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시애틀타코마 국제공항에서는 20년 전 미국으로 건너 온 김윤주(여 51. 가명)씨와 연락이 두절됐던 가족과의 감격적 상봉이 있었다. 미국인 남편과의 이혼으로 고통의 시간을 겪었던 김 씨가 가족과 만날 수 있었던 데에는 시애틀 총영사관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다.


사진 설명 = 시애틀 총영사관에서 23년동안 일했던 L 전 과장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나가길 원치 않았다ⓒ 김브라이언 기자

총영사관 직원들만 알고 사라질 수 있었던 이번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경기도 부천에 살고 있는 김 씨의 동생 김수정(가명)씨가 시애틀 총영사관 웹사이트에 글을 올리면서 부터다.

미국인 남편을 만나 가족들 몰래 20년 전 미국으로 건너온 김윤주 씨는 아들 넷을 낳으며 단란한 부부생활을 이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3년 전, 김 씨의 남편은 자신의 여자 친구와 외도 행각을 벌였으며 심지어 여자 친구를 집안 침실에까지 들여오기 시작했다. 김 씨는 자신의 침실에서까지 애정행각을 서슴지 않는 이들의 태도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가슴에 한을 가지고 폭발한 김 씨의 분노를 남편은 정신병자로 몰아붙였다. 결국 이혼이라는 법원의 최종판결이 났지만 김 씨에 돌아가는 상속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정신병자가 재산을 관리할 수 없다는 남편 변호인 측의 주장 때문이었다. 법정 소송 당시 김윤주 씨를 도와줬던 변호사는 없었고, 법원은 남편의 손을 들어 아들에게까지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다. 결국 김 씨는 시애틀 북쪽에 자리 잡은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치료관련 약품을 주입받은 김 씨는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고, 1년 후 간호사들과 병원측은 김 씨가 정신질환이 없다고 인정해 퇴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갈 수 있는 집은 없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힘겨운 노숙의 시간을 지나 김 씨는 한 미국 교회를 찾았고, 미국교회에 만난 한인은 김 씨에게 재활을 위해 시애틀 북쪽에 자리 잡은 한인 기도원을 소개했다.

시애틀 총영사관에서 23년간 행정업무를 담당했던 L 과장이 김 씨를 찾은 것은 이 기도원에서다. L 과장은 그녀가 이혼하기 직전 가족들의 의뢰로 한차례 김 씨를 찾은바 있었다. 김 씨가 병원에 있는 동안 가족들은 김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총영사관에 다시 한 번 김 씨를 찾아달라고 요청했고 L 과장은 작년 5월 명예퇴임 직전까지 시애틀 인근 병원과 경찰서 관공서를 총망라하면서 까지 김윤주 씨를 찾았었다.

김윤주 씨는 남편이 병원 수속과정에서 이름을 바꿔 다른 이름으로 병원에 입원되어 있었고 총영사관의 수소문을 피해갔다. 결국 퇴임하게 된 L 과장은 후임자에게 그녀를 찾아줄 것을 부탁했지만 어디서도 김 씨를 찾을 수 없었다.

퇴임한지 1년이 넘은 L과장이 김윤주 씨를 만난 것은 집회 참석자 찾은 기도원에서다. 지역 한인교회 안수집사로 섬기는 L 과장은 가끔 기도원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윤주’라는 이름을 듣자 바로 성을 물었고 ‘김윤주’ 라는 이름 석자를 듣는 순간 자신이 찾았었던 김윤주가 맞는지 확인했다.

L 과장은 여권과 신분증을 모두 잃어버린 그녀를 데리고 총영사관을 찾아 여권부터 만들었다. 이후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눈물과 회한가운데 지난 14일 감격적 상봉을 이끌어냈다.

김윤주 씨의 동생 김수정 씨는 “권위주의적이고 고압적인 자세가 공무원의 대명사인줄 알았는데 L과장의 모습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며 “먼 곳에 있는 줄 알았던 영사관, 나랑은 전혀 상관이 없을 줄 알았던 영사관이 힘 든 상황 가운데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총영사관 직원으로서 할 일은 했을 뿐이라는 L 과장은 “김윤주씨가 가족을 찾게 되어 다행이지만 이렇게 판결이 나기 전에 총영사관에 문의를 했다면 고문변호사를 통해 충분히 권익을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면서 “한인들이 ‘총영사관 문을 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친정집이라는 마음으로 총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