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들어가는 말</b>
C.S. 루이스는 『우리가 얼굴을 가질 때까지』라는 그의 저서에서 “너의 영혼이 진실로 투명해질 때 너는 얼굴을 가질 것이다” 라는 매우 영성있는 말을 했습니다.
예술가의 모든 작품들은 실로 그의 자화상들입니다. 작품 안에 그의 정체성과 세계관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좋은 예술작품이란 매우 투명하여 그 예술가의 영혼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일은 “영혼의 창”과 같은 그의 작품을 통해 나의 영혼과 예술가의 영혼이 만나는 경험인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작년 늦봄에 미켈란젤로를 처음 만났던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저 유명한 그의 작품들인 <시스티나 천정화>라든지, <바티칸의 피에타>, <최후의 심판>같은 작품들을 그저 관광명소처럼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도 자세히 드려다 보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21세기를 살면서 아주 특별한 관심이 아닌 다음에야 16세기를 살다 간 예술가를 관심있게 들여다보지 않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장신대 강의를 진행하는 중에 그림공부를 하다가 신학교를 왔다는 어떤 남학생이 저를 찾아와 <론다니니의 피에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라면서 강의를 좀 해주면 안되겠느냐는 겁니다.
<론다니니의 피에타>라는 “영혼의 창”을 통해 만난 미켈란젤로는 제가 식상하게 알고 있던 미켈란젤로가 아니었습니다. 그 작품이 가진 영적인 아름다움은 정말 깊은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의 초기작 <바티칸의 피에타>와 그의 마지막 미완성작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비교하면서 강의를 준비했었습니다.
예술작품을 창작하는데 있어서 예술가들이 고민하는 가장 근본적이며 핵심적인 문제는 내용과 형식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예술작품은 옷이며 그릇이며 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내용을 어떤 그릇에 담아내느냐, 나의 영혼에 어떤 몸을 입혀줄 것이냐, 나의 이야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은 어떤 것일까... 그 질문은 예술가 뿐만 아니라 평론가나 감상자 모두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흥미로운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바티칸의 피에타>를 금그릇으로 비유하고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질그릇”, 질그릇 중에서도 “깨어진 질그릇”으로 비유해 보았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들 중 그의 영혼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는 작품 일곱 개를 차례로 살펴보면서 그의 삶의 여정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다는 것을 밝혀 보고자 시도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의 종착역은 역시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통해 보는 미켈란젤로, 그의 영혼의 마지막 자화상일 것입니다. (계속)
<사진 설명 : 론다니니 피에타, 1564년 밀라노 스포르차 성 – 복사본>
심정아 작가는 뉴욕 Parsons School 학사, 뉴욕 Pratt Institute 석사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설치미술을 전공했으며 국립 안동대학교, 홍익대 조형예술대학, 경희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 중이다.
<출처: 예술의 발현과 선교를 지향하며 아름답고 영화로운 예술장르를 그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 아트미션(www.artmiss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