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연합뉴스) 이집트에서 28일 역사적인 선거가 시작돼 독재 정권의 붕괴 이후 9개월간 지속한 혼란과 불확실성의 시기를 끝낼지 관심을 모은다. 아랍권에서 최대의 인구를 보유한 이집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후 첫 민주 선거가 시행되는 것은 '아랍의 봄'이 결실을 볼 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라는 점에서 아랍국가들은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는 행사다.


◇선거 첫날 순조롭게 투표 진행 = 총선 첫날인 이날부터 이틀간은 수도 카이로와 제2도시 알렉산드리아 등 9개 주에서 처음으로 투표가 시행된다. 이날은 약 1천750만명의 유권자가 3천800여개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으며 오후까지 이렇다 할 불상사 없이 투표는 순조롭게 진행된 것으로 이집트 현지 매체는 전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예상보다 투표 참여 열기가 높자 애초 오후 7시에 끝내려던 투표 마감 시간을 2시간 연장해 오후 9시에 마치기로 했다.


이날은 이른 아침부터 이집트 유권자들은 주요 투표소에서 긴 줄을 이루며 순서를 기다렸다. 카이로의 투표소에서는 수십~수백명의 행렬 주변을 무장한 군인이 삼엄하게 경비했다.


3단계에 걸쳐 498석을 뽑는 이번 하원 선거는 내년 1월 마무리된다. 상원에 해당하는 슈라위원회 위원 180석을 선출하는 상원 선거 역시 3단계로 진행돼 내년 3월 끝을 맺게 된다. 총선에는 이집트 전체 인구 8천500만명 중 약 5천만명이 참가한다.


이번 총선을 통해 선출된 의원은 1년 안에 이집트 미래의 향방을 결정할 새 헌법 초안을 만들게 된다.


과도정부를 이끄는 군 최고위원회(SCAF)에 의해 신임 총리로 임명된 카말 간주리는 이번 선거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세력이 새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 대다수는 총선이 30년간 무바라크 정권의 독재 이후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하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시민 유수프(25)는 "이집트의 미래를 위해 투표를 할 것이다. 이집트에서 첫 자유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카이로의 슈브라 지역에서 생애 첫 투표를 한 네비네 케디스는 "이전에 해보진 못한 경험을 했다"며 "이번 의회가 우리를 대변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복잡한 총선 일정에 유권자 혼란…총선 거부 시위도 = 그러나 유권자 중에서는 투표 장소를 모르고, 누구를 찍어야 할지 고민하는 부동층도 많다. 6천명 이상의 후보가 의원직을 놓고 경쟁하고 있고 무려 50개를 넘는 정당들이 이번 선거에 참여했다. 카이로 이발사인 무스타파 아티야 알리(50)는 "누구에게 투표할지 모르겠고, 후보도 아무도 모른다. 친구들과 모여 누구에게 투표해야 할지를 정해야겠다"고 말했다.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몰아낸 시위대도 시민 혁명 이후 9개월 만에 민주화 상징인 타흐리르 광장과 거리로 되돌아왔다.


선거 전야인 27일 밤에도 시위대 수천명이 이곳에서 총선을 부정하며 후세인 탄타위 군최고위원회 사령관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지난 19일부터 시작된 시위대와 진압 경찰·군인의 9일간 충돌로 지금까지 42명이 사망했고, 3천명 이상이 부상했다. 당장 투표소에서의 폭력 사태 발생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이집트 최대 야권그룹 무슬림형제단이 창당한 이슬람 정당 '자유정의당'이 압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투표 결과의 정당성에도 벌써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집트는 그동안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를 치른 경험이 거의 없다. 최근 총선은 무바라크 정권 시절인 1년 전 치러졌지만, 부정 선거 의혹이 제기됐고 집권당은 몇 석을 제외한 전 의석을 싹쓸이했다.


◇투표율에 따라 군부 입지 결정될 듯 = 탄타위 사령관은 공정한 선거를 약속하는 한편 27일 밤부터 수천개의 투표소에 군과 경찰을 배치했다. 외국도 선거 감시 단체를 보냈으나 군부에 의해 거부됐다. 대신 이집트의 수십개 시민단체는 첫 투표가 시행된 9개주에 감시단을 파견했다.


탄타위 사령관은 선거가 치러지기 전날 "이집트는 현재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성공하느냐, 아니면 극단적으로 심각한 결과에 직면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외세가 이집트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번에 투표율이 높으면 내년 6월 말까지 대선을 실시해 민간에 권력을 넘기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한 군부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높은 투표율은 또 이번 선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시위대의 기반을 약화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투표율이 낮으면 이번 선거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 시위대와 군부 퇴진 때까지 선거를 연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득세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유혈 충돌에 따른 시위대의 분노도 가라앉지 않고 있어 총선 이후에도 후유증과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