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우즈베키스탄 기독교와 교회 상황
실크로드의 중심지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 인구가 전체 인구의 96%를 차지하고 있지만 세속 국가 이념을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이다. 티무르(Timur) 제국하에서 이슬람이 번성했고, 구소련 시절과 독립 후 독재 정권이 계속되면서 교회와 기독교인은 박해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신앙에 있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률이 공포되는 등 종교 정책에 있어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1) 기독교 역사와 교회 현황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은 3세기 초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Samarqand)에는 310년에 교회가 세워졌다.1 또한 4세기에는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경을 따라 흐르는 아무다리야(Amu Darya) 강줄기 북쪽에 거주하던 소그드(Sogd) 상인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교역하면서 기독교를 전파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 중심의 네스토리안교회(Nestorian Church)는 6세기 후반에 사마르칸트에 주교를 임명했다. 사마르칸트와 부하라(Bukhara), 타슈켄트(Tashkent)에서 발굴된 십자가는 그 당시 기독교가 이곳에서 얼마나 활발했었는지 말해준다. 적어도 14세까지 이곳에는 대주교가 계속 존재했지만, 14세기 후반에 티무르 제국이 세워지면서 중앙아시아에서 기독교는 자취를 감출 정도로 약화됐다. 역사가들은 투르크계 부족민들로 구성된 티무르의 군대가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1,700만 명의 사람들을 죽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러시아 제국의 황후에서 황제가 됐던 프로이센 출신의 예카테리나 2세(Ekaterina II) 통치 시절, 독일인들에게 군역을 면제시켜 주는 조건으로 독일인의 러시아 이주가 추진되면서 20세기 초까지 러시아 내 독일인의 수는 200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스탈린(Joseph Stalin)은 러시아에 있는 독일계 주민들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여 이들을 중앙아시아로 이동시켰다. 수십만 명의 독일계 주민들이 유럽 등지로 돌아갔지만, 1999년까지 독일계 주민은 카자흐스탄에 353,441명, 키르기스스탄에 21,472명, 우즈베키스탄에도 약 1만 명이 거주했다. 이렇게 독일계 기독교인들을 통해 이 땅의 무슬림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그리고 독립 이후에도 우즈베키스탄에 독재 정권이 수립되면서 교회들은 심각한 수준의 박해를 겪었다.
2025년 6월에 퓨리서치(Pew Research)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즈베키스탄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33,590,000명)의 2.8%로 940,520명 정도이다. 이슬람 인구는 약 95.6%를 차지한다.6 2022년 기준 정부 당국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종교 단체는 2,356곳으로, 이 중에서 190여 개만이 기독교 단체이다. 2015년 자료에 따르면(미등록 교회 포함), 고려인을 중심으로 한 교회는 약 130개, 침례교회는 약 60개, 독립교회는 약 500개 정도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즈베키스탄 최초의 침례교회는 19세기 말에 세워진 가잘켄트침례교회(Gazalkent Baptist Church)이고, 타슈켄트침례교회(Tashkent Baptist Church)도 1905년에 설립됐다.9 1925년에 조직된 복음주의기독교침례교연합(UECBU)은 현재 약 60개의 교회와 2,735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경은 1886년에 처음으로 우즈벡어로 번역이 시작됐고, 2011년에 성경 전체가 번역되기까지 100년이 넘게 걸렸다.
