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3년 만에 평화회담 재개를 시도했으나, 양측의 극심한 신경전과 정상들의 불참으로 회담은 하루 연기됐다. 15일, 당초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러-우 회담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불참 결정과 대표단 급 격하에 따른 우크라이나의 반발로 무산 위기에 처했으나, 결국 하루 연기되는 선에서 다시 조정됐다.
이번 회담은 2022년 3월 회담이 중단된 이후 약 3년 만에 공식적으로 양측이 한 자리에 앉는 자리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러시아가 대통령 대신 차관급 대표단을 파견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됐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푸틴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 대표단과의 접촉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실제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파견한 대표단을 '권한 없는 가짜 대표단'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러시아가 진정으로 평화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측은 회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러시아 대표단은 이스탄불 현지에서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4시)부터 예정된 회담 시작 시각 이후에도 장시간 기다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러시아 관영 언론은 대표단과 언론인들이 14시간 넘게 우크라이나 측을 기다렸다고 전하며, 실시간으로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당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약 3시간가량 비공식 회담을 진행했고, 이후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하면서 회담은 가까스로 성사될 수 있는 가능성을 되살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과 튀르키예 고위급 인사, 그리고 전쟁 종식을 위한 최소한의 첫걸음인 휴전을 고려해 대표단을 이스탄불에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루스템 우메로우 국방장관을 수석대표로 하여 16일 현지에 도착할 예정이며, 회담은 하루 뒤로 미뤄졌다.
러시아는 이날 회담이 무산된 가운데, 자국 대표단이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과 만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번에 러시아 측 대표단은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 보좌관을 중심으로 외무차관, 국방차관, 정보총국장이 포함된 '차관급' 인사들로 구성됐다. 2022년 회담 당시에도 협상단장을 맡았던 메딘스키가 이번에도 수석대표로 나섰으며, 예상됐던 라브로프 외무장관이나 우샤코프 외교안보보좌관은 불참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측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외무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 최고위 인사들로 대표단을 구성했으나, 러시아 대표단의 급이 낮다는 점을 고려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직접 이스탄불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대신 우메로우 국방장관이 수석대표로 참석한다.
한편, 미국 역시 회담 현장에 고위급 인사를 파견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나토 비공식 외무장관 회의 참석차 튀르키예 안탈리아를 방문 중이며, 미국 측에서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와의 외교채널을 담당하고 있는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와 키스 켈로그 우·러특사도 현지에 합류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이번 회담의 성격을 2022년 3월 이스탄불 회담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메딘스키 보좌관은 "우리는 이번 회담이 우크라이나 측에 의해 중단된 평화 프로세스의 연속이라고 본다"며 "갈등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고 장기적인 평화를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제시할 어떤 안에도 영토 포기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앙카라 회담 이후 "우리는 점령지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혀, 협상 타결 가능성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미국은 이번 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이며, 결국은 미러 정상 간의 직접 대화가 유일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과 내가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필요하다면 회담을 위해 튀르키예로 갈 의향도 내비쳤다.
루비오 장관 역시 나토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스탄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큰 기대는 없다"고 언급하면서도, "내일 러시아가 휴전에 동의하고 진지한 협상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회담은 정상회담 부재, 대표단 격차, 양국의 평화 해석 차이 등 복합적 문제 속에서 가까스로 재개를 앞두고 있다. 실제 회담이 열리더라도 본격적인 타결 국면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