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저출산 문제가 '인구절벽'을 넘어 국가소멸 우려가 나올 정도로 위기 상황에 몰리자 직접 진두지휘에 나선 것인데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지 주목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대통령 직속기구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한 게 2015년 박근혜 대통령 이후 7년만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를 심각한 위기로 몰고 가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직속기구를 만들어 놓고 실상은 시늉만 한 셈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8명으로 추락했다. 이 수치는 여성 한 명이 평생 아기를 한명도 채 안 낳는다는 수치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꼴찌다. 이대로 가다간 나라를 지탱해 줄 국민이 자연 소멸돼 국가 체계가 무너지고 말 것이란 우려가 정말 눈앞의 현실로 닥칠 수도 있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에 해마다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부어왔다.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5년간 쓴 돈이 무려 280조원이다. 그런데도 올해는 0.7명 선마저 무너질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형편이다. 실패도 이런 실패가 없다.

저출산 극복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도 출산율이 해마다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건 정책이 잘못됐거나 국민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는 뜻이다. 제 아무리 좋은 대책이라도 가임 여성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소용없다.

윤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즐거움과 자아실현의 목표가 만족되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한다는 목표 하에 과감한 대책을 마련하고 집중 투자하라"고 지시했다. 시급한 저출산 대책에 여러 가지를 함축해 지시한 건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의 목표는 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 환경 조성에 있다. △촘촘하고 질 높은 돌봄과 교육 △일하는 부모에게 아이와의 시간을 △가족친화적 주거서비스 △양육비용 부담 경감 △건강한 아이 행복한 부모 등 위원회가 제시한 5대 핵심 과제의 성패가 여기에 달려있다.

문재인 정부 때도 저출산 대책은 있었다. 그러나 대책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이상론에 가까워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윤 정부가 그걸 의식해 보다 구체화된 핵심 과제를 제시한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실천에 달렸다.

아기 낳기를 꺼리는 건 이제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 할 수 없다. 사회적 분위기가 이미 개인의 의지를 덮어버린 게 현실이다. 아기를 낳아서 키우기 힘든 사회 환경적인 무거운 짐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 영영 풀 수 없게 된다.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국가와 사회가 해결하는 것이 관건인 셈이다.

정부는 이제까지 아기를 '낳기만 하면 나라가 키워 준다'는 식으로 출산 장려정책을 펴 왔다. 그런데 정부의 솔깃한 제안에 혹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은 국가가 아기를 키워주기보다 내가 낳아서 키울 수 있는 여건을 국가가 마련해 주길 바라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는 국가가 사활을 걸고 총력을 기울여야 할 문제이지만 효과를 거두려면 사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종교계는 출산·육아·돌봄에 있어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 환경을 바꾸는 데 앞장 서야 한다.

교계가 지난 2022년 8월에 종교·학계·시민사회 전문가들로 '저출산대책국민운동본부'를 출범하고 인구절벽문제 극복을 위한 범국민운동을 전개해 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국교회가 이 문제를 사회·선교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영·유아 돌봄 등에 적극 나선다면 정부의 무거운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해줄 수 있다.

그런데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와 사회·종교계 모두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는 상황에서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되는 게 바로 낙태 문제다. 잉태한 생명을 인위적으로 앗아가는 낙태를 방임하면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자체가 모순이고 자가당착이다.

지난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우리 사회엔 낙태가 횡행하고 있다. 대체 입법을 마련해야 할 국회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보고된 낙태 건수가 연간 100만 건을 넘는다. 한 해 태어나는 신생아 수가 25만 명을 밑도는데 낙태로 죽는 태아가 4배에 달한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나라가가 '낙태공화국'이 된 건 낙태를 처벌하던 법이 헌재 결정으로 효력을 상실한 데 있다. 그러나 처벌이 두려워 몰래 숨어서 하던 낙태가 음지에서 양지로 바뀌면서 태아 살해에 대한 양심의 경각심마저 허물어진 게 더 심각한 문제다.

임신한 여성이 낙태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건 개인의 특수한 처지 뿐 아니라 여러 사회적인 환경 요인에 기인한다. 국가와 사회, 특히 교회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그 어떤 저출산 대책도 백약이 무효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태아였다.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이 엄마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건강하게 태어나게 하는 게 우리 모두의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