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피해지역 10개 주를 순회하면서 필요 물품을 파악한 후 생필품을 구입 후 보내려고 이스켄데룬을 거쳐서 안타캬(안디옥)에 와서 파악을 마쳤고 19일 이스탄불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터키 부르사에서 온 자원 봉사팀에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여 도움을 주던 중 20일 저녁 8시에 지진을 생생하게 목도했습니다.

담요를 가져오려고 재난대책본부를 가던 중 눈앞에서 갑자기 쩌억 쩌억 땅이 갈라지고 육교는 엿가락처럼 휘청거리더니 네 군데가 쩌억 금이 갔습니다. 땅은 요동치는 바람에 제 몸은 중심을 잃고 바닥에 내동댕이 쳐 졌습니다. 급히 재난본부 광장으로 뛰어 들어 갔으나 본부건물 역시 휘청거렸습니다. 급히 건물을 나와서 금이 간 다리지만 사력을 다해서 뛰어 가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은 건물들이 가라 앉는 모습들과 건물 마찰음, 붕괴음 그리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갈팡질팡하는 모습과 공포의 소리로 가득찼습니다. 마치 지구종말이라는 영화 속의 한 장면 속에 있었습니다.

카디쿄이에서 온 7명의 약사들은 의약품을 두고서 피난했고 수많은 자동차 피난 행렬로 가득찼습니다. 친척이 없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자들은 지진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4시간 만에 잔해 속에서 구출된 남매가 있던 컨테이너가 5분간 뒤뚱거리자 남매가 정신을 못차리고 제 2의 지진 공포에 휩싸여 떨고 있는데 차마 저 혼자 떠날 수 없었습니다. 떠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제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그들을 버리고 도피한다면 크리스천에 대해서 잘못 이해할 것 같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에 전염병이 돌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앗아간 때에 거리는 오물과 악취로 가득하던때 크리스천들이 남모르게 밤마다 검은 옷을 입고서 거리를 청소를 하였고 얼마 뒤에는 모든 거리가 깨끗해졌고 악취가 사라졌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로마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말이 제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후원금 전액이 소진될 때까지 10개 주를 순회하면서 도움의 손길을 펼칠 계획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식사 도우미로 양파와 감자등 재료 손질을 비롯해서 땔감준비와 대량 식수배달과 장작을 패서 터키 커피를 제공하고, 비상 모터를 점검 후 기름채우기와 설탕이 떨어지면 물품창고에 가서 보고 후 채우는 등 산더미 같은 오물과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하는 것과 의약품을 버리고 간 재해대책본부에가서 (허락 하에) 의약품이 필요한곳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육신은 힘들지만 그들이 배불리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몸의 피곤을 잊습니다.

인근 지역으로 피난온 이재민 사역도 중요하지만 친척하나 없고 빈곤한 자들은 지진 현장에 머물러 있고 언제 또 다시 닥칠지 모르는 지진의 공포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사료됩니다. 사역비로 10개 주의 이재민들을 돕는것은 턱없이 부족하여 도움요청을 드립니다 참담한 재난을 당한 이웃을 돕는데 교단, 교파, 교회를 초월해서 하나로 뭉쳐서 도움을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히로시마 원폭의 삼만배의 위력의 지진으로 10개 주가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히터가 없습니다. 만원으로 담요 1개를 구입할 수 있고 담요 10장으로 10명이 추위를 면할 수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서 고통 속의 그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손길을 펼쳐 주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성주 선교사 튀르키예 지진 현장 봉사활동
(Photo : 튀르키예 지진 현장 봉사활동, 사진제공 오에스라)
오성주 선교사 튀르키예 지진 현장 봉사활동
(Photo : 튀르키예 지진 현장 봉사활동, 사진제공 오에스라)
오성주 선교사 튀르키예 지진 현장 봉사활동
(Photo : 튀르키예 지진 현장 봉사활동, 사진제공 오에스라)
오성주 선교사 튀르키예 지진 현장 봉사활동
(Photo : 튀르키예 지진 현장 봉사활동, 사진제공 오에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