의 철회를 요청하자 그는 버티다 못해 정치적 생명줄을 스스로 놓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