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키스탄 정부가 아동결혼을 제한하기 위한 획기적인 법안을 제정했다. 이 법은 이슬라마바드 수도권(Islamabad Capital Territory) 내에서 결혼 가능 최저 연령을 남녀 모두 18세로 명시하고 있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은 지난 5월 29일 밤 '2025년 아동결혼 제한법'에 공식 서명하며 이를 확정했다.
모닝스타뉴스(Morning Star News)에 따르면, 이번 법안은 강경 이슬람주의 단체들의 거센 반대 속에서도 통과됐다. 특히 파키스탄 이슬람 율법자문기구(Council of Islamic Ideology, CII)는 18세 미만의 결혼을 강간으로 간주하는 조항이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법은 18세 미만의 남녀를 모두 '아동'으로 정의하며, 아동 간 혹은 성인과 아동 간의 결혼을 금지한다. 결혼을 집행하는 이슬람 결혼 등록자(Nikah registrar)는 혼인 당사자의 나이를 국가데이터베이스등록청(NADRA)이 발급한 주민등록증(CNIC)으로 확인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1년의 징역형과 10만 파키스탄 루피(약 355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성인 남성이 미성년 여성과 결혼할 경우 최대 3년의 중형이 선고될 수 있다. 또한 법은 "18세 미만 아동과의 혼인 동거는 법적으로 강간으로 간주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 법안을 주도한 파키스탄 인민당(PPP) 소속 셰리 레만 상원의원은 이를 여성과 아동의 권리 보호를 위한 중대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녀는 하원을 5월 16일 통과한 법안을 19일 상원에 상정했으며, 법안 제정 후 X(구 트위터)를 통해 "이 법은 젊은 여성들의 교육과 건강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자르다리 대통령이 종교 세력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법안에 서명한 것은 개혁의 상징이라며, "이 법은 단순한 제도를 넘어 우리 소녀들이 교육과 건강, 더 나은 삶을 누릴 권리를 가진 존재임을 사회가 인정하는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보수 이슬람 정당 자미아툴 울레마에이슬람-파즐(JUI-F) 소속의 CII 위원 잘랄루딘은 자르다리 대통령에게 법안 서명을 말릴 것을 촉구하며, "국회는 꾸란과 순나 위에 있지 않다"고 반발했다. 그는 이 법이 샤리아와 전통적 가치관에 반하는 것이며, CII에 법안이 회람되지 않고 은밀하게 통과된 점은 서방의 "가정 파괴 음모"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파키스탄 인권위원회(HRCP)는 성명을 통해 CII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HRCP는 "아동 보호를 종교와 충돌되는 개념으로 여기는 시각은 이슬람 원칙을 심각하게 왜곡한 것이며, 아동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가는 아동의 복지를 위해 조혼을 금지할 책임이 있으며, 조혼은 건강 악화, 교육 기회 박탈, 성차별 고착과 직결된다"며 법안의 조속한 시행을 촉구했다.
기독교계도 이 법안을 크게 환영했다. 기독교 인권운동가들은 이번 법이 미성년 기독교 소녀들이 강제로 이슬람으로 개종당하고 납치된 뒤 성폭행당하는 사례를 줄이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독교 변호사 라자르 알라 라카는 "이슬라마바드의 법 제정은 펀자브주 등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 법안이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며, "이는 기독교 소녀들이 강제 개종과 성범죄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펀자브주 의회에 제출된 아동결혼 금지법이 조만간 다시 표결에 오를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재 펀자브주에서는 여아의 법적 결혼 연령이 여전히 16세에 머물고 있다. 2024년 개정된 기독교 결혼법은 기독교인에 한해 결혼 가능 연령을 18세로 올렸지만, 이슬람으로 개종한 경우에는 샤리아에 따라 더 어린 나이에도 결혼이 가능하다. 모닝스타뉴스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서는 10세 전후의 소녀들이 납치되어 이슬람으로 강제 개종당한 뒤, 결혼이라는 명목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납치된 소녀들은 종종 법정에서 가해자를 위한 허위 진술을 강요받으며, 재판부는 명백한 연령 증명 서류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소녀들을 '합법적 배우자'로 간주해 가해자에게 되돌려보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한편 파키스탄은 인구의 96%가 무슬림이며, 국제 기독교 박해 감시단체 오픈도어선교회(Open Doors)가 발표한 2025년 세계 박해 지수에서 기독교인이 살기 가장 어려운 국가 8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