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연합뉴스)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33년간 장기 집권을 뒤로 한 채 23일(현지 시간) 자신의 퇴진을 규정한 권력이양안에 서명했다. 90일 안에 치러질 차기 대선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압둘 라부 만수르 하디 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키로 해 사실상 퇴진한 셈이다.
이에 따라 올해 초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 열풍 '아랍의 봄'의 영향으로 국가수반 자리에서 물러난 독재자는 모두 4명으로 늘어났다. 살레 대통령은 1969년 권력을 잡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 원수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장기 집권한 권력자다.
그는 초등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일찌감치 군에 입대했으나 군 내부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성장, 1978년 쿠데타로 북예멘 정권을 장악했다. 북예멘은 이후 살레의 강력한 통치력을 바탕으로 안정화의 길로 들어섰지만, 예멘사회당이 지배한 남부 예멘은 내부 권력 다툼으로 내전에 휩싸이는 등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90년 5월 결국 북예멘이 남예멘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통일이 이뤄졌고 살레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통일 예멘의 첫 국가수반이 됐다.
그러나 통일 후 살레가 이끄는 국민의회당은 남예멘에 기반을 둔 예멘사회당을 탄압해 남부 지역 주민들의 분리독립 운동을 촉발했고, 이는 1994년 전면 내전으로 비화했다. 우세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살레의 북예멘은 결국 2개월에 걸친 내전에서 완승을 거뒀고, 위기를 수습한 살레 대통령은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게 됐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1999년 야권이 참가하지 않은 첫 직선제 대선에서 96% 이상의 지지를 얻어 당선한 데 이어, 2006년 대선에서도 테러 세력 근절을 통한 국가안보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워 7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다시 맡게 됐다.
그러나 살레 대통령이 33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거둔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인구 2천300만명 중 절반 가량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연명하고 있고, 남·북예멘을 통일 이전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분리 운동은 여전히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지속하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후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을 지지한 살레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자국 내 알카에다 조직 소탕에 주력해 왔지만, 오히려 알카에다는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의 본부를 예멘에 두고 더욱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살레 대통령은 이런 총체적 난국에도 지난 1월 대통령 연임제를 폐지하고 종신집권을 추진하다 강한 역풍을 맞게 됐다.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자 종신집권을 포기하고 임기 만료 후 퇴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민심은 이미 그를 등진 뒤였다. 1월 말 촉발된 예멘의 반정부 시위는 정부의 강경 진압에도 수도 사나 '변화의 광장'을 거점으로 기세가 꺾이지 않았고 결국 살레의 퇴진 약속을 이끌었다.
오랜 내전과 알카에다의 도전에도 꿋꿋이 버텨왔으나 중동에서 가장 빈곤한 국민들의 민생고 해결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피플 파워'에 결국 무릎을 꿇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