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의 협상 태도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9일, 러시아가 준비했다는 평화 각서를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은 데 대해 "그들이 일주일 넘게 준비했다는 각서조차 아무도 본 적이 없다"고 지적하며 러시아 측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미국과 러시아 양측에 자국의 입장을 정리한 공식 문서를 전달한 상태다. 반면 러시아는 오는 6월 2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개최될 예정인 2차 협상 당일에야 각서를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러시아의 이런 태도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28일 "협상 출국 전까지 최소한 4일은 남아 있다. 그 시간 내에 우리에게 문서를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안드리 시비하 외무장관 역시 "월요일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각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29일 "우리는 6월 2일 이스탄불에서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으나, 아직 우크라이나 측의 어떠한 공식적인 응답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협상 자체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실제 회담이 성사되어야만 자국의 입장을 담은 각서를 제시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이는 일종의 외교적 역공으로 해석된다. 우크라이나 측이 "러시아 문서의 내용을 본 뒤 협상 참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러시아가 이를 빌미 삼아 조건부 공개 전략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는 아직 각서 원문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통해 그 주요 내용을 구두로 설명했다. 라브로프 장관에 따르면, 문서의 핵심은 우크라이나의 영구 중립화 개헌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 중단 등, 러시아가 주장해온 갈등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데 있다. 여기에 더해 크름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의 4개 점령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토 주권을 인정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지난 2022년 이스탄불 협상 당시 요구에 더해, 러시아의 실질적 영토 확장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이스탄불 플러스' 안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시에도 러시아의 일방적 요구에 협상이 무산된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도 양측의 입장 차는 좁혀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은 이번 협상 자리에 무게를 실으며 조율자 역할을 하고 있다. 키스 켈로그 미국의 러시아·우크라이나 특사는 이날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독일, 프랑스, 영국의 안보보좌관들이 6월 2일 이스탄불에서 회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 측이 협상 조건으로 내세운 '각서 사전 공개' 요구에 대해 "그런 말은 하지 말고, 귀국이 협상에 진지하다는 것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