2) 독재 정권하에서 교회 박해
1991년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한 이래 2016년까지 카리모프(Islom Karimov) 대통령은 독재 정권을 이어갔다. 그를 이어 2대 대통령에 오른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yev)도 지금까지 정권을 잡고 있고, 최근 헌법 개정을 통해 2040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구소련 시절 공산주의하에서 교회들은 많은 박해와 핍박을 견뎌야 했고, 독립 이후에도 우즈베키스탄 정부 당국은 종교의 세력화와 급진화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종교를 탄압했다. 급진주의 이슬람 단체들도 단속의 대상이기는 했지만 가장 큰 피해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겪었다. 지금도 부활절이나 성탄절 행사에는 관할 지역 경찰이 나와 예배를 감시한다. 2023년 4월에 카슈카다리야(Kashkadarya) 지역에 위치한 카르시침례교회(Karshi Baptist Church)는 경찰 제재로 부활절 예배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유는 부활절 예배 행사를 위해 독일에서 초청한 음악가들이 정식으로 신고되지 않아 불법 집회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교회에 대한 박해는 교회의 단체 등록을 거부하거나 재등록을 불허하는 등의 모습으로 자주 나타난다. 가잘켄트교회는 2021년 종교법 개정 이후로 계속해서 재등록을 거부당하고 있고, 2024년 6월에 새로운 부지로 이전하기 위해 요청서를 제출했던 굴리스탄교회(Gulistan Baptist Church)는 허가를 받지 못했다. 부하라교회(Bukhara Baptist Church)는 4년 전 홍수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주변 이웃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건물 수리 요청이 중단된 상태이고, 교회를 건축 중이었던 우르겐츠교회(Urgench Baptist Church)는 지역 여론에 부딪혀 2024년 7월에 건축물 철거 명령을 받았다. 이뿐 아니라 교회에 대한 급습이나 부당한 혐의로 인한 체포 등도 많이 발생했다. 2004년에 미등록 상태였던 베다니교회(Bethany Baptist Church)는 경찰에 급습으로 적발되어 벌금형을 받았고, 2010년에 시르다리야(Syr Darya) 지역에 거주하던 28세의 침례교인 하이다로프(Tohar Haydarov)는 압수 수색을 받고 마약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오픈도어즈선교회(OpenDoors)에 따르면, 2023년에 신체적, 정신적 폭력과 학대를 경험한 우즈베키스탄 기독교인들은 48명이었고, 2024년에도 60명으로 증가했다.16 오픈도어즈선교회가 해마다 발표하고 있는 세계감시목록(WWL) 순위에서 우즈베키스탄이 7위로 가장 높았던 2012년에 압둘라예바(Gulchehra Abdullayeva)는 경찰에 체포되어 4시간 동안 음식과 물 없이 방독면을 쓴 채로 40도가 넘는 더위를 견뎌야 하는 고문을 받았고, 2013년에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누르메토프(Sardorbek Nurmetov)가 머리와 가슴을 구타당한 뒤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2018년 10월에는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43명이 체포됐는데, 경찰 당국은 이들에 대한 재판 과정을 생중계하려고 시도했던 적도 있었다. 법원은 생중계를 불허하고 촬영만 허락했지만 이들은 모두 유죄 판결을 받고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3) 변화하고 있는 종교 정책
우즈베키스탄에서 1991년에 제정되고 1998년에 개정된 "양심의 자유와 종교 단체"에 관한 법률은 2021년 개정안에서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2025년 2월에 "종교 분야에서 시민의 양심의 자유와 국가 정책 보장"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 종교 정책에 있어서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이뿐 아니라 세계감시목록(WWL) 순위도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2012년에 7위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지만 이후로 조금씩 내려가고 있는데, 2018년에는 16위, 2021년부터 2023년까지는 21위, 그리고 2024년과 2025년에는 25위까지 낮아졌다. 또한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의 권고와 지정으로 2017년까지는 특별우려국(CPC)으로 분류됐지만, 2018년부터는 다소 완화되어 특별감시목록(SWL)으로 조정되었다. 그리고 2024년 12월에 발표된 퓨리서치(Pew Research) 자료를 보면, 우즈베키스탄의 종교에 대한 정부제한지수(GRI, 10점 기준)는 2022년 기준 7.3점으로 아직 '매우 높음'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2007년에 3.3점이었던 사회적 적대감지수(SHI, 10점 기준)는 2.6점까지 떨어져 '보통' 단계에 위치하고 있다.
