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개막된 2023 제8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VIII) 가 3박 4일간의 일정을 마치며 '2023 한국선교 평창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 한국 선교계가 한국교회와 한국선교의 전환기를 맞아 과거를 성찰하고, 급변하는 한국교회와 선교 환경 속에서 미래 방향과 도전 과제들을 담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주최한 이번 세계선교전략회의에는 목회자, 선교사, 해외 초청인사, 선교단체와 여성·평신도 리더 등 선교 전문가 5백여 명이 참여해 주제에 따른 열띤 토의와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 과정을 통해 향후 선교 방향성과 과제에 대한 합의 도출이 이루어졌고 폐회에 앞서 발표된 선언문은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선언문에서 "한국교회에 복음이 선포된 직후부터 시작된 한국선교는 지난 수십 년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다"라고 전제한 후 "이는 그분의 목적에 참여하는 특권을 누린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다. 한국교회가 선교 영역에서 이룬 모든 성과에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있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반성과 함께 회개할 점도 지적됐다. "짧은 기간에 급속히 성장한 한국선교가 선교지의 문화를 이해하고 섬기는 자세로 나아가기보다는 현지 문화를 존중하지 않은 점"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과거의 일방적인 선교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며 회개한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선언문에서 한국교회의 선교가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그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과 선교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기인한 것이지만 과거 서구국가들의 선교방식을 답습하는 데서 더 나아가 새로운 선교에 눈을 뜰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게 됐다는 뜻이다. 결국, 앞으로의 선교는 일방통행이 아닌 세계 모든 나라가 함께 참여하는 다중심적, 다방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과 방법에 있어서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복음을 나누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향후 과제로 제시했다.

한국교회 선교 전문가들이 이처럼 과거의 선교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방향성을 과제로 설정한 건 시사해 주는 게 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천편일률적으로 추진해 온 선교방식이 벽에 부딪혔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지금까지 해오던 선교방식을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적극적으로 개선을 모색할 때라는 것이다. 즉 완전히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음을 의미한다.

한국교회 선교 전문가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KWMA 대표회장인 주승중 목사가 성경강해 시간에 전한 메시지에도 짙게 묻어났다. 주 목사는 '담을 허무는 삶을 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아무리 선교 전략을 잘 세워도 막힌 담을 허물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며 "담을 허무는 선교적 삶을 살기 위해 먼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 목사의 이날 메시지는 온 세상을 화목케 하는 직분을 받은 우리가 먼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종류의 담'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우리 안의 담을 허물지 못하면 선교적 삶을 살 수 없고, 나아가 선교 현장에서 성육신적 태도로 우리의 삶을 겸손하게 내려놓고 내가 먼저 경계를 넘어가는 선교사역을 감당하긴 더더욱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국교회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우리 안의 담'은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 선교를 '마차 경주'를 하듯 순위 경쟁에 몰입한 건 당장 무너뜨려야 할 담에 속한다고 하겠다.

한국교회는 지금도 교단은 교단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어디에 몇 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는 수치를 성과로 드러내는 걸 큰 자랑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한 선교지에 여러 교단 또는 교회, 선교단체 등이 파송한 선교사들이 몰리는 과잉 중복 과열 현상이 선교지마다 큰 후유증을 낳았다. 이를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여기는 시각도 있지만, 단적으로 선교에 등수를 매기는 성과주의의 폐단이라고밖에 달리 설명이 안 된다.

한국은 선교를 받은 나라에서 단기간에 선교하는 나라로 전환한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다. 불과 130여 년 전에 미국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받은 나라가 한 세기도 안 돼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했다는 사실은 세계 선교역사에 기록될만한 자랑스러운 기록임이 틀림없다.

사실 한국교회는 미국 선교사들이 한반도 복음 선교를 위해 취한 선교지 분할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작 자신들의 선교지엔 이를 배척하고 과열 경쟁으로 일관함으로써 큰 벽에 부딪힌 측면이 있다. 물론 당시 미 남북장로교와 감리회 등 불과 몇 개의 교단과 지금 한국교회의 사정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교회 역시 당시엔 교파주의가 극심했다.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 역시 그런 배경이 있음에도 선교지인 한국에 와 초교파적 선교 협력을 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당면한 선교 과제가 과열 경쟁에 따른 갈등과 선교비 낭비 문제가 다일 순 없다. 현지인 양성 등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보내는 선교를 위해 드려진 성도들의 헌금과 교회의 인적·물적 자원이 온전히 선교 동력으로 쓰이기 위해서라도 교단과 선교단체, 선교 전문가들이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내 안의 담을 허물고 비로소 하나님의 선교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