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죽음에 이르게 된 정확한 경위를 놓고 논란이 심화하고 있다. 시민군에 생포된 장면이 영상에 포착됐던 카다피가 언제, 어떻게 치명상을 입었는지는 상반된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카다피 시신을 처리하는 방식에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2세 시민군 "카다피에 2발 쐈다" = 뉴스통신 AFP는 21일(현지시간) 한 젊은 리비아 시민군이 카다피에게 총탄 두 발을 쐈다고 증언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돼 의혹에 불을 지폈다고 전했다. AFP에 따르면 이 동영상에는 사나드 알-사덱 알-우레이비(22)라는 청년이 군복을 입은 남성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레이비는 "카다피에게 (총탄) 두 발을 쐈는데 한 발은 겨드랑이 아래에, 다른 한 발은 머리에 맞았다. 그는 즉사하지 않았고 죽기까지 30분이 걸렸다"고 주장했다.
벵가지 출신이지만 미스라타 시민군에 가담했다는 그는 "우리는 도로에서 카다피와 맞닥뜨렸다. 카다피는 아이들과 여자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며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머리카락을 보고 그를 알아봤다. 미스라타 출신의 병사가 나에게 '저 사람이 카다피다. 체포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우레이비는 이어 금색 권총을 갖고 있던 카다피의 팔을 붙들고 때리자 카다피가 "너는 내 아들뻘이다"고 말했고 한 대 더 치자 "나는 네 아버지뻘이다"고 했다면서 자신이 카다피의 머리카락을 잡고 바닥으로 쓰러뜨렸다고 말했다.
그는 카다피를 벵가지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미스라타 병사들이 카다피를 미스라타로 끌고 가야 한다고 하자 카다피를 쏘기로 마음먹고 두 발을 발사했다고 말했다.
◇엇갈리는 죽음 정황 증언 = 뉴스통신 AP에 따르면 루퍼트 콜빌 유엔 인권 최고대표사무소(OHCHR) 대변인은 21일 카다피의 죽음을 둘러싼 정황이 불투명하다면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콜빌 대변인은 카다피가 교전 과정에서 죽었는지 아니면 체포된 다음 '처형' 당했는지 확인하려면 세부 정보가 더 필요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AP는 또 카다피 생포 당시 현장에 있던 지휘관이나 병사들은 카다피가 이미 치명상을 입은 상태라고 증언했다면서도 이런 목격담의 신빙성에 의혹을 제기했다. 동영상 속의 카다피는 바른 자세로 말을 할 기력이 있었으며 가슴과 배 쪽에는 핏자국이 없으며 가슴까지 셔츠가 올라갔을 때도 배 쪽에 총상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흐무드 지브릴 리비아 과도정부 총리는 카다피가 구급차에 실려 미스라타로 떠날 때 카다피 친위군과 시민군이 교전을 벌이면서 카다피가 죽음에 이르게 된 치명상을 입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브릴 총리의 설명과 달리 다른 시민군 지휘관이나 병사들은 그런 교전은 없었다고 전했다고 AP는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올라온 새로운 동영상에는 시민군들이 카다피를 구타하는 장면이 찍혔다. 이 동영상에는 한 젊은이가 머리에 흐르는 피를 훔쳐내는 카다피에게 "무아마르, 너는 개다"고 고함을 치고 카다피는 그에게 진정하라는 손짓을 하면서 "무슨 일이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또 이후 한 시민군이 부츠 한 짝을 들고 "이게 무아마르의 신발"이라면서 승리를 자축하는 장면이 담겼다.
◇카다피 시신, 쇼핑센터 냉동고에 방치 = 외신들은 카다피의 시신이 미스라타에 있는 한 쇼핑센터의 냉동고에 보관돼 있다고 보도했다.
AP 기자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상의가 벗겨진 상태의 카다피 시신이 냉동고 안의 매트리스 위에 눕혀져 있고 머리 왼쪽과 가슴 한복판, 배에 총상이 선명했으며 쇼핑센터 밖에는 카다피의 시신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려는 시민이 줄을 섰다.
외신들은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국가 과도위원회(NTC) 등 시민군 측이 카다피 죽음에 얼마만큼 준비가 안 돼 있고 혼란스러워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카다피의 죽음과 시신 처리 방식이 반(反) 카다피 측에도 충격을 안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석연찮은' 카다피 죽음에 국제사회 일각에서도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주교는 성명을 통해 리비아인이 독재자 카다피보다 더 우월한 가치를 보여줬어야 한다고 비판했고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카다피가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인도됐어야 했다 말했다.
리비아 과도정부를 승인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나라인 에콰도르의 킨토 루카스 외무장관은 카다피의 죽음이 "재판을 거치지 않은 처형"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참혹한 주검을 여과 없이 보도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dpa 통신은 카다피의 피투성이 시신을 보도한 BBC 등 영국 방송사들에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카다피 유족 측은 시리아 친(親) 카다피 TV 채널을 통해 성명을 내 "우리는 유엔, 이슬람협력기구(OIC), 국제앰네스티와 국가 과도위원회(NTC)에 '순교자'의 시신을 넘겨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