2021년에 개정된 종교법은 명목상 양심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표방한다고 했지만, 부모들은 18세 미만의 아동에게 종교 교육을 할 수 없었고 교회나 종교 단체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지역에 거주하는 50명 이상의 교인이 있어야 했다. 또한 지방 당국과 중앙 정부에서 모두 심사를 거쳐야 했고, 모든 구성원들의 신분 확인 서류까지 요구했으며, 재등록시에는 모든 절차를 새로 받게 했다. 그런데 올해 2월에 개정된 종교법을 공표하면서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세속주의, 자유, 평등, 사회 정의, 연대 및 지속적인 개발을 기반으로 모든 시민이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다국적이고 다종교적인 우즈베키스탄의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23
이번에 공표된 법률에 구체적인 내용이 담기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국가 정책의 변화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새로 제정된 법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우즈베키스탄 시민은 종교를 고백하거나, 종교를 바꾸거나, 종교를 고백하지 않을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다. 특정 종교적 가르침에 대한 시민의 태도에 따라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종교적 신념의 존재 또는 부재와 관련된 감정을 모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종교와 국가 분리의 원칙에 따라 종교 단체와 국가 기관이 서로의 활동에 간섭하지 않고, 국가가 종교 단체에 국가 기능을 강요하지 않으며, 종교 단체는 국가 기능을 행사하지 못한다." 앞으로 종교 단체의 등록과 교육, 활동 등에 이러한 기조가 구체적으로 반영된다면 우즈베키스탄에서 종교 활동의 자유는 더욱 실질적으로 보장될 것으로 보인다.
2. 우즈베키스탄 사회의 여러 문제들
구소련에서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은 두 명의 대통령에 의해 34년째 독재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오랜 독재로 사회는 여러 면에서 통제되어 왔고,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경제까지 흔들리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이주한 인구는 200만 명을 넘는 상황이다. 또한 14세기 이후로 자리 잡은 이슬람 문화와 전통 아래에서 여성들은 심각한 차별과 어려움을 겪었다.
1) 오랜 기간 독재로 인해 통제된 사회
우즈베키스탄 사회 여러 분야는 아직도 통제와 단속으로 얼룩져 있다. 2024년 자료에 따르면, 부패인식지수와 언론자유지수, 민주주의지수는 모두 120권 밖에 머물러 있었다.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에서 발표한 2025년 세계자유지수(Freedom in the World)에서도 정치적 권리 분야는 2점(40점 기준), 시민 자유 분야는 10점(60점 기준)으로 총점 12점을 기록해 러시아, 베네수엘라보다 낮았다. 인터넷 자유도 27점(100점 기준)으로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2 휴대전화를 통한 인터넷 불법 활동을 막기 위해 통신 검열과 사이트 차단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현재는 해외 소셜미디어 사용을 금지하면서 자국 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 IT 기업들에게는 반드시 우즈베키스탄 내에 서버를 설치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독재 정권이 오랫동안 이어오면서 우즈베키스탄 정부 당국에서 반체제 인사들을 체포하고 감옥에 보내는 일은 자주 일어났다. 자슬릭(Jaslyk) 교도소는 카리모프(Islom Karimov) 독재 정권하에서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고문과 투옥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런데 최근 경제 악화로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이를 두고 정부에 항의하는 일반 시민들까지도 탄압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2024년 12월, 주유소에서 기름을 사기 위해 이틀 동안 기다렸던 두스토프(Gayrat Dustov)는 주유를 못 하게 되면서 세계 20대 가스 생산국 중 하나인 우즈베키스탄 상황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고, 곧바로 체포되어 15일간 감옥에 갇혔다. 2023년에는 우즈베키스탄 자치구인 카라칼팍스탄(Karakalpakstan)에서 소요 사태를 조장했다는 혐의로 타지무라토프(Dauletmurat Tazhimuratov) 변호사가 재판에 넘겨져 16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경제 개발로 인해 토지 수용이 많아지면서 주거지에서 강제 퇴거당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24년 8월에 유엔인권사무소(OHCHR)의 특별감독관이었던 라자고팔(Balakrishnan Rajagopal) 박사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강제 퇴거와 지역 이주로 인한 문제를 조사한 후 보고서를 작성해 정부 당국에 전달한 바 있다. 그는 2023년에 헌법 개정으로 토지 보상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토지 수용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고, 토지 은행이나 공동 출자 방법 등을 활용해 원래 주거민들의 정착과 안정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5 실제로 우즈벡인권포럼(UFHR)은 2018년부터 2024년까지 타슈겐트(Tashkent)와 사마르칸트(Samarqand)에서 진행됐던 11건의 도시개발 사업을 조사한 결과 수천 명의 주민들이 강제 퇴거와 불법 토지 수탈을 당한 것을 확인했다.
