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반도 긴장 완화의 일환으로 북한 개별관광을 추진하는 방안을 놓고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이 문제가 공식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장 실현 여부를 떠나 현 남북 관계를 고려할 때 일방적인 유화적 발상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통일부는 지난 21일 "정부는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 관계 개선을 목표로 대북 정책을 수립, 추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통일부가 말한 '다양한 방안'이란 NSC에서 언급된 '북한 개별관광'을 가리킨다.
우리 국민의 북한 지역 관광은 지난 2008년 금강산 관광에 나섰던 김왕자 씨를 북한군이 총으로 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전면 중단된 상태다. 북한은 남한 관광객을 무참히 살해하고도 이에 대해 사과하거나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관광 재개가 요원해지자 지난 2010년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자산을 몰수 또는 동결하는 등 되레 불만을 드러낸 게 북한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북한 관광을 다시 추진하려는 보도가 나오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북한 김정은이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원산 등 동해안 관광지 개발에 나서는 등 외부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이다. 정부가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여기에 연결하려는 게 성급하다는 거다.
남북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정부가 그 중 하나로 북한 관광을 추진하려는 배경은 개별관광이 대북제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단체관광은 북한으로 대량의 현금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한 대북제재 2087호 등을 위반할 소지가 있으나 개별관광은 대북 송금 등 대량의 현금을 북한에 제공하지 않지 않기 때문에 대북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정부가 구상하는 북한 개별관광은 남에서 직접 북으로 가는 관광, 제3국을 경유하는 관광, 외국인의 남북 연계관광 등 세 가지 방안이다. 이 중 남에서 직접 북으로 가는 관광은 남북 당국이 직접 만나 타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당장 실현되기 어려운 요소를 안고 있다. 하지만 중국 등 제3국을 통한 방북은 북한이 관광비자를 내주고 정부가 승인하면 간단히 해결된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북한 개별관광이 대북제재 대상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전에 반드시 선행돼야 할 조건이 있다. 관광객의 안전 보장이다. 이 문제가 남북 당국자간에 분명히 매듭지어지지 않으면 시도조차 해선 안 된다. 금강산 관광의 경우도 북한 군인이 관광객을 피격한 사건으로 중단됐고 북한이 사과는 물론 재발 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게 된 걸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북한 관광문제는 지난 문재인 정부 때도 거론된 적이 있다. 그때는 이산가족 금강산·개성 방문, 한국 국민의 제3국 경유 북한 방문, 외국인의 남북 연계 관광 등 세 가지 개별관광 방안을 추진하다가 북한이 적극적으로 호응해 오지 않는 데다 한미관계를 고려해 결국 흐지부지됐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하는 단계에 이른 데다 대한민국에 대해 '적대적 2국가론' 기조를 고수하며 대남 적대성을 노골화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북한이 돈이 들어오는 단체관광도 아니고 개별관광 사업에 호응할 거란 보장이 없다. 전문가들도 북한이 돈이 남지 않는 인도적 사업에 문호를 개방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자 정부도 "당장의 관광 재개보다는 장기적 가능성 검토 단계"라며 한발 물러섰다. 통일부는 우리 국민이 북한의 원산갈마지구 개별관광을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개방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성사 여부가 북한의 의지와 결심에 달려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기류 속에서 최근 국정원이 자체 운영 중인 대북 라디오 방송과 TV 방송의 송출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50여 년간 북한 주민의 외부 눈과 귀 역할을 해준 유서 깊은 대북 방송을 전격 중단한 배경 또한 현 정부의 향후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사전 포석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접경지역에서의 대북 전단 살포 금지와 대북확성기 방송중단에 이어 수십 년간 이어온 대북 방송까지 중단했다는 건 현 정부의 남북 긴장 완화 및 관계 개선 의지를 짐작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서 깊은 대북 라디오 방송을 전격 중단하는 게 바른 판단인지를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내용이 문제면 그 부분만 바꿀 일이지 방송 자체를 중단하는 건 남북관계를 복원하려는 기본 목적의식마저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전투병을 파병해 전 세계에 지탄을 받고 있다. 또 유엔 안보리 제재 등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등 국제사회가 북한의 제재 위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마당에 대한민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북한 관광을 추진하는 게 시기적으로 적절한지부터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전 문재인 정부는 '평화가 곧 안보'라는 기조에 치우친 나머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이전 정부의 실기를 너무나 잘 아는 현 정부가 안보 이슈를 도외시한 채 북한관광 등 독자적인 대북 지원사업에 몰두할 경우 국제적인 고립뿐 아니라 한미 동맹 관계 균열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