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기류가 심상치가 않다. 회원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예장 통합)와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가 지난해 총회 이후 NCCK의 동성애와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행보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데 이어 총무 이홍정 목사가 사의를 표명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다.

예장 통합은 9월 총회 때마다 NCCK를 탈퇴해야 한다는 헌의안이 줄을 잇고 있다. NCCK가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을 지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교단 소속인 이홍정 총무를 징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심심찮다.

기감도 지난해 10월 제35회 행정총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NCCK를 탈퇴해야 한다는 총대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그러자 기감은 다음 입법회의 때까지 결정을 미루고, 연구위원회를 조직해 사실관계 조사에 착수했다.

두 교단이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는 거의 같은 내용의 질의서를 보내오자 NCCK는 지난 1월 열린 실행위원회에서 대화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NCCK 핵심 교단들의 내부 동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부정적인 여론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홍정 총무는 이날 두 교단이 질의서에서 제기한 문제를 의식한 듯 "NCCK는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NCCK의 공식 결의기구인 실행위원회와 정기총회 명의의 성명서를 발표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에큐메니칼 협의회의 특성상 획일화된 입장을 강제하거나 이를 집단적으로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 총무는 두 교단이 문제를 삼고 있는 동성애 및 '차별금지법' 찬성이 NCCK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NCCK 산하의 인권센터와 정의평화위원회가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행보를 했던 것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이 총무는 지난 1월 신년 기자간담회 때도 이 문제에 정면 돌파할 의지를 내비쳤었다. "감리교와 예장(통합)은 (NCCK) 창립교단들"이라며 "창립교단들이 협의회가 어떤 신념체계의 문제를 가지고 분열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에큐메니칼한 소양과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신뢰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잘 해결하고 그 결과가 좋게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문제 해결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랬던 이 총무가 임기를 2년 8개월이나 남긴 시점에서 스스로 사임을 표명하게 된 건 아무래도 두 회원교단의 탈퇴 압박에 따른 심적 부담이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써 온 이 총무로서는 시간이 갈수록 기대하는 방향에서 멀어지자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는 방법으로 파국을 면하는 길을 선택했을 수 있다.

사실 이 총무는 이 문제로 오랫동안 엄청난 심적 부담을 떠 앉았던 것으로 보인다. 주요 교단의 차가운 기류가 총무로서 NCCK의 운영과 살림을 꾸려나가는 일정한 한계를 느끼게 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본인이 속한 예장 통합과 주축 교단인 기감이 NCCK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에 심한 내적 갈등을 느꼈을 수 있다. 이 총무로선 이 모든 게 다 자신의 책임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책임을 지는 선에서 문제가 매듭지어지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이 총무가 사의를 밝혔다는 소식은 그가 기감 연회 감독들에게 '책임을 통감하고 사임한다'는 내용의 봉인된 편지를 전달하면서 외부로 알려졌다. 그 후 연회 감독들은 대체로 NCCK 탈퇴문제는 신중하게 대처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기감 감독들의 NCCK 탈퇴와 관련한 신중론이 이 총무의 사임 의사 표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지는 뭐라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총무가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한 것이 들끓는 교단 내부의 여론을 진정시키고 좀 더 차분하게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방향으로 교통정리가 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이 총무의 사임이 NCCK가 오늘의 난국을 해쳐나가는 데 득이 될지 또 다른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할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NCCK 내 '차별금지법' 문제가 총무 한 사람의 사임으로 단박에 해결될 리 만무한 데다 당장 후임 총무를 선임하는 문제에서 교단 간의 조율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내홍이 더 깊어질 수 있다.

NCCK는 국내 주요 교단뿐 아니라 WCC 등 세계 기구와 연대하며 에큐메니칼 정신을 실천하는 데 주력해 왔다. 그런 NCCK가 한국교회 진보 진영을 대변하며 민주화에 공헌해온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대변하는 연합기관 본연의 기능에서 정치적 이슈에 매몰된 운동단체로 점차 기우는 등 한국교회의 보편적인 정서에서 멀어진 게 오늘의 사태를 부른 근본 원인일 수 있다.

오늘 NCCK의 위기는 표면적으론 최근 '차별금지법' 등에 있어 한국교회와 동떨어진 길을 걸어 온 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추구하는 방향성의 포커스가 어디에 맞춰져 있느냐 하는 점이다. NCCK가 추구하는 다양한 해석학적 관점과 신념체계들은 한국교회를 더욱 건강하게 하는 밑거름이 돼야 한다. 갈림길에 선 NCCK가 이 부분을 특히 유념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