2) 경제 불황으로 증가하고 있는 이주 인구
2022년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즈베키스탄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2023년 2월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겐트의 도시 건설 계획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유는 강진으로 피해가 컸던 튀르키예 건축 회사들이 고층 건물 대부분의 시공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 요인이 크게 작용한 탓이다. 이렇게 복합적인 원인들이 겹치면서 우즈베키스탄은 현재 심각한 수준의 경제 불황을 겪고 있다. 2019년에 대통령은 중앙은행에 2023년까지 인플레이션을 5%로 낮추라는 과제를 부여했지만, 이 목표는 2024년에도 달성되지 않았다. 2020년에 13.5%까지 치솟았던 인플레이션은 다소 떨어졌지만 2024년까지 10% 내외에서 계속 머물고 있다. 2024년 우즈베키스탄의 가스 가격은 129%까지 상승했고, 전기와 수도요금도 각각 67%, 32% 상승했다. 경제학자인 니예즈메토프(Islambek Niyezmetov) 박사는 공공요금의 급격한 상승이 국민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 침체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아 도시와 해외로 이주하는 인구를 증가시켰다. 우즈벡국가통계청(NSC)에 따르면, 2024년에 농촌 지역에서 도시로 18만 명이 이주했고, 25만 명은 해외로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8 현재 200만 명이 넘는 우즈베키스탄인들이 해외에서 일하고 있고, 2024년 1월부터 10월까지 이들은 우즈베키스탄으로 126억 달러를 송금했다. 경제학자인 가니예프(Bakhadir Ganiev) 박사는 안타깝지만 이주민들의 송금 없이는 우즈베키스탄 경제가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더욱 심각한 점은 해외 이주민들의 다수가 청년층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해외로 이주한 25만 명 가운데 80%가 취업 연령대였다.10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 영국에는 중앙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입국했다. 이전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이 계절노동자비자(SWS)로 2만 명 이상 취업했었는데, 전쟁 이후로 우크라이나인들이 줄어들면서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 유입되는 숫자가 증가한 셈이다. 2022년에 키르기스스탄 노동자의 영국 입국은 10배 이상 늘어 4,341명에 달했고, 우즈베키스탄 출신도 3천 명 이상이 노동자비자를 받았다.11 2024년에 우즈베키스탄 젊은이들은 카자흐스탄(81.1%)으로 가장 많이 이주했고, 그다음으로 러시아(14.8%), 한국(0.9%), 키르기스스탄(0.7%), 투르크메니스탄(0.4%)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3) 이슬람 문화 안에서 차별받아 온 여성
이슬람 문화 안에서 우즈베키스탄 여성들은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왔다. 1991년 독립 이후에도 여성의 기본적 권리와 교육과 고용에 관한 실제적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1991년에 여성 대학생 비율은 41%였지만 1997년에는 37%로 떨어졌고, 2020년에는 30%에도 미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조혼이 성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은 교육과 취업에 있어 접근이 어려웠고, 일부다처제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전통 사회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어 가족 내에서 여성들이 존중받거나 아내와 어머니로서 대우받기가 쉽지 않았다.
