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문 목사 (달라스 생명샘교회)
(Photo : ) 안광문 목사와 함께 하는 신학산책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모인 사람들 간의 영적 교제와 참여를 의미합니다. 코이노니아는 하나님 안에서 짐을 나누고 관계를 형성하는 교회 공동체로서의 본질에 대해서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나는 초대 교회의 코이노니아는 수직적인 교제로서 의미와 함께 수평적인 교제로서의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초대 교회는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과 수직적인 교통을 가졌고, 또한 지체들 간 나눔과 섬김을 통해서 수평적인 교제를 실천하였습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Calvin은 '성도의 교통'이야말로 교회의 본질이라고 합니다. Howard Snyder는 이러한 코이노니아를 성령의 코이노니아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첫째, 성령의 코이노니아는 성령께서 주는 성도 간의 교제입니다. 둘째, 제자들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의 교제 안에 코이노니아의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셋째, 성령의 코이노니아는 초대 교회의 교제에서도 나타납니다. 넷째, 성령의 코이노니아는 하늘에서 영원한 것을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코이노니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교제 및 상호 교통하심과 비슷합니다.

            사도행전 2장의 예루살렘 교회 이래로 예배는 교회 공동체의 중심이었고, 공동체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송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는 언약을 했습니다. 교회가 박해를 받던 시대에는 교회 건물이 중요하지 않았지만 기독교 공인 후에 성전 건물 중심의 제도적인 교회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는 예배를 사제주의화하기 시작하였고, 사제주의화는 예배 공동체로서 기능을 잃어버리게 하였습니다.  Durnbaugh는 종교개혁은 교황 중심에서 말씀 중심으로 돌려놓았지만, Luther의 종교개혁은 구원론에만 집중했고 교회론에 관한 개혁은 무시됐다고 주장합니다. 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에 반해 공동체를 강조하는 재침례파, 침례교, 회중 교회,

퀘이커는 복잡한 예배 형식에서 벗어나서 설교, 찬송, 신앙고백 등 기본적인 예배 요소만 남겨 놓았다고 주장합니다. Howard Snyder에 의하면, 교회는 교회의 체제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만 몰두한 나머지 성령의 인도로 인한 생명력과 역동성을 떨어지게 했고 결과적으로 진정한 교제와 섬김보다는 조직을 보존하기 위한 활동으로 변질하고 말았습니다.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기관이 아니라 유기체입니다. Snyder는 교회는 단순히 개인들이 모인 모임이 아니라 서로 간에 없어서는 안 되는 공동체성을 가지는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통해서 하나로 묶이는 공동체가 되고, 하나님께 주도권을 두는 은사 중심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교회를 제도적으로 조직화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교회가 제도화되면, 교회의 본질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Hodge는 교회의 유형적 조직은 교회의 본질이 아니라 부수적 차원이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 많은 제도적 교회에서 세상의 방법을 통해서 교회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교회 사역에 있어 은사를 강조하고 은사에 따른 교회 사역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성경적입니다. 교회를 성령의 은사 공동체로 보는 관점은 성령 안에서 상호관계와 성도들 간 상호 의존성 같은 사도행전 2장 초대 교회에서 볼 수 있는 공동체적 특징과도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동체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공동체이어야 할까요? 에베소서 2장에서는 이러한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의 가족 (οἰκεῖοι τοῦ Θεοῦ)'이라고 말씀합니다.     - 달라스 생명샘 교회 안광문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