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에 관한 시각이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으로 구분할 수 있었지만 2015년 미대법원의 동성혼 합법으로 결정되면서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더 포용적인 태도로 변화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애 결혼의 합법화 결정은 헌법적 지위를 확보한 미국의 승리(the Supreme Court's decision affirming the constitutional right of same-sex couples to marry a "victory for America")라고 자축한 바 있다. 그렇다고 동성애 결혼 합법화가 된 최초의 국가는 아니었다. 유럽과 중남미 국가에 이어 21번째 순위가 되었을 뿐이다.

 동성애 결혼의 합헌이 성경의 진리에 대항하는 큰 합리적 도구가 되었고 나아가서는 차별금지법을 촉구하는 인권에 관한 것이라는 힘을 얻었다. 6,300개 이상의 멤버십을 가진 BGCT (the Baptist General Convention of Texas)는 2016년 투표에서 남침례교 총회와 연합하고 있는 텍사스주 전체에서 "조화로운 협력으로" LGBT를 환영하고 긍정하는 교회들의 모임으로 선언한 바 있다. 휴스턴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Joel Osteen 목사가 이끄는 Lakewood Church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인권과 다름'을 표방하여 넌지시 동성애자들을 옹호하고 합리화시키더니, 극기야 지난달 First Christian Church Katy에서는 교회가 직접 동성애자들을 위한 특별 행사를 추진하는 티켓 판매가 매진되었다는 광고에 우려할 만한 신(新) 사사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교회는 이미 동성애자들의 모임으로 교회의 부흥을(?) 넌지시 자랑까지 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은 애초에 그들을 충분히 포용한다"는 대범한 슬로건을 내걸어도 아무런 시빗거리가 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복음주의 목회자와 성도들의 준비된 자세는 무엇일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는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진정한 제자가 되기를 원하셨다. 제자들은 '사랑으로 진리를 말할 수(엡 4:15)' 있어야 한다. 진리로 잘못된 사랑까지 옹호해서는 제자라고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소돔과 고모라 시민들의 그릇된 사랑과 타락한 윤리가 도시의 멸망을 일으킨 사건을 두고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심각한 도전이자 교훈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벧후 2:6)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소수 성애자를 포용하려면 진리가 인도하는 대로 바르게 가르쳐야 하며, 그들도 바르게 배울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어울리셨지만, 그들이 죄를 방치하며 사는 것은 원치 않으셨다. 용서하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선포는 교회가 당당히 해야 할 사명이다.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은, "신앙이란 하나님이 디자인한 삶을 살게 하는 가장 위대한 힘"이라고 직시한 바 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이 위대한 힘 앞에 자신들의 목숨까지 담보하며 매일을 살아 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