2020년까지 평균적으로 매년 약 4만 명의 여성들이 신변 보호를 요청했고, 이 중 85%는 가정 폭력 또는 가까운 친족 폭력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매년 약 600명의 여성들이 자살하고 있다. 코로나 기간에는 여성들이 남편 또는 시가족과 함께 집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이 숫자가 900명까지 급증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 개발전략센터(DSC)에서 2021년 3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도시 지역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의 비중은 34%에 그쳤고, 농촌 지역에서는 28%였다. 기혼 여성의 취업률은 36%로 미혼 여성에 비해 16%나 낮았다. 구직 여성의 43%는 먹고 살기 위해서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2024년에 세계은행에서 발표한 국가별 성평등 평가(CGA) 보고서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은 최근의 노력들이 반영돼 성평등 개선 상위 5개국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2022년에는 노동법상 남성과 동일한 임금 규정이 마련됐고, 2023년에는 가정 폭력에 대한 형사 처벌 조항이 형법 개정안에 포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키스탄의 글로벌성격차지수(GGGR)는 2024년에도 전 세계 146개국 중 108위에 그쳤다. 구체적으로 여성의 건강과 보호 영역은 136위, 경제 참여와 기회는 115위, 정치 참여는 89위, 교육 수준은 87위로 나타났다. 누쿠스국립교육학연구소(NSPI)의 세이토바(Zukhrakhon Seitova) 박사는 지금까지의 노력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우즈베키스탄이 쇄신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가족 내에서 존중받으면서 사회에서도 좀 더 지위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 우즈베키스탄 선교의 기회와 도전
여러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고려인의 역사로 인해 우리에게 친숙하다. 한국 선교사들은 1991년에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하면서부터 파송을 받아 이곳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최근 우즈베키스탄은 경제 발전을 위해 여러 방면에서 정부 차원의 투자와 지원을 확대하면서 성장 잠재력을 드러내고 있고, 이를 통해 전문인 선교의 기회와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아직까지 법적 규제로 인해 교회 활동이 자유롭지 않지만 가정교회들의 네트워크와 지도자 교육을 강화해 나간다면 교회들이 견실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00개가 넘는 고려인 교회와 해외에서 복음을 접하고 있는 수많은 우즈벡인들은 앞으로 우즈베키스탄의 선교 동력으로서 큰 역할을 감당할 것으로 보인다.
1) 정부에서 투자하는 분야에 대한 협력
2016년에 취임한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yev) 대통령은 최근까지 아시안게임 유치를 위해 경제 개발과 시설 준비에 전력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우즈베키스탄을 개발 강국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지난 연말부터 각종 분야에서 정부 주도의 투자와 지원에 관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유치원 교육에서부터 시작해서 농촌 개발 프로젝트, 여성들의 취업과 창업, 그리고 가장 중점으로 두고 있는 청년 분야에 이르기까지 지원 분야도 다양하다.
우즈베키스탄은 지난 7년 동안 5천 개 이상의 학교가 건설되거나 재증축을 마쳤고, 2025년에도 100개 이상의 새로운 학교가 건설될 예정이다. 유아 교육에 있어서는 앞으로 162개의 유치원을 추가로 신설하고 학령 전 아동의 등록률을 78%까지 높일 계획을 세웠다. 농촌 개발과 관련해서 이슬람개발은행(IsDB)과 유엔개발계획(UNDP)이 참여하는 1단계 프로젝트가 마무리됐고, 앞으로 4년간 2단계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다. 2억 9,350만 달러의 예산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사마르칸트, 카쉬카다리야, 수르한다리야 등 3개 주(州)에 있는 157개의 마을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차별받아 온 여성들의 지위 강화, 취업과 창업 증진을 위해 새로운 법률까지 마련됐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앞으로 200만 명의 여성들에게 취업 기회를 부여하고 25만 명의 여성이 전문 기술과 창업 교육을 받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을 세웠다.3 취임 때부터 청년 분야의 지원과 육성을 강조해 온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2017년에 청년 사회운동 단체를 우즈벡청년연합(YUU)으로 개편했고, 2018년에는 "청년-우리의 미래"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2021년에는 290만 명의 청소년들이 다양한 클럽(스포츠, 예술, 과학, 컴퓨터, 로봇)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북챌린지(Book Challenge)와 여러 기부 사업을 통해 60만 권 이상의 책과 9만 7천 개 이상의 스포츠 장비, 컴퓨터, 미술용품 등을 교육기관에 전달했다.
