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기력이 약해지고, 여기저기 신체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특히 눈이 잘 안 보이거나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세월이 좀 더 지나면 걷는 것도 불편해지고, 보조기구나 휠체어를 찾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요즘은 참 다행이다. 의학이 발달해서 눈은 수술하거나 안경, 콘택트렌즈로 보완할 수 있고, 귀는 보청기로 어느 정도 들을 수 있다. 다리에 힘이 빠지면 보조기구나 휠체어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나는 어릴 적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다. 회복이 어려운 상태였고, 지금까지도 다른 한쪽 눈에만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남은 눈이라도 잘 관리하려고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안과 검진을 받고 있다. 며칠 전에도 병원에 가서 대기실에 앉아 사람들을 둘러보니, 대부분이 60대 이상이고 보조기구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도 꽤 많았다. 그 풍경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으며, 앞으로 나이가 더 들게 되면 나도 그들과 같아질 것이란 생각이 들어 평소에 건강 관리를 더욱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의사가 내년쯤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는데, 이번 검진에서는 눈 상태가 오히려 좋아졌다고 했다. 수술도 필요 없다는 말에 마음이 참 가볍고 감사했으며, 햇살 아래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는 내 눈 이야기를 가족 외에는 거의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지인이 한쪽 눈 수술 이후 시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래서 나는 그분에게, 나의 한쪽 눈이 어릴 때 망가지고도 평생 한쪽 눈만으로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설명해 주며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위로해 드린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분은 무척 고마워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내 마음이 바뀌었다. 나의 약함을 숨길 필요도,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쪽 눈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족함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축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사람의 얼굴에 눈과 귀를 두 개씩 주셨고, 입은 하나만 주셨다. 눈은 앞에만 있고, 귀는 양옆에 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하다가 이런 해석이 떠올랐다. 눈이 앞에만 있는 것은 ‘뒤돌아보지 말고 앞을 보고 나아가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귀가 양옆에 있는 것은 ‘더 많이 듣고, 더 넓게 들으라’는 뜻 아닐까. 그렇게 세상 이야기를 듣고,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삶, 그것이 건강한 삶 아닐까 싶다.
입은 하나지만 중요한 기능이 두 가지다. 음식을 먹고 물을 마셔서 생명을 유지하게 하고, 말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눈과 귀가 어두워지는 것도 어쩌면 하나님이 주신 지혜일지 모른다. 너무 많은 것을 보거나 듣기보다, 때로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며 사는 것이 오히려 편할 때도 있다. 그러니 나이가 들면서 눈과 귀가 좀 나빠지거나 신체의 일부에 이상이 생겨도 너무 놀라거나 염려하지 말고, 잘 받아들이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 (잠언 20:12)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눈과 귀를 가지고, 나에게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갈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더욱 귀담아 듣고 경청하며,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건네고, 볼 수 있는 눈으로 세상을 더욱 넓게 바라보면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가 될 때에,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비록 한쪽 눈으로 살아가지만, 그런 행복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