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연합뉴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10일 수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앞서 4일 치러진 총선 부정을 규탄하는 항의 집회가 열렸다. 경찰은 이날 집회 참가자가 약 2만 명이라고 밝혔으나 주최 측은 4만~10만 명이 집회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권력을 잡은 이후 모스크바에서 2만명 이상이 참가하는 집회가 열린 건 2001년 자유 민영방송 NTV 폐쇄 반대 집회 이후 처음이다.


총선 부정을 규탄하는 야권의 집회는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약 3시간 동안 크렘린궁에서 멀지 않은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 '늪 광장'에서 개최됐다. 청년들로부터 장노년층 등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 시민들은 집회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집회 장소로 몰려들기 시작해 모스크바 강변의 늪 광장을 발디딜 틈 없이 가득 메웠다.


주최 측은 대형 스피커로 유명 팝 가수들의 음악을 틀며 분위기를 돋우는 한편 광장 곳곳에서 '사기꾼과 도둑의 권력은 물러나라' '도둑 정권을 부정한다'는 문구가 적힌 흰색 리본을 나눠주기도 했다. 집회 참가자들 중엔 러시아 최대 야당인 공산당과 중도좌파 '정의 러시아당' 등의 공식 정당 소속 당원과 비공식 야권 단체 소속 회원 등이 포함됐다. 지방에서 올라온 참가자들도 있었다.


경찰은 테러 등의 사태에 대비해 집회장 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고 시위 참가자들을 차례로 입장시켰다. 집회장 주변에 배치된 수백명의 경찰과 대테러부대 '오몬' 요원, 내무 군인 등은 시위 참가자들이 집회장 밖으로 이탈하는 것을 막았을 뿐 별다른 통제는 하지 않았다. 집회장 상공엔 소형 무인 정찰기가 선회 비행을 하며 현장 상황을 감시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애초 집회 시작 예정 시간인 오후 2시를 30여분 쯤 넘긴 뒤 주최 측 인사들이 광장 한편에 설치된 연단에 차례로 올라 정부와 여당의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연설을 했다. 참가자들은 연사들의 선창에 따라 '부정 선거 결과 취소' '우리는 승리할 것' 등의 구호를 외쳤다.


영하에 가까운 차가운 날씨에 눈발까지 날렸지만 집회장엔 뜨거운 열기가 흘러 넘쳤다. 집회는 마지막으로 연단에 오른 재야 정당 '국민자유당' 공동의장 블라디미르 리슈코프의 선언문 낭독으로 막을 내렸다. 리슈코프는 선언문에서 "집회 참가자들은 모든 정치수감자들의 즉각적 석방, 부정선거 결과 취소, 중앙선관위원장 사퇴, 선거 부정 수사 및 책임자 처벌, 비공식 야당 공식 등록, 민주적 선거법 채택, 공정하고 개방된 재선거 실시 등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야권 지도자들은 2주 뒤인 이달 24일 다시 모스크바 시내에 집결해 부정선거 규탄 집회를 열 것을 참가자들에게 제안했다.


수만명이 집회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려됐던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야권의 부정 선거 항의 집회 허가 신청에서 최대 참가자 수를 300명으로 제한해왔던 모스크바 시당국은 이날 집회 참가자수를 3만명까지 허용했다.


한편 이날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피오네르스카야 광장'에서도 약 1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부정선거 항의 집회가 열렸으며, 러시아 전역 주요 도시들에서도 각각 수백명이 참가한 집회가 개최됐다고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 현지 언론은 전했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앞서 4일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이 49%의 득표율로 450개 하원 의석 가운데 238석을 확보해 다수당이 된 것으로 발표했으나 야권은 선거에서 대규모 부정이 저질러졌다며 이같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야권은 선거 이튿날인 5일부터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크고 작은 집회와 시위를 계속 벌여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