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얼마 전 한국교회총연합을 방문해 경색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정부의 노력과 민간 차원의 대화 및 협력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한교총 김종혁 대표회장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급진적이고 충격적인 정책은 피할 것을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장관이 교계 기관을 예방하는 건 보통 얼굴을 알리려는 의례적인 데 있지만 취임한 지 석 달이 더 지나서 교계를 찾은 건 아무래도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교계의 지지와 협조를 요청하려는 목적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여러 가지 선행적인 대북조치를 취하고 있는 데 따른 기독교계의 우려 목소리를 의식했다는 뜻일 거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회장은 "약육강식의 국제 질서에서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으면 국가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정책이라도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급진적이며 충격적인 정책은 되려 국민의 반감을 사기 쉬우니,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차근차근 접근하시기 바란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김 대표회장의 말은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에 앞서 안보를 튼튼히 하는 등 안정적인 기조 토대 구축이 더욱 필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 3가지 원칙은 강력한 억지력과 튼튼한 국방, 흡수통일 반대, 대북 화해 협력 이 세 가지"라며 "이재명 정부가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1971년 박정희 정권 시절 남북적십자회담 이래 최초로 대화, 교류, 심지어 전화까지 불통 상태"라며 "교전 중인 적국 간에도 통신은 하는데 현 상태는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하며 위험하다"는 말로 현 남북관계의 심각성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박근혜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급격히 경색된 것을 간접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보수 정권에서 얼음장처럼 식은 남북관계를 진보 정권이 화해와 협력을 기조로 녹이겠다는 의지가 내포돼 있다.
이날 정 장관은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이나 비난하는 어조는 피했다. 하지만 현 남북관계가 이전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꼬였다는 걸 은연중에 드러냈다. 이걸 현 정부가 뜯어고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으니 기독교계가 지지와 협력을 보내달라는 의도일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이전 윤석열 정부가 유지해 온 대북정책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대북 전단지 살포를 전면 중지시키고, 국정원이 지난 50년간 해 오던 대북방송도 완전히 끊었다. 남북관계 경색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의 하나로 현 정부가 선택한 방법이지만 정작 이런 선행적 조치들이 대북관계 개선에 가시적인 변화와 효과로 나타나는 조짐은 그 어디에도 없다.
대북 전단지 살포는 민간단체가 북한 주민에게 바깥세상의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전단지 안에 김씨 일가의 폭정을 알리는 자극적인 내용이 들어있어 북한 김여정이 "전단지 금지법이라도 만들라"고 하는 등 온갖 폭언과 위협을 가했다. 그 후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전단지금지법'이 제정됐으나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론 내리면서 재개됐다. 이걸 현 정부 들어 다시 강제하면서 국민의 권리 침해 논란이 일고 있는 거다.
국정원이 지난 50년간 이어온 대북 라디오방송과 TV 방송 또한 북한 주민이 외부에서 정보를 얻을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이걸 정부가 중단한 것에 대해 교계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온 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대북방송은 북한 체제를 비판하거나 김정은 체제에 위협을 가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외부 세계의 소식을 전해주고, 특히 날씨 등 북한 주민의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내용으로 편성돼 있다. 이것마저 중단시킨 건 북한 김정은 체제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결과적으론 압정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외면한 것이어서 남북관계 개선에 실익이 없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해외 기자간담회에서 대북방송에 대해 "쓸데없다. 요즘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오는데 그걸 왜 하냐"고 비판한 게 화제다. 첨단 IT 시대에 주먹구구식 방송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의미인데 북한 주민이 인터넷을 못 쓰는 건 상식이란 점에서 대통령의 현실 의식에 문제점을 드러낸 거다.
북한에서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사람은 김씨 일가와 극소수의 특권층뿐이다. 일반 주민들은 외부 정보망에 아예 접속하지 못하게 돼 있다. 북한에도 인터넷이 있으나 그건 북한 내부망일 뿐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돼 있어 유입되는 정보가 전무한 게 사실이다.
우리의 대북방송이 북한 주민들에게 한 줄기 빛이었던 건 그런 북한의 폐쇄적인 현실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노무현 문재인 정부 때도 차마 대북방송만은 끄지 않았던 거다.
"인터넷을 뒤지면 다 나온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적어도 북한 주민들에겐 정말 꿈같은 일이다. 이걸 잘 몰라서 대통령이 대북방송 중단 지시를 내린 거라면 지금이라도 제대로 파악하고 방송을 재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알고도 그런 말을 했다면 그 진의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기 바란다.
국내에 들어온 상당수의 탈북민이 대북방송과 전단지 등을 통해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한다. 이처럼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 김정은 체제가 아닌 북한 주민에게 맞춰져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