그런데 만일 경제, 사회 여러 분야에 대한 투자와 개발에 있어 NGO나 비즈니스 영역에서 선교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종교법으로 인한 규제가 심한 우즈베키스탄에 선교의 가능성이 좀 더 열릴 수 있을 것이다. 1991년부터 사역을 시작했던 한국 선교사들도 의료봉사, 무료급식, 유치원, 고아원, 대학교수, 직업훈련, 농업지도, 스포츠지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 사역을 통해 지역사회를 섬기면서 복음 전파에 힘썼다. 스페인 선교학자인 지오르다노(Christian Giordano) 박사는 40년 이상 이슬람 국가에서 사역하면서 유엔 지속가능한개발목표(SDG)와 연결된 프로젝트로 인해 생겨난 10개 교회를 연구한 바 있다. 여기에는 우즈베키스탄의 교회 한 곳도 포함됐었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이슬람 사회에서 전문인 사역과 지역사회 개발은 더욱 투명하고 유익하며 평화적인 차원에서 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고, 작지만 견고한 교회를 세워가는 토대가 된다고 강조했다. 2020년 유니세프(UNICEF) 조사 연구에서, 우즈벡 청년들의 26.5%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우울감을 느낀다고 응답했고, 사회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으로 더 나은 교육과 훈련(77.6%)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 선교적 접근이 조심스럽게 이뤄진다면 젊은이들을 통한 복음 전도의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미션유라시아(Mission Eurasia)에서 지원하는 School Without Walls 프로그램을 수료했던 수크롭(Sukhrob, 가명)은 이 과정을 통해 복음을 접했을 뿐 아니라 수료 후에 시골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2) 가정교회 네트워크와 지도자 교육 강화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독립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종교 단체들의 세력화나 급진주의 성향에 대해 단속해 왔다. 이슬람 단체와 유대교, 불교, 여호와의 증인들도 단속의 대상이었지만 기독교 교회들이 가장 큰 피해를 겪었다. 2022년 기준 정부 당국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종교 단체는 2,356곳인데, 대부분 이슬람 단체이고 기독교 단체는 190개뿐이다. 2022년에 새로 등록 허가를 받은 교회는 1곳에 불과하다. 2021년에 개정된 종교법으로 인해 교회를 등록할 때는 반드시 50명 이상 구성원의 신분 등록이 요구된다. 오픈도어즈선교회(OpenDoors)는 기독교 박해의 주요 원인을 9가지로 분류하는데, 우즈베키스탄의 박해는 이슬람국가에서 발생하는 종교적 갈등과 탄압이기보다 독재 정권의 감시와 단속에 가깝다.10 이렇게 우즈베키스탄은 지금도 법적 규제가 많기 때문에 가정교회의 역할이 중요하고, 이 교회를 이끌어갈 지도자 교육의 필요성이 더욱 요청되고 있다.
