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을 계기로 약 두 달 만에 다시 만났다. 두 정상은 지난 2월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거친 언쟁 끝에 회담이 결렬된 이후 얼굴을 붉힌 채 헤어진 바 있다. 이번 회동은 교황 장례식이 열리는 바티칸에서 이루어졌으며, 짧지만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26일 AP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 미사 전, 약 15분간 별도로 회동했다. 양국 정상이 직접 얼굴을 맞댄 것은 지난 2월 28일 백악관 정상회담 결렬 이후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을 통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메시지를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은 지난 며칠 동안 민간 지역과 도시, 마을에 미사일을 발사할 이유가 없었다"며 "푸틴은 전쟁을 중단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푸틴에게 금융 제재나 2차 제재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응을 해야 할 시점이 됐다"며, "너무 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여기서 언급된 2차 제재는 러시아와 거래하는 제3국이나 제3자에 대해서도 미국이 제재를 가하는 조치를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최근 들어 러시아에 다소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던 그가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교황 장례식에서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다잡았다"며, "젤렌스키 대통령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대화를 나눈 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이 평화를 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또한 회동 직후 SNS 플랫폼 X(구 트위터)를 통해 회동 소식을 알렸다. 그는 "좋은 만남이었다. 단둘이서 많은 것을 논의했다"며, "이번 논의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휴전 및 또 다른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지속적인 평화를 이룬다면, 오늘의 만남은 역사적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백악관의 스티븐 청 공보국장도 이번 만남에 대해 "두 정상이 비공개로 만나 매우 생산적인 논의를 나눴다"고 밝혔다. 다만 회동의 구체적인 논의 내용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만남은 성 베드로 대성당 경내에서 이루어졌으며, 사진을 통해 배석자 없이 양 정상이 마주앉아 대화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AP통신은 이 장면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화와 대화를 지속적으로 촉구해온 것을 고려할 때, 두 정상이 교황 장례식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한 것은 교황의 뜻을 기리는 적절한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회동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도 4자 회담을 가졌다. 전날인 25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을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은 매우 가까워졌다. 이제 최고위급 회담을 통해 마무리할 때가 됐다"고 언급하며 조기 종전 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낸 바 있다. 

한편, 미국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는 같은 날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면담을 가졌다. 이에 대해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외교정책보좌관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표 간 직접 협상 가능성을 논의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