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기독교 유적지를 파괴하고, 아르메니아 종교의 존재를 부인하는 시도를 ‘문화적 대량 학살’로 규정하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유럽법과정의센터(European Centre for Law and Justice, ECLJ)의 보고서는 “교회, 수도원, 하치카르[십자가 석비) 및 아르메니아 시민의 신앙과 문화를 알리는 다른 문화 유산”이 말살된 사례들을 나열했다.
아제르바이잔은 2차 카라바흐 전쟁(2020년 9월부터 11월까지) 이후 나고르노 지역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6월에 발표된 보고서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의 아르메니아 기독교 유산의 조직적 말살’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수십 개의 아르메니아 기독교 유적지가 파괴되거나 훼손되었으며,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아제르바이잔의 통제 하에 있는 유적지는 500곳이며, 6000개의 아르메니아 기념물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유적지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위성 감시를 통해 파괴된 사실이 국제 관측자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손상되거나 파괴된 교회로는 메그레토츠 성모 마리아 교회, 티그라나케르트의 7세기 반카사르 교회, 스테파나케르의 성모 마리아 성 요한 대성당, 슈시의 가잔체초츠 대성당이 있으며, 이들 교회에서는 “건물 문에 있던 독특한 천사, 교회의 돔, 대성당의 십자가를 포함한 여러 종교적 상징들이 훼손되었다”고 명시되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복원의 명목으로 1279년에 세워진 카르바차르의 차르 마을의 수르브 사르기스 교회를 파괴했다. 이 보고서는 “아제르바이잔의 이 교회 복원 시도는 종교적 상징들을 파괴하고, 큰 철조망으로 시야를 차단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또한, 같은 교회 부지에 위치한 기독교 예술 작품과 아르메니아어 비문이 장식된 두 개의 역사적 석판도 파괴되었다. 보고서는 “이러한 파괴는 아르메니아의 고유한 유산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아르메니아 기원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제거했다”고 전했다.
다른 사례로는 2022년 3월 모크흐레네스의 18세기에 지어진 하드루트의 성 사르기스 교회 건물이 철거된 사건이 있으며, 아제르바이잔인들이 토지를 완전히 개간한 후 교회 부지 위에 새로운 건물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밖에 파괴되거나 손상된 다른 묘지와 성지로는 아크나그비우르 인근의 구제 타흐 묘지, 코하 성지, 바즈게나센 인근의 묘지, 가잔체초츠 묘지, 슈시의 예레반 게이트 묘지가 있다.
보고서는 “1950년대에 파괴된 중세 아르메니아 교회 건물과 묘지의 돌들이 자르 학교와 치라그 학교 건설에 사용되었다”고 지적했다. 이 돌들에는 하치카르 장식 석조 유물과 과거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파괴를 피해 살아남은 비석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스테파나게르트 시 인근의 언덕에 위치한 십자가 기념물이 철거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 기념물은 높이 50미터로 아르메니아 군인들을 기리는 기념물이며,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은 십자가였다. 아제르바이잔군은 작년 9월에 이 십자가를 철거했다.
보고서는 “완전한 문화적 말살을 위해 아제르바이잔은 단순히 아르메니아 유산을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존재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고 했다.
ECLJ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아르메니아 기독교 유적지가 코카서스 알바니아에 기원이며, 아르메니아인들이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원주민이 아니라고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
보고서는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가 19세기에 이 지역을 장악했을 때, 이 대북방 강대국이 아르메니아인들의 대규모 남코카서스 이주를 촉진했다고 주장한다”며 “이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아르메니아 성직자들이 고대 코카서스 알바니아 교회에 가짜 아르메니아 비문을 추가하고, 건축 양식을 바꾸어 아르메니아식으로 보이게 했다고 말한다”고 했다.
ECLJ는 이러한 주장이 “명백히 거짓이며 악의적”이라고 지적하며, 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원주민을 포함한 아르메니아계 유산의 말살을 시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