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 안용준 변호사 photo by 기독일보
(Photo : ) 안용준 변호사 photo by 기독일보

 

지금은 "순교의 시대"이다.

현재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는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사느냐 죽느냐"의  절대절명의 순간을 매일 맞이하고 있다.  전세계 핍박 받는 성도들의 지수를 발표하고, 오픈도어선교회의 보고서(https://www.opendoors.org/)에 의하면, 2022년 지난해 5,600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믿음 때문에 순교하였고, 2,100개 이상의 교회들이 공격받거나 폐쇄되었다.  기독교인 124,000명 이상이 신앙을 이유로 강제로 추방당했고, 15,000여 명이 난민이 됐다. 그리고, 세계 기독교 박해지수(World Watch List from Open Door Ministry)의 가장 위험하고 기독교 박해가 심각한 상위 50개국 중 북한이 다시 1위에 올랐다.  분명한 지금의 트렌드는 전세계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주님이 미리 예고하신 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요한복음 15:20) 일이다.   우리는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 나가고 있는 기독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와 삶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의 우리의 신앙은 지금 어떠한가?

그들과 비교하여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가?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말씀으로 점검해야 한다.  우리처럼, 신앙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보장된 미국에서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갈 것인가? 온라인으로 예배할 것인가?'와 같은 사치스러운 선택들로 고민을 할 상황이 아니다.  멋진 찬양을 관람하고, 복음보다는 덕담 같은 설교를 듣고, 헌신보다는 이 교회 저 교회로 순례하고, 생업에 필요한 인맥과 지식도 쌓고, 비슷한 부류의 정서적 유익을 구하는데 우선인 우리의 세속적 신앙은 그들이 보기에 '신앙'이고 말하기도 어렵다.  계시록의 권위자 신학자 G.K Beale(RTS, Dallas)는 미국교회의 현실을 점점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변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즉 모든 것을 가졌다고 착각하며, 자신들과 자신들의 도시를 자랑하던, 주님의 나라에 전혀 유익이 없는 차갑지도(생수용), 뜨겁지도(의료용) 않는 토해내기 직전의 무익한 미지근한 신앙이 오늘날 미국 교회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 "계시록 3: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만약 미국에서도 핍박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것인가?

과연 나는 '믿음' 때문에 죽음까지도 불사할 수 있을까? 

내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복음을 전파할 때; 만약 정부로부터, 사회로부터, 디지털로, 공격과 핍박을 받게 되고, 때로는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되는 상황이 일어난다면? 혹 반대로, 만약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속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신자처럼 살아가는 것만이 오직 살길이라면?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10: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믿음의 공개성과 신실성을 말씀하셨다.  '시인'이란 나의 믿음의 대상을 인정하는 것이다.  구원의 하나님과, 성자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나의 왕으로 고백하는 신앙이다.   반면, 주님의 경고처럼, 가짜 신앙은 '주여, 주여' 라고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행실로는 상황에 따라 주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소금의 맛을 잃지 않는 신앙

미국의 현실적 상황은 세속주의, 팬데믹으로 인한 변화, 후기 기독교 현상들로  밝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고백적 신앙으로 힘을 모은다면, 내적 미국교회에 도전과 세계 선교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리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떼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고 경고하셨다.  우리가 가진 소금의 정체성은 곧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핍박에서도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가는 것이다(마가복음 8:34).

역대의 믿음의 선조들과 현재 핍박 중에도 믿음을 지키는 우리의 동료 성도들을 본받아, 우리도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을 믿고, 시인하는 삶을 살자!  말과 행실에 있어 주님이 행하신 발자취를 따라가는 삶을 살며, 내가 있는 그 곳에서 '빛과 소금'이 되자!

[디모데 후서 2장 ]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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