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백 교회의 은퇴 목사 릭 워렌은 그의 책[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하나님의 부흥을 파도에 비교했습니다. 파도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것처럼 부흥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파도가 밀려오듯이 부흥은 하나님이 몰고 오십니다. 그러나, 파도가 올 때 모든 사람이 파도를 타는 것이 아니듯, 부흥이 올 때 부흥을 다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파도를 타지 못하면 파도에 치이듯이, 부흥이 올 때, 부흥을 타지 않으면 부흥은 심판으로 다가옵니다. 마치 예수님의 재림이 기다리던 크리스천에게는 구원이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인 것과 같습니다.
얼마 전 우리 베델교회 목사님들과 제자훈련 워크숍을 위해서 인근에 1박 2일로 수양회를 다녀오면서 이른 아침 바닷가를 산보하며 서핑하는 분들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몇 가지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 서핑하는 모든 사람들이 온몸을 덮는 까만 수영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둘째, 해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가 아니라, 멀리서 오는 파도를 타기 위해 깊은 바다로 나가 파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셋째, 파도를 타기 위해서 서핑보드에 올라타는 타이밍도 맞아야 했습니다. 타이밍을 놓치면 파도에 파묻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목격한 것은 서핑보드와 수영하는 자의 발이 끈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파도에 휩쓸렸을 때 서핑보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대각성운동의 주역이었던 조나단 에드워즈가 사역하던 뉴잉글랜드에서 목회를 시작한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그의 책과 부흥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그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부흥을 책에서만 읽는 자가 아니라, 목회의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싶은 소원이 생겼습니다. 지난 30여 년을 목회하면서 왜 이런 부흥이 오지 않을까 질문을 던졌는데, 파도와 같은 하나님의 부흥은 끊임없이 계속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단지 그 파도를 타지 않아서 부흥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해변에 부딪히는 파도를 보면서 파도의 위용은 느꼈지만, 그 파도를 타기 위해서 한 번도 깊은 바다로 헤엄쳐 나간 적이 없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깊은 바다로 헤엄쳐 가는 서퍼들을 보면서 파도를 구경하는 사람과 파도를 타는 사람의 차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부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서핑보드를 타고 깊은 바다로 나가야 하듯, 기도의 깊이를 더하며 파도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타이밍을 맞춰 서핑보드에 올라타야 하듯, 교회안에서 온 성도들이 순종하여 함께 결집하는 기도의 타이밍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타이밍을 놓쳐 파도에 휩쓸려도 다시 부흥의 파도를 타기 위해 서핑보드와 발목이 묶여 있듯이, 그 끈은 결코 끊어지면 안 되는 주일예배의 끈입니다. 우리 같이 역사책의 부흥만 부러워하지 말고, 부흥의 파도를 향해 헤엄쳐 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