국제선교회(International Mission Board) 소속인 재미슨(Todd Jamison) 선교사는 가정교회 사역이 중앙아시아에 가장 적합한 교회 개척 전략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중앙아시아 가정교회가 마주하는 불안과 고립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정교회 네트워크가 필수라고 조언한다. 따라서 대형 교회에 대한 이상을 꿈꾸기보다 진짜 교회로 나아가는 목표를 세우고 교회 간 협력과 중보를 통해 함께 성장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슬라브복음협회(SGA)의 지원을 받는 올렉(Oleg) 목사는 가정교회를 목회하면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가난한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고, 수요일에는 시골의 작은 마을에 방문해 우즈벡어로 성경을 가르치고 국경 지역 마을까지 성경을 전달하고 있다. 독일의 선교학자인 라이머(Johannes Reimer) 박사는 부하라(Bukhara)에서 특히 장애인들을 섬기는 가정교회들이 늘고 있다고 전하면서 코로나 기간 동안 기독교인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마스크와 식량과 물을 나누며 지역사회 곳곳에 복음을 소리 없이 전하는 통로가 됐다고 소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슨 선교사는 가정교회 중심 사역에서 나타날 수 있는 뚜렷한 단점 중에 하나로 건전한 신학에서 벗어난 사역자의 양산을 꼽는다. 가정교회 개척자들은 신학교육이나 목회 훈련이 덜 된 경우가 많고, 교회를 목회하면서도 잘못된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과 한계를 인식하고 슬라브복음협회의 지원을 받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성경학교(Almaty Bible Institute)는 본교를 비롯해 러시아의 옴스크(Omsk)와 크라스노다르(Krasnodar),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Tashkent)에 분교를 설립했고, 2022년 기준으로 총 238명의 학생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2018년에는 홍콩에 본교를 두고 있는 라이프로드신학교(HKLTS)에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에 캠퍼스를 열었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에서도 20명의 학생들이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또한 일찍이 2004년에는 순복음교회(FGC)와 우즈벡장로교회(PCU)가 공동으로 타슈켄트개신교신학교(TPS)를 세우기도 했다. 순복음교회의 페쉐로프(Alexander Pesherov) 목사는 정부 등록까지 30년이 걸린 만큼 이 학교를 통해 우즈베키스탄을 섬길 훌륭한 목회자들이 양성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신학교들이 우즈베키스탄 내에서 정식으로 허가받기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온라인 과정이나 해외 신학교의 위탁 과정을 통해 우즈벡 목회자들이 전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3) 고려인, 디아스포라 등을 통한 선교 지원
우즈베키스탄 종교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현재로서는 선교적 역량이 우즈벡인 자체로 부족하기 때문에 고려인과 디아스포라를 통한 선교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고려인은 1860년 이후 조선에서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해 농사를 짓고 살았던 이들의 후손이다. 1937년 스탈린의 한인 이주 명령에 따라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강제 이주됐다. 한국 재외동포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약 17만 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고려인들은 우즈벡인들에 비해 훨씬 복음화율이 높고, 2015년까지 고려인을 중심으로 한 교회도 약 130개 정도 존재하고 있다. 캐나다에 있는 프로비던스신학교(Providence Theological Seminary)의 선교학 교수인 맥닐(John McNeill) 박사는 한국 선교사들이 우즈벡어를 익히고 현지 문화를 습득해서 고려인들과 함께 사역한다면 우즈벡인들을 향한 선교의 발판이 놓아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2024년 11월에 사회적, 종교적 적대감을 촉발하는 외국인과 무국적자에 대한 통제와 단속을 강화하는 법률이 통과된 상황을 고려한다면,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은 우즈베키스탄의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자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 노동자로 나간 우즈벡인들도 이 땅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복음을 해외에서 접한 뒤 복음의 일꾼으로 준비되고 있다. 러시아의 노보시비르스크(Novosibirsk)에서 사역하는 OM선교회는 우즈벡인을 대상으로 교회 개척 사역을 진행해 왔고, 이주 노동자로 왔다가 복음을 접한 알렉(Alek, 가명)은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 자신이 살던 작은 마을에서 가정교회를 개척한 뒤로 10여 명의 교인들을 목회하고 있다.22 한국선교연구원(KRIM)의 "2024년 한국 선교사 현황"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 내에서 이주민 사역을 하는 선교사는 799명으로 조사됐고, 이 중에서 러시아인과 고려인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사는 36명으로 나타났다. 이를 근거로 우즈벡인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교회와 선교사들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2024년 기준) 해외에 살고 있는 우즈벡인들은 러시아(36.5%)와 카자흐스탄(24.2%)에 가장 많고, 19.1%는 유럽과 아시아에 있으며, 2023년 기준으로 한국에도 8만 8천 명이 살고 있다. 만일 해외 곳곳에서 우즈벡인들이 복음을 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이들은 우즈베키스탄 교회의 신실한 일꾼으로 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선교연구원(kriM) 파발마 플러스 2025 Vol.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