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보다 젊은 81세 회장 

"우리 인생은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알지 못하도록 창조됐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살게 하시려는 뜻이 아닐까."

맨손으로 시작해 한국 가전산업의 전설로 평가받는 (주)동국성신 기업을 일군 강국창 회장(서울수정교회 명예장로)의 말이다. 그는 올해 81세로 웬만한 사람이면 이미 한참 전에 은퇴했을 나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청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아침 6시부터 전화영어공부를 하며, 골프와 탁구, 걷기, 근력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한다. 그 후에는 조찬 모임을 갖고 출근해 퇴근 때까지 회사 일에 매진하며, 퇴근 후에는 또다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축복'이란 사실을 깨달았기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고.

1943년 강원도 태백의 탄광촌에서 태어나 전 세계에 1,6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주)동국성신, (주)가나안전자정밀, 동국개발(스프링데일 골프장)을 세운 강 회장의 성실한 삶은 한국 산업의 역사이기도 하다. 사업만 돌보기에도 눈코 뜰 새 없지만,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인구감소대책 국민운동본부를 세워 다음세대 회복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회고록 1막 '실패'

강 회장은 소위 말하는 흙수저다. 광산과밖에 없던 공업고등학교를 다니다가 1961년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한 뒤 사업을 시작, 지금에 이르렀다. 장밋빛 성공신화로 보일 법도 하지만, 그의 회고록 1막은 '실패'로 시작된다.

한창 잘나가던 사업에서 '정치'로 곁눈질을 하던 찰나 믿기지 않는 일이 벌여졌다. 믿고 재정을 맡겼던 임원이 어음을 남발하고 사라진 것이었다. 공장은 가동을 멈췄고, 결국 회사는 부도가 났다. 그는 "불과 하루 전까지 희망에 찬 발걸음이 패잔병이 된 듯했다. 집 앞에는 사복 형사들이 서 있었다. 잡히면 그대로 끝. 그렇게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했다"고 했다.

배신자에 대한 미움과 분노,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고독. 인생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다는 절망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실패의 원인을 따져봤다. "근본적인 원인은 '나'였다. 승리감에 취해 교만했다. 무한 경쟁의 기업 세계에서 성공의 기쁨에 취해 개발은 느슨해지고 명예욕, 물욕에 현혹되었고, 가장 무섭다는 정치 바람이 든 것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일은 원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주)동국성신 강국창 회장
▲강국창 회장은 소위 말하는 흙수저다. 광산과밖에 없던 공업고등학교를 다니다가 1961년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한 뒤 사업을 시작, 지금에 이르렀다. 장밋빛 성공신화로 보일 법도 하지만, 그의 회고록 1막은 '실패'로 시작된다. ⓒ송경호 기자

힙겹게 지내던 중, 한 친구가 그에게 교회에 나가 볼 것을 권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회란 한가한 사람들의 사교 모임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그였다. 친구는 "너 솔직히 지금 아무도 없잖아.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계시는 분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기도원까지 가게 됐고, 자기도 모르게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이 나를 사로잡았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보이지 않는 분이 뒤에 계시다는 든든함은 실패를 극복할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니 일어설 꿈도 생기기 시작했다. 초심으로 중소기업의 생존을 연구했고, 대기업에 비해 정보력과 마케팅, 연구 개발, 인재 등용 면에서 뒤처지기에, 정확성보다는 신속하게 시행하고 문제점을 고쳐나가며 시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형식주의를 타파하고 효율적 시스템을 만들었다. 사훈은 '신속·정확·협동'으로 정하고, 경영 방침도 '자율·투명·공개경영'으로, 행동강령도 '낭비 제거·간편 행정·혁신과 창의'로 바꾸었다.

새벽은 나와 주님만의 시간

"실패는 빈손이 아니다. 반드시 건질 것이 있는 법이다"는 살아 있는 교훈을 바탕으로 기도하며 일을 시작하니, 막막하기만 했던 재기의 길이 열렸다. 다시 정한 경영방침에 따라 공장이 가동되고 독창적 부품 개발을 시작으로 기업은 불 일 듯이 일어섰다. 인천과 광주, 창원과 제주 등 국내 4개 지역과 중국, 베트남, 멕시코, 폴란드 등 해외 지역에 공장을 운영하는 꽤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자리매감했다.

