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연합뉴스) 독재자로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비견돼온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가 끝내 후세인처럼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 20일(현지시간) 국가과도위원회(NTC)에 의해 생포된 후 곧바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카다피의 최후는 후세인의 구차했던 마지막 순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다피가 과도정부군에 의해 발각된 곳은 고향 시르테 인근으로, 구덩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AFP는 카다피가 숨어 있었던 곳으로 알려진 콘크리트로 된 하수구의 사진을 공개했다. 과도정부군의 한 젊은 군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가 숨어있던 구멍을 발견했는데 카다피가 총을 쏘지 말라고 호소했다"고 자랑했다.
지난 2003년 12월 `붉은 새벽'으로 명명된 미군의 작전에서 체포된 후세인도 마지막 은신처는 그의 고향인 티그리트 인근이었으며 구덩이 속에 숨어 있었다. 미군들이 `거미구멍(spider hole)'이라고 부른 깊이 2m의 이 땅굴 속에서 후세인을 꺼내려고 삽까지 동원한 사진은 그의 초라한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카다피가 종적을 감춘 후 과도정부군에 의해 영원히 제거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2개월 가량에 불과했다. 미국이 후세인 생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8개월이 소요된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단기간이다.
카다피가 수도인 트리폴리를 과도정부군에 내주고 종적을 감출 때만 해도 그를 검거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과도정부군이 담당 해야 하는 지역이 이라크의 4배 수준이고 미국이 후세인 체포를 위해 막강한 정보력을 활용했던 것과 달리 충분한 정보 네트워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친인척들이 외국으로 피신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카다피도 이미 외국으로 빠져나갔을 것이라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 카다피가 체포되면 후세인처럼 국제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면서 그도 `후세인의 최후'를 그대로 따를 것으로 전망됐었다.
카다피는 생포 후 사형이라는 후세인의 구차한 과정을 재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구덩이와 하수구에 숨어지내다가 동족인 리비아인에 의해 죽음을 맞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목숨을 구걸한 독재자의 최후는 충분히 구차하고 비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