아무리 바빠도 새벽은 포기할 수 없는 그와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이었다. 그는 "만물이 잠들어 있는 고요한 시간에 조용히 깨어 예배하다 보면 주님과 친밀감을 느낀다. 말씀을 묵상하다 깨달은 지혜가 삶의 아이디어가 될 때가 많다"고 했다. 허름한 창고에서 다시 출발해 하나님의 은혜로 공장을 세운 날, 목사님을 모시고 창립예배를 드리며 '주님이 주인이십니다'라고 고백했고, 그렇게 시작된 '월 정기예배'는 40년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승자는 힘이 아닌 빠른 사람

(주)동국성신은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상기하며 새로움을 추구하는 '신경영'을 해나가고 있다. 소단위 팀을 편성해 자율평가를 하는 차별화된 공장을 운영하고, 그룹 통신망을 구축해 전자결제 시스템을 만들어 효율적 행정을 유지하고 있다. 제조업 외에도 친환경 녹색경영을 실행하는 제주 스프링데일 골프&리조트 사업에 도전해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

"실패했을 때 주저앉느냐 일어서느냐가 그 사람의 미래와 행복을 좌우한다. 다시 일어설 때 잡고 설 버팀목이 있으면 그 인생은 최고가 된다. 나에게 버팀목은 보이지 않는 힘, 하나님이었다. 그 무한한 능력에 의지함으로 담대히 이겨나갈 수 있었다. 흙수저인 내가 금수저가 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렸고, 넘어졌을 때 그 힘이 나를 일으켜 주었다."

(주)동국성신 강국창 회장
▲인구감소대책 국민운동본부를 세운 강국창 회장은 요즘 가는 곳마다 '인구는 국력이고 출산은 애국'이라고 외친다. 자서전 '흙수저도 금수저가 될 수 있다'를 들어보이는 강 회장. ⓒ송경호 기자

그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동물과 같이 바로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으셨다. 2% 부족하게 창조하신 건 반드시 타인의 도움을 받게 하시려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만하지 않는 은혜를 통해 내가 받은 도움을 타인에게 돌려주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 본이 되는 사람이 되길 원하셨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므로 오늘을 산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본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패와 성공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다. 그는 "실패하는 경영자는 잘나갈 때 자만하고 변화에 둔감하고 한탕주의를 줄기며 결론 없는 회의를 자주한다. 그러나 성공하는 경영자는 잘나갈 때 겸손하고 변화에 온 몸을 열어두며 한탕주의를 경계하고 회의(回議) 때문에 회의(懷疑)를 느끼지 않도록 한다. 승자는 힘 센 사람이 아니라 빠른 사람으로 먼저 하고 제때 한다"고 말했다.

인구는 국력, 출산은 애국

강 회장은 요즘 가는 곳마다 '인구는 국력이고 출산은 애국'이라고 외친다. 그는 "40년 전 처음 공장을 설립할 당시 평균 20대 후반이던 종업원들의 연령대는 현재 52살까지 치솟았다. 일구 절벽시대를 절감하고 있다"고 했다. 인구감소대책 국민운동본부는 그가 부회장으로 있던 국가조찬기도회와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한국교회 10개 주요 교단으로부터 공감을 얻어내 설립했다.

그는 "정부가 200조 넘게 쏟아부어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책에 실효성이 전혀 없다는 의미 아닌가"라며 "이젠 민간, 특히 교회가 나서야 한다. 주중에 교회 건물을 인프라로 활용해 보육의 질을 높이고 부모들의 부담감을 낮추는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국성신부터 사내 직원이 출산을 하게 되면 100만원을 격려금으로 지급하고 매달 10만원 씩 10년간 양육비용을 추가로 지급하는 출산장려를 시행 중이다. 그는 "교회와 기업,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유기적으로 움직여 미래 국가